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글과 인연. 201
[증평을 다녀오다 2]
요즘처럼 몹시 더운 날 한 낮에 언덕길을 오른다는 것은 고역이다. 그러고 보니 보통의 도시나
마을은 평지에 그 터를 잡으며 심지어 부산 같은 지역도 중심 상가 지역은 평지에 모여 있는데
증평은 경사진 지역에 터를 잡고 있다. 자연히 오르고 내리는 길, 흐르는 땀을 어찌할 수 없이
걷는데 마침 보이는 정자, 그곳에 앉아 더위가 식을 때까지 책을 읽는다. 묘한 기분이 든다.
다시 오르는 길, 그러나 청년이 알려 준 지역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벽화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 몇에게 물어도 그들도 모른다고 하고, 표시판 하나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 일,
한 참이나 헤매다가 돌아서 내려간다. 그렇게 찾아 간 곳이 장뜰시장, 오직 한 통로로 구성되어
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허전하다.
적지 않은 상점은 문을 닫았고, 식당도 그렇다. 흔히 시장이라고 하면 좌판에 노인들이 많지 않
은 나물 같은 것을 펼쳐놓고, 필요한 물건은 무엇이나 그 가격이나 품질을 떠나 구입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이곳은 좌판도 없고 상점의 구성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저 휑하다는 느낌
이 드는, 계절이나 날씨 탓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모습이니, 시장에서 점심을 먹으려던 생각을 포
기하고 벗어나다가 만난 어른께 물었다. 증안골 마을을 가려면 어떻게 하느냐고,
어른의 표정이 얄궂다, 거기를 왜 찾느냐는 표정이기도 하고,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는 표정으로
보이기도 했다. 어른이 길을 알려 주면서 걸어가려면 한 참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알려주고 덧붙
여 “꽃은 피어 있을라나?” 하는데, 꽃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거기는 갈 필요가 없다는 표정
이 확실하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가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시장을 벗어나는데 만난 번개와 소낙비
만일 차량을 끌고 왔다면 브러쉬를 가장 세게 틀어도 길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이 내리는 비, 우
산은 머리와 어깨 정도를 지켜줄 뿐 허리 밑까지 지켜주지를 못한다. 금방 무릎 밑이 젖고 신이
젖고 양말이 젖는다. 걸어서는 도저히 증안골 마을까지 가기는 틀린 것 같다. 잠시 걷다가 만난 국
수집, 비도 피할 겸 점심도 먹을 겸 들어가서 콩국수를 시키고 더위에 마른 목을 적시기 위해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맥주를 갖다놓는 여자 분에게 물었다. 보강천이 어디냐고, 그랬더니 조금 걸으면 바로 만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비가 많이 와서, 내가 여행 중이라고 하면서 소월문학관을 물으니 하는
말이 “거기는 건물 안이라서 비가와도 괜찮겠네요.”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며 이 여자 분이 소월문
학관을 다녀왔다는 느낌이 들면서 그 표정에서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다. 보통 지역 주민이라면
여행자에게 자랑할 만한 곳도 있으련만,
식사 후 보강천에 가보니 여러 개의 천막 속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무슨 행사를 하는지,
하지만 포기한다. 그 시간에도 비는 그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강
천을 잠시 내려보다가 되돌아 역으로 향해 걷는다. 그러면서 느낀 것, 그 지역의 자랑할 만한 곳
을 소개하기 위한 행정적 노력이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과 더불어 역시 좋은 여행에는 날씨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럼에도 기회를 보아서 증평 장날을 택하여 다시 한 번 돌아
볼 생각을 한다. 오늘 내가 보지 못한 증평의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