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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셔츠 6회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3.12.01|조회수9 목록 댓글 0

셔츠 6

 

 

  하긴 습관이 사람을 만들어 간다는 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그는 습관적으로

그가 살던아니 그와 아내가 함께 살던 아파트 동의 엘리베이터를 향하여 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는 그의 아파트였던 곳을 고개를 치켜들고 올려다본다거실과 방마다 불이 켜져 있

아마 저 가족은 지금쯤 부부의 방과 딸의 방그리고 아들의 방을 정해 놓고 각자의 짐을 정

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아니 딸과 아들이 자기 방으로 쓸 방을 놓고 어느 정도 말다툼이 있었

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오늘 밤 잠을 편하게 자지는 못할 것이다그는 결혼하기 전 아내의 끈질긴 강요

에 끊었다가 아내가 죽은 후 다시 피기 시작한  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한 가피 입에 문다

라이터를 찾아 불을 켜고 입술을 오므려 담배를 빤다담배 연기가 입 안으로 가득 들어온다

그는 가슴 깊이 연기를 들여 마셨다가 한 숨 쉬듯 밖으로 내 보낸다그의 입을 떠난 담배 연기가

하늘로 살포시 솟아오른다아내가 이 담배 연기를 마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담

배를 입에 문채 몸을 돌려 207동을 향하여 걸음을 옮긴다.

 

  정리하다가 만 짐들이 제각각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하지만 그는 그것들을 정리할 생각을 제쳐

놓고 안방 침대 위에 몸을 벌러덩 눕힌다좁았다집이 너무 좁았다안방의 크기는 전의 아파트

의 크기와 별 다르지 않게 느껴지지만 건넌방의 크기는 많이 작았다거실도 주방도 욕실도모든

것이 작았다덩달아 그의 몸도 마음도 작아지고 있었다천장을 올려보며 담배 연기를 뿜는다

기는 천장에 닫기 전에 천장과 침대의 중간 지역에서 옅어지면서 넓게 퍼진다.

 

5

  다음 날 그는 하루 종일 집 안 정리를 했다그다지 정리 할 짐도 없어보였는데 막상 펼쳐 놓으니

만만하지가 않았다한쪽 농에 이불을 정리하고 다른 농에 양복과 셔츠를그리고 서랍에 양말을

처제가 와서 도와주겠다는 것을 그는 한사코 사양했다이제 손을 놓아야 할 관계를 이런저런 이유

로 다시 연결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농문을 닫으려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셔츠를 본다많이 낡은 셔츠들이 오래된 양복 곁에 걸

려 있었다그러고 보니 그는 아내가 죽은 후 단 한 번도 옷을 사지 않았음이 기억났다그의 옷을

사거나 버리거나 세탁소에 맡기거나 빨거나 하는 것은  아내의 몫이었다.

 

  그가 굳이 백화점을 함께 가지 않아도 아내는 그의 몸 치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아내의 필요

에 의하여 양복이나 셔츠나 양말이나 아니 그의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은 아내가 준비해 주었고 그는

입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그랬던 그는 아내가 죽은 후 단 한 번도 그는 양복이나 셔츠나 양말을

사지 않았다옷을 사러 백화점에 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집에 있는 것 중에 그 날 그의 눈에 가장 깨끗하게 보이는 셔츠를 입었고 가장 깨끗해 보

이는 양복을 입었으며 구멍 나지 않은 양말을 신었을 뿐이다때로 더럽다고 느껴지는 양복과 셔츠는

출근하면서 세탁소에 맡겼고 며칠 후 퇴근길에 찾아다 옷장에 걸어두었을 뿐이었다문득 그는 양복

두어 벌과 셔츠 몇 개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돌아오는 휴일에 백화점을 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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