출발 그리고 섬진강의 밤
첫 날 일요일 오후 1시 50분, 나는 오산에서 천안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한 이유는 비용을 최대한
아껴 쓰기 위한 것인데 나는 전철을 비용 없이 이용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천안에서 곡성까지
무궁화 열차의 비용이 일반인의 50% 할인된 돈으로 이용하는 것도 내게 주어진 혜택이라면 혜택
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잃은 것이 더 많은 경우이기는 하지만.
슈퍼에 들러서 캔 맥주를 하나 샀다. 열차 카페의 맥주 값은 모르지만 아무래도 슈퍼의 가격 보다는
비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열차는 제 시간에 도착하였고 차에 올라 내 자리를 찾아보니
하필 해가 드는 쪽의 자리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곡성까지 커튼을 치고 갈 수 밖에 없었고 간간히
건너편 차창으로 밖의 풍경을 보지만 원했던 즐거움을 얻을 수는 없었다.
곡성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넘는다. 시내 쪽을 살펴보니 느낌이 너무 조용하다. 처음에는 시내를
돌아보고 일박을 한 후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섬진강을 끼고 걸을 생각이었지만 시내를 보는 순간
그 마음이 사라진다. 가까이 있는 열차 마을로 걸음을 옮겨 그곳의 열차 펜션을 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가 보았던 펜션과는 다른 모습이기에 조금은 신기하고 호기심이 일었지만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는
않는다. 마침 그곳에서 저녁 준비를 하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그는 좋다고 말한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았기에 그 길로 내차 걷기로 했다. 섬진강, 그 아름다움은 곡성을 벗어나서 바로
만난다. 곡성에서 구례 쪽으로 길을 잡아 나가다가 주유소를 만났고 그 주유소에서부터 섬진강가로
걷기 시작한 것이다. 차도 곁에 인도는 없었지만 자전거 길을 참 잘 만들어 놓았다. 높은 언덕도 없이
그렇게 강을 끼고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자전거로 얼마든지 여행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쯤 걸었을까? 어두워진다. 지나는 사람은 당연히 없지만 지나가는 차도 그리 많지 않다.
어두워지면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별을 만난다. 산등선에 올라서면 손만 뻗쳐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낮아 보인다. 문득 희망이란 별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멀리 산 중턱에 불빛이 보인다. 아득한 거리였지만 그 불빛이 내게 힘을 보태준다. 무척이나 쓸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흔히 도시의 사람들이 시골을 만나면 그런 곳에 살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저런 곳에서라면 나는 사양할 것이다.
압록이라는 곳까지 걸었다. 밤 9시가 넘었는데 배가 고프다. 아마 50리 정도는 걷지 않았을까 싶기에
그곳에서 하루 쉴 생각을 하고 마침 불이 켜있는 식당을 겸한 슈퍼에 발을 들여 놓는다. 하지만 그것은
판단 착오였다. 일요일 오후는 관광객들이 다 떠나기 때문에 식당을 일찍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펜션을
물으니 6만원을 주어야 하지만 손님이 없으니 조금은 깎을 수 있을 것이라고 슈퍼 주인은 말한다.
하지만 저녁을 굶은 상태로 6만원을 써가면서 잠을 잘 수는 없었다.
구례의 개인택시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하니 1만 6천원을 내란다. 나는 그것이 경제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택시비와 저녁 식사비, 그리고 사우나 비라면 이곳에서 굶고 잠을 자는 것 보다는 이익이었기에
기꺼이 택시를 불러 구례로 간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아직까지 한 여행에서 가장 잘못 계산한 여행이
되고 말았음을 다음 날 아침에 깨닫는다.
구례로 들어가기 전 구례구역을 다리 건너편에 두고 시내로 들어간다. 택시기사가 구례구역이라는
이름을 설명하는데, 구례사람들이 철로가 구례를 통과할 수 없도록 반대를 해서 어쩔 수 없이 순천지역에
역을 세우면서 입구 자를 써서 구례구역이라고 했단다. 나는 지도에서 구례구역을 보면서 왜 구례신역은
없는지 궁금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