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이혼 21
“그러나, 두 분의 합의 이혼은 성립될 수 없으므로 두 분의 소를 기각합니다.”
‘기각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판사는 다시 서류철을 들더니 페이지를 넘기며 말을 이어 나간다.
“우선 두 분은, 특히 조정녀씨는 지난 삼 개월의 조정기간 동안 매우 불성실하게 법이 원하는
일을 시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두 분의 기록을 보거나 변호사의 기록을 보거나, 기록상 조정녀
씨는 전혀 법이 원하는 방식대로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니! 밥 먹으라 그래서 밥 먹었고, 여행하라 그래서 여행했고, 뭘 어쩌라는 거야!’
조정녀의 속이 끓는다.
“조정녀씨!”
“예!?”
“조정녀씨는 식사 만남이나, 여행이나 전혀 성실하게 하지 않으셨네요. 다시 말해서 삼 개월의
조정기간 동안 두 분이 정말 이혼만이 최선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깊이 있게 대화를 하거나
살펴볼 자세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기록을 위한 만남과 여행을 하신 것이지요. 그에 비하
여 나분출씨는 매우 성실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신 흔적이 많으시네요. 그런데 조정녀
씨는 이혼을 원하는 대신 나분출씨는 전혀 이혼을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에 맞는다고 보입니다. 따라서 두 분은 이혼 하실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래도 이혼을 하겠다
고 하신다면 다시 삼개월간의 조정기간을 갖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이번처럼 이렇게 불성실하게
하시는 조정기간이라면 성실하게 하실 때까지 계속 되풀이 하셔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관한 이의
가 있으시다면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
‘이런 개 같은, 이게 뭐야!’
그녀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몸부림치는데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다른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
루만지는 느낌이 든다.
“그만 일어나. 애들 학교 보내야지.”
‘무슨 말인가? 애들 학교 보내야 하다니?’
“이 사람이!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나.”
‘내가 술을!’
“얼른 일어나! 애들 학교 늦는다. 아침은 애들이 챙겨 먹고 있으니 도시락이나 싸줘.”
‘도시락?’
“얼른 일어나! 난 일 나간다. 참 당신이 부탁한 돈 300만원 통장에 넣어놓았다.”
골이 띵하다. 무슨 말인지 정신이 없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난다. 토해야 할 것만 같다.
눈을 번쩍 뜬다. 하늘색 벽지가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구름이 흘러가고 있는 천정 벽지이다. 벌떡
일어나 앉는다. 안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남편 나분출의 듬직한 등이 보인다. 침대 밑에는 그
녀의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이불도 침대 밑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침대
에서 발을 내리고 선다. 휘청거린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장실부터 쫓아가서 변기에 얼굴을 갖다 대고 토하기를 시작하면서,
그제야 그녀는 어제 저녁 화장품 회사에서 여름철 회식을 시켜주는 자리에 갔었던 것과 몇 차까지
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막까지 남아서 함께 어울렸던 일이 토막토막 기억나기 시작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