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이혼 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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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문을 박차고 나오자마자 조정녀는 편의점부터 찾았다. 입 안을 행굴 물을 사고 싶어서
였다.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밥을 한 숟갈 입에 넣을 때마다 목에서는
거부감이 일어났고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도대체 저 남자와 어떻게 그 짧지 않는 세월을
한 집에서 살았는지, 무엇이 좋다고 저 남자와 한 이불을 쓰고 잠을 잤는지, 왜 저 남자를 닮
은 아이들을 낳고 싶어 안달을 부렸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막급이었다.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그제 오후였다. 조정녀의 가게에 화장품을 사러 온 손님과 얘
기를 나누는 중에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오늘 점심을 함께 먹자는 나분출의 연락을 대신한
것이다. 식당은 두 사람이 잘 아는 남편 동네의 한정식집이다.
함께 살 때는 그래도 몇 번 갔던 식당이었지만 그녀가 먹지동으로 짐을 싸들고 나온 후에는 그
동네에 발길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남편의 동네와 그녀의 동네는 왕복 팔차선 도로 하나 거
리이다. 그러니까 마니시 가지동 마을이 개발되고 도시가 확장되자 인구가 늘어나면서 마니시
도 분구하여 구가 생기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이 도로를 중심으로 챙기구와 나누구로 분구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정녀가 있는 먹지동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가지동 사람들의 논과 밭이 있던 곳
이었는데 마을과 들 사이에 도로가 있는 것을 구로 분구하는 경계로 삼아버린 것이었다.
편의점에 들러 물을 사서 입을 헹구는데 전화가 왔다. 아들 이사의 전화이다. 올 해 스물 다섯인
이사는 그래도 자기의 편이 되어준다. 남자로서 아버지인 나분출이 한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이
며 그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이혼하고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은근하게 그녀를 부추겨 주기도 한
다.
하긴 그랬다. 나분출은 남자로서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자기 기분이 좋으면 무엇이라도 해 줄 것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기분이 상하면 위아래도 없다. 작은 일에도 짜증을 잘 내며 조금만 힘이
들어도 포기를 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며칠이고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술을 마셨을 때 술기운
으로 풀어내는데 그 시간이 그녀에게는 가장 힘겹고 불편한 시간이다. 온갖 욕이란 욕을 다 하고
심지어 손찌검도 한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다. 한 달에 생활비라고 백여 만 원 쥐어 주고는 자기가
도로 같다 쓰는 것이 그 반은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십육 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같아
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다. 처녀시절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
고 싶어 했던 작은 소망은 결혼과 더불어 무너졌고, 이사를 낳아 돌이 지난 후 바로 시작한 일이 화
장품 가게인 것이다.
조정녀의 화장품 가게 수입이 나분출의 수입보다 좋았다. 아니 나분출의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모
른다. 개인택시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일로 두세 자녀 교육시키고 결혼시키고 집
장만 하고 그렇게 산다던데 나분출은 그 반도 안 되는 수입을 건네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