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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셔츠 14회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3.12.12|조회수5 목록 댓글 0

셔츠 14

 

 

  “술 안 드세요?

  여자가 석 잔째 비우고 다시 한 잔을 주문하면서 그에게 한 말이었다그러고 보니 그는 이제 두

잔째를 앞에 놓고 반이나 남은 상태였다그는 여자의 말을 들으면서 남은 잔을 들어 마신 후 한

잔을 주문한다.

  “술이 저보다 약하신가 봐요?

  그는 여자의 얼굴을 본다얼굴에는 술기운이 발가스레 올라와 있었다여기서 더 마시면 여자는

취할 것이다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술을 그만 마시는 것이 좋겠다는 속내를 끄집어 내지 못한다

이상하게 그녀가 아직도 그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선생님 명함 있으시죠?

  그는 왜 그러냐고 묻지도 않고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서 그녀 앞에 놓는다그녀는 그의 명

함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왜 고개를 끄덕이는지를 모른다그저 생각나면

전화나 하겠지.

 

  “제가요왜 선생님 명함을 달라 그랬는가 하면요새 상품이 나오면 문자를 넣어 드리려고 그런

거예요!

  여자가 무릎을 친다무엇인가 잊었던 것이 있었다는 표정이다.

  “아까 제가 왜 선생님께 날개를 드렸는지 아세요?

  그는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본다약간은 짓궂은 표정이다아니 짓궂 다기 보다는 조금 슬퍼 보이는

표정이다아니 그것도 저것도 아닌 표정이다그녀는 조금 취하고 있었다.

  “선생님제가 그래도 여기 매장에서 벌써 구 년째 근무 중이지요그래서 그런지 손님들을 보면 어

떤 때에는 대충 생각한 것이 맞는 경우가 있거든요그래서 말인데선생님사별하셨어요?

  그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조금 놀란다하지만 곧 그녀는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듯 고개를 좌우

로 흔들더니

  “제가 너무 주제넘었나요?

  그는 무엇을 숨기다가 들킨 어린 아이처럼 고개를 바짝 들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본다꼭 시비를 거

는 그런 표정으로

  “미안해요하지만 그렇게 느꼈거든요.

  “무슨 근거로?

  “있잖아요남성복 매장에는 남자 혼자 오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아니 젊은 청년 같으면 혼자 와서

셔츠를 사 가는 경우도 있지만보통은 부부가 함께 오거나 부인이 혼자 와서 사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돌아가신 사모님 처럼요.

  그녀는 벌써 그의 아내가 죽었다는 것이 기정 사실인양 말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붉어진다그는 그의 앞에 놓은 맥주를 한 번에 다 들이킨다문득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선생님께서 혼자 올라오셨을 때 그런 것을 조금 느꼈고 선생님 셔츠의 이니셜을 보면서 확신이 들었

어요선생님의 부인은 이혼이 아니라 사별이라는 것을요제가 아는 부인은 결코 선생님을 떠나실 분

이 아니었거든요아까도 말씀 드린 것처럼 지하 매장에서 자반고등어를 사 드린 것도 사별이라는 확신

이 들었기 때문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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