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1회
이 소설은 문학지 “문예마을”에 연재된 글로써 이번 호에 연재를 마치게 되어 이곳에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1
운전석 앞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은 언젠가 그가 보았던 동해안 어느 바다의 색을 닮아 쪽
빛을 띠고 있었다. 간간히 보이는 하얀 구름은 그 쪽빛 하늘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장식이
되어 주었고 운전석 앞 유리에 떨어지는 낙엽은 이제 곳 겨울이 올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는 차를 주차장에 세운 후 문을 열고 내린다. 차 안에서는 그렇게 훈훈하던 햇볕도 바람
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조금은 쌀쌀하게 그의 몸을 핥고 지나간다.
그는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걸어 오르기 시작한다. 조금은 가파른 포장길은 적어도 버스
한 대가 지나 갈 수 있을 정도 넓이의 도로였지만 그동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인지
군데군데 구덩이가 패여 있었다.
‘이 사람아! 이제 자네도 자네 인생을 생각해야지, 벌써 삼년이나 지나갔으니 그 사람 잊어
버리고…….’
조금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 뱉던 장모의 말이 떠오른다.
삼년. 장인도 말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삼년씩이나 죽은 아내를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이 있겠는가? 우린 아무
렇지도 않으니 어디 좋은 여자 있으면 마음을 바꾸도록 하게’
그렇게 말하는 장인도 마음이 울적한지 앞에 놓인 술잔을 훌쩍 비우고 또 따르곤 했었다.
누가 말했던가?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돌고 돌아 제 자리로 오고 또 가는 것이라고, 불가에서 말하
는 윤회는 아니더라도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먹고 싸고 싼 것이 거름이 되어 밭에 뿌려지고 그 거름을 먹은 것들이 우리의 양식이 되어
주고, 어쩌면 자연도 그랬다. 아침에 뜨는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지만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다시 동으로 가서 또 하루의 시작이라는 이름으로 떴던 자리에서 솟아오른다.
바람의 집은 어디일까? 아무도 모른다. 이리불고 저리불어도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바람이 잦아드는 것을 보면 바람의 집도 있을 것이다. 어떤
때에 드센 바람이 부는 것은 어쩌면 단체 여행을 나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바람은 가을
의 햇볕을 받아 잘 물든 단풍에게 시비를 걸고 나무는 바람의 시비에 기가 죽어서 제 지체인
잎사귀와의 교류를 단절하여 낙엽이 되게 한다. 바람은 낙엽을 떨구고 낙엽은 떨어져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을 양식으로 삼은 나무는 다음 해 봄 또 다시 잎을 내고,
“이제 오는가?”
그는 문득 귀에 익은 목소리에 생각을 떨치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다. 조금 비탈진 위 아내
의 무덤 앞에 벌써 여러 명이 서 있다. 그 목소리는 장인의 목소리였다. 그 옆에 장모의 모습이
보이고, 처남과 처제의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작년에도 함께 왔었던 처남댁과 동서
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난 지도 벌써 삼년. 그러고 보니 그는 현대
인들이 49제만 끝나면 벗어버리는 그것을 삼년이나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번 전화에서 처제는 이렇게 말했었다
‘형부. 이번까지만 산에 가고 다시는 가지 말아요. 이제는 우리가 언니의 산을 돌볼 테니까요.
형부는 이번만 가시고 형부의 인생을 살도록 하세요. 그것이 언니의 소원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