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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셔츠 13회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3.12.11|조회수11 목록 댓글 0

셔츠 13

 

 

  “아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말이 새버렸네요.

  여자는 목이 마른지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그는 약간의 긴장을 늦추기 위해서 한 모금

마셨다.

 

  “처음 그렇게 셔츠를 사 가신 부인께서 두세 번 더 오신 후에 제가 약간의 손장난을 했답니다

그 손장난이란 저의 매장에 새로운 셔츠가 들어오는 날 첫 눈에 띄는 100호 셔츠에 저만 알아

볼 수 있는 표시를 해 두었거든요그리고 부인께서 오시면 제가 준비 해 놓은 그 셔츠를 권해

드리곤 했었지요물론 부인도 두말 안하고 제가 드리는 셔츠를 가지고 가셨고요.

  “표시라니?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입는 셔츠에 특별한 표시가 있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다아니 다

른 사람도 그가 입은 셔츠를 보면서 이상한 표시가 있다는 말을 한 적도 없었고 아내에게서도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은 없었다.

 

  여자는 의문스러운 표현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를 보면서 큰 소리로 웃는다무척이나

재미있다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세 번째인가 부인이 가신 후에 제가 해 놓은 표시라는 것은 바로 셔츠의 회사 이니셜 JB

해 놓는 것이었어요보세요이니셜 바로 밑에 하얀 실로 세 번 바느질 해 놓은 것을요그냥

보시면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 보일 거예요아까 제가 선생님이 바로 그 부인의 남

편이라는 것도 그것을 보고 알아본 것이었고요.

  그는 셔츠의 주머니 바로 위에 새겨있는 이니셜 JB를 자세히 들여다본다처음에는 모르겠

더니 더 자세히 살피자 J의 밑 휘어지는 곳에 흰 색 실로 세 번 꿰맨 자국이 보인다.

  “보이시죠그게 제가 해 놓은 표시예요저는 매번 부인이 오시면 그 셔츠를 꺼내서 드렸

거든요물론 다른 물건과 특별하게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처음 새 상

품이 들어오면 제 눈에 처음 들어오는 것으로 그렇게 해 놓았지요부인은 제 기대를 저버리

지 않았고 늘 그 셔츠를 사가지고 가셨어요.

 

  그녀가 잠시 뜸을 드리려는지 남은 맥주를 마시고 다시 한 잔을 주문한다벌써 그녀가 마신

맥주가 세 잔이다어지간한 여자라면 더 이상 마시지는 못할 양이다.

  “그러다가 삼 년 전부터 부인이 오시지 않는 것이었지요저는 이사를 가셨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새 상품의 첫 셔츠에 제가 하던 표시를 그만두지 못했어요표시를 해 두었

다가 계절이 지나면 저는 그 셔츠를 제 집으로 가지고 갔지요아마 열 한 갠가 열두 갠가 있을

거예요.

 

  여자가 말을 마치고 그를 바라본다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을 되받아 치는 기분으로

바라보았다그녀의 눈에 작은 이슬이 맺혀있다고 느낌 때쯤

  “아선생님저 담배 한 대 피워도 되요?

  그는 그녀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그냥 고개를 끄떡이는 것으로 허락 아닌 허락을 해 주자 여자

는 핸드백에서 보라색 담뱃갑을 꺼낸다엔츠였다그녀의 입에 물린 담배가 빨간 불 빛을 내고

사그라질 때쯤 그녀의 입에서는 담배 연기가 뱉어진다담배 연기는 그의 코앞에 다다르다가 흩

어진다여자가 내 뱉는 담배 연기보다는 그녀가 담배 연기를 내 뱉는 것을 핑계로 한 숨을 쉬

고 있다는 느낌이 그의 머릿속을 타고 들어온다그도 담배를 꺼낸다불을 붙인다한 모금 깊

이 빨아들인다그리고 한숨처럼 담배 연기를 내 뱉는다여자가 그의 그런 행동을  조금은 흔들

리는 눈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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