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이혼 1회
고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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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리색의 민소매 티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어울리지 않게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은 후
장지갑을 한 손에 들고 밖으로 나서기 위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확 끼얹는 것처럼 온 몸을 달구
어 버리는 더운 기운에 화들짝 놀라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양산을 찾아 들고 나선다.
한 낮. 아파트 주변은 더위 때문인지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바람 한 점 없는 아
파트 주차장을 가로질러 거수경례를 절도 있게 하는 경비원에게 눈으로 인사를 하고 아파트
정문 밖으로 나선다.
도로는 한산하다. 더위는 사람들의 바깥 활동도 잠시 접어두게 한 것 같다. 차들은 창문을 꼭꼭
닫은 채 꽁지로 더운 가스만 펑펑 내지르며 지나간다. 육십 대나 되어 보이는 상가 슈퍼 주인
남자는 민소매 셔츠 차림으로 플라스틱 의자를 그늘 밑에 두고 앉아서 부채질에 열심인데 그녀
가 보기에는 부채질이 오히려 더 더워 보인다.
도로 변에 가지런하게 심긴 가로수의 잎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잎을 축 늘어뜨리고 간혹 길을
걷는 사람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 보인다.
택시 한 대가 경적을 빵 울리며 지나간다. 아마 그녀가 택시를 타려는 손님으로 보였던 모양이
었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시간은 오후 1시 20분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법원의 출
두서는 두 시까지로 되어있었다. 버스를 타고가도 십 분이면 충분한 거리에 있는 법원이었기에
그녀는 서두름 없이 버스 정류소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녀가 아는 대로라면 오늘 법원에서는 이혼 쪽으로 판결을 내릴 것이다. 부부가 서로 맞지 않아
합의 이혼을 한다는 데야 법원이 막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녀가 들은 정보대로라면 이혼은 간
단 하다고들 했다. 판사가 몇 가지 질문을 한 후에 바로 끝이 난다는 것이다.
그녀는 오늘 가게 문을 닫았다. 아니 며칠 닫을 생각이다. 그동안 나름 자유롭지 못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 올 생각 때문이다. 물론 지난 일 년 동안 그녀는 충분히 자유
로웠다. 하지만 충분히 자유로웠다는 것은 남편에게서 자유로웠다는 것이지 그녀의 직업에서 자
유로웠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편과의 별거 기간 동안 오직 그녀는 그녀의 화장품가게에 매
달려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가게 문을 닫은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회를 곁들인 술을 마시고 나
이트에 가고는 했지만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가고 싶은 곳을 가거나 그러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오늘 법원의 판결이 난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한다.
‘동해안의 작은 어촌! 아니면 땅 끝 마을! 경주! 아예 제주도를 갈까?’
버스가 와서 멈춘다. 그녀는 성큼 올라타며 카드를 찍는다. 그리고 가까운 빈자리에 가서 앉는다.
이제 곧 그녀는 법원으로 들어설 것이다. 보기 싫은 남편도 오늘만 보면 다시 볼 일은 없다. 그녀
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에어컨 바람에 흐르는 땀을 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