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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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은 그의 아파트에서 세 불록 정도 떨어져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 홈 플러스가 있어서
그곳에서 옷을 살 만도 하지만 그는 세 불록 정도면 걸어갈 만 하다는 생각과 아내는 언제나
그의 옷을 백화점에 가서 샀다는 말을 한 기억이 났기에 그는 늦은 아침을 먹고 천천히 걸어서
백화점으로 간 것이다.
백화점은 그에게 상당히 낮선 곳이다. 그의 일상에 백화점은 별로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
다. 백화점은 언제나 아내의 몫이었다. 그는 늘 아내가 사온 것들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사
용을 했었다. 그것은 아내의 눈썰미가 남다르기도 해서 언제나 유행에 떨어지지 않는 제품과 멋
에 뒤지지 않는 것들을 구입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더불어 그는 외형적인 것에는 그다지 민
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날 그 날 아내가 챙겨주는 것을 두 말 없이 걸치고 다녔던 것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섰지만 백화점으로 봐서는 이른 시간인 것 같았다. 백화점은 한가했다.
일층으로 들어서면서 그는 웬 화장품이 이리 많은지를 보면서 놀랐다. 한 개 층이 모두 화장품
매장으로 가득 했기 때문이었다.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는 무심코 숨쉬기를 입으로 한
다. 그러면서 그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아동복 매장들로 가득한, 삼층은
여성복 사층은 등산복과 골프 전문매장. 그리고 남성복은 오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대충 어떤 옷들이 있는지 살피는 것과 더불어 가격대도
눈요기 삼아 살펴볼 생각으로였다. 어느 매장이든 거의 비슷했다. 전시용으로 마네킹에 입혀
놓은 몇 벌의 옷과 행거에 걸려있는 양복들. 셔츠들. 넥타이등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
이, 가격대도 별반 다를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중간 중간 세일이라고 크게 써 붙인
판매대의 옷들과, 정품과 함께 세일 품을 파는 매장이 있을 뿐,
그는 천천히 느긋한 걸음으로 눈요기를 즐기며 걸었다. 하지만 남성 매장이라고 해도 남성들
보다 여성들이 더 많아 보인다. 물론 남녀가 함께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여자 혼자
매장을 도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어쩌면 저 여자들도 내 아내처럼 남편을 위하여 필요한
옷을 사기위해 왔거나 아니면 혼자 미리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점지해 놓은 후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면 함께 나와서 사기 위해 돌아보는 것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는 천천히 매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아이의 짜증을 달래
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의 엄마가 말한다. ‘여기서 얼른 아빠 셔츠 사고 네 장난감 사줄게, 조
금만 참아, 알았지?’ 아마 아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 매장을 지나쳤나보
다. 하긴 아이에게 있어서 아빠의 셔츠는 관심 밖의 일이다. 아이의 세계에서 아빠의 셔츠는 전
혀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아이의 아빠가 아이를 안는다. 여자가 아이의 손에 막대 사탕을 한 개 들려주지만 아이는
받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엄마의 눈초리를 살피면서 받아드는데 결코 즐거운
표정은 아니다. 어쩌면 엄마의 강요에 의해 받아 들 수밖에 없는 막대 사탕이었을 것이다. 아
이를 안은 부부가 어느 매장 앞에 서는 것을 보면서 그는 커피 한 잔이 생각났다. 그리고 매장
한 곳에 있는 간이 커피숍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