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이혼 17회
분출은 가방에 갈아 신을 양말과 칫솔 치약 수건 비누 속옷 등을 담으면서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여행! 이번 여행이 어디 보통 여행인가? 어쩌면 신혼여행보다 더 중요한 여행
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인 조정녀와 이박 삼일이라는 기간의 여행을 해 본 기억
이 나지 않는다. 신혼여행이야 당연히 사박 오일을 다녀왔지만 그 후 당일 여행은 몇 번
갔었지만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여행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갔었다는 기억이 나지 않
는다. 문득 아내에게 너무 무심했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지나간 일. 지금 부터라
도 아내에게 점수를 따야만 한다.
하지만 지난 삼 개월 동안의 식사 모임에서 조정녀는 전혀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면 밖에서 시간을 맞추어 식당 안으로 들어왔고, 음식을 시켜도 자신
이 무엇을 먹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냥 분출이 날자와 장소와 시간을 연락해주면 그
날자 그 시간에 그 식당으로 와서 분출이 주문해 놓은 음식을 가능한 빨리 먹고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일어서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박 삼일 동안은 누가 뭐라 해도 함께 있어야 한다. 차를 함께 타고 이동하
고 같은 식당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며 한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이다. 분출이 한 침대
에서 잠을 자게 된다는 생각을 하자 얼굴에 얄궂은 웃음이 인다. 아내의 실오라기 하나 걸
치지 않은 몸매가 눈앞에 떠오른다. 신혼 때만큼 아름다운 몸매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
내 조정녀는 나이에 비해서도 그렇고 아이 둘을 낳았다는 사실이 있음에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 정도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내의 몸매가 떠오르자 곧 아내와의 뜨거웠던 시간도 생각이 난다. 그리고 아내 조정녀가
자신의 밑에서 몸을 부르르 떨며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억이 떠오르자 가방에 옷
가지를 챙겨 넣던 손이 사타구니 쪽으로 슬며시 내려간다. 아무리 이혼하자고 하는 관계
이지만 이박 삼일의 여행을 함께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 그녀도 그와 같은 감정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이 그렇게만 진행된다면 여행 후에 조정녀의 입에서 이
혼이니 뭐니 하는 말은 쏙 들어갈 수도 있다.
분출은 가방을 들고 집에서 나와 차의 트렁크에 싣는다. 그리고 슈퍼에 가서 음료수를
산다. 그리고 김밥 집에 가서 김밥 두 줄 사고 미리 주문 해 놓은 통닭을 가지러 간다. 통닭
은 아내인 조정녀가 즐기는 음식이다. 통닭은 준비되어 있었다. 근래 오늘 만큼 분출의 기분
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그가 통닭집에서 나와 차를 향하여 걷는데 전화가 울린다. 조정녀의
전화였다. 분출은 기분 좋게 홀더를 연다. 어디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나요.”
“몇 시에 출발해요?”
“지금 준비 끝났소. 어디 있을 것인지 내가 그리 가리다.”
아내가 잠시 머뭇거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제부터 아내는 그가 하는 대로 끌려오게 될
것이다.
“어디로 갈 거지요?”
“강원도 속초요.”
“아니, 속초 어디냐고요? 숙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