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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그 여자의 이혼 15회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3.09.07|조회수10 목록 댓글 0

그 여자의 이혼 15회

 

 

이혼 사유를 쓰라는 페이지를 펼쳐놓은 분출은 자신의 입장에서라기보다는 정녀의 입장에서

이혼 사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다. 답답하기가 미칠 지경인 분출

은 냉장고를 열어 어제 마시다 남은 소주병을 꺼내고 고추와 된장을 꺼낸다. 한 잔 따라 마시고

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한 입 넣었다. 입 안이 얼얼한 것이 청양고추였다. 정신이 바짝 든다.

 

분출은 변변호사에게 전화를 넣는다. 그리고 자신은 이혼 사유가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쓰라는

것인가를 물었다. 그러자 변변호사는 이혼 사유라는 글을 빨간 펜으로 줄을 긋고 이혼하면 안

될 사유라고 쓰고 그 이유를 쓰라고 알려준다.

 

그제야 분출은 이혼하면 안 될 사유라고 정성껏 쓴다. 자신은 정성을 다해서 쓴다고 쓰지만 글을

써놓고 보니 자신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글씨체이다. 하지만 어쩌랴, 쓰는 김에 내쳐 쓰기 시

작한다.

 

[이혼 하면 안 될 사유]

1. 결혼 이십 육년 동안 특별한 분쟁이 없었습니다.

2. 자식들 때문에 이혼은 할 수 없습니다.

3.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아직 아내를

 

사랑이라고 글을 쓰려니 왠지 서먹하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아내 조정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도 없다. 하지만 안 쓸 수는 없다. 분출은 용기를 내서 ‘사랑하고 있습니다.’

라고 쓴다.

4. 때론 아내에게 서운하게 한 일도 있지만 앞으로는 더욱 잘 할 것입니다.

하여간 분출은 머리를 쥐어짜서 나름 최선의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이혼할 수 없는 사유를 쓰는데

 

“아빠! 뭐해요?”

딸인 재미가 안방 문을 열며 방에 엎드려 노트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분출을 보면서 묻는다.

“어! 뭣 좀 쓰느라고. 참! 아빠 커피나 한 잔 타줘라.”

“네!”

재미가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한 잔 타가지고 들어오더니

“아! 아빠 그거 쓰는구나.”

하더니 분출이 앞에 쪼그려 앉아서

“아빠! 5번은 아이들이 이혼을 반대한다.”

라고 써요. 그리고 6번은……. 하며 나름 분출을 돕는다.

“아빠! 6번은 늙으신 할머니께 불효를 할 수 없다. 라고 쓰면 어떨까?”

또 훈수를 둔다.

“그래! 그것 좋구나.”

분출은 재빠르게 딸인 재미의 훈수를 받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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