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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그 여자의 이혼 16회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3.09.08|조회수11 목록 댓글 0

그 여자의 이혼 16회

 

 

이혼 사유라고 나름 열 가지를 적기는 적었지만 아무리 살펴보고 생각해 보아도 별로 큰 의미를

줄 만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나씩 뜯어보면 옆집 영숙이네 부부 문제나 건너편 식당주인 여자

네 집 문제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만일 판사가 조목조목 따져서 묻는다면 두 번째 질

문에서부터 그녀의 답이 궁색해 질 것 같은 이유들뿐이었다.

‘야! 너만 그러니? 어느 집 구석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정도 문제 없는 부부가 어디 있냐? 괜

히 호강에 겨워서.’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 명희가 이혼하고 싶다면서 이유를 나열하던 그녀의 입을 막으면서

한 말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살펴본다. 남편의 수입 술주정 어쩌다 한 번 있는 구타. 그 정도로는 약하다.

더 확실한 근거를 한두 개는 만들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던 정녀는 문득 어느 신문에서 읽었던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부부 관계도 이혼 사유가 된다.’ 큰 제목으로 뽑은 글 밑에 부부관계를 성실하게 하지 못하는 것

을 이유로 이혼 청구한 사건에 판사가 손을 들어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무릎을 탁! 친다.

그리곤 화이트로 열 번째 사유를 지우곤 그 위에 다시 썼다.

10. 성관계 불성실.

이것처럼 확실한 이유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분명 판사는 이것만으로도 그녀의 손을 들어

줄 것이 분명하다.

 

 

8

그녀는 어제 저녁부터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런대로 지난 삼 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남편인

분출과 식사를 했고, 그 내용을 기록해서 변변호사에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이박

삼일의 여행을 해야 한다.

어제 남편 분출은 강원도로 가자고 했다. 그녀는 별 말 없이 승낙을 한다. 어디를 가든지 그게 무슨

상관있겠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참 묘하다. 처음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분

출과 교제 할 때는 분명 눈에 무엇에 씌운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렇게 잘 생겼는지, 말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 떨리게도 하다가 아리게도 하다가 흥분되기도 하다가 슬프게도 하다가, 때로는 밤잠

을 설칠 정도로 분출이 한 말을 되새기곤 했었다. 먹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복스럽게 먹는지, 음식을

양 볼이 미어지도록 집어넣고 꾸역꾸역 먹는 것조차 사내답게 보였고, 생선 가시를 바르며 먹는 모습

은 깔끔해 보였으며 면을 입에 놓고 후루룩 당길 때는 입 안으로 끌려 들어가며 국물이 툭툭 떨어지

는 면조차 맛나게 보였었다. 어디 그뿐인가? 영화를 보면서 분출이 설명하는 내용은 감독의 의도보다

더 정확했으며 야구를 보면서 분출이 게임에 관한 말을 하면 차라리 분출이 감독을 하는 것이 더 잘

할 것 같기도 했고, 급브레이크를 밟는 기사를 욕하는 분출의 의협심에 자신도 기사를 욕하는 것으로

한 편임을 확인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남편인 분출이 꼴도 보기 싫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옷을 입는 것을 보면 어디

시장에서 떨이를 샀는지 꾀죄죄해 보이고, 말하는 것도 그 목소리조차 듣기 역겨워지고, 먹는 것도 잘

먹으면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못 먹으면 혀가 짧다는 흉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쯤

되자 한 이불 속에 누워 자는 것조차 싫어지기 시작했고, 분출의 다리가 그녀의 허리에 올라올라 치면

손으로 확! 뿌리치고 돌아눕기 시작하였으며, 관계를 요구하면 별별 이유를 다 대서라도 피하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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