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25회
벽걸이 시계가 열 시를 알리는 소리를 낸다. 그는 어제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는
회사에 늦었다는 생각을 하며 욕실로 들어가다가 걸음을 멈춘다. 오늘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어제 퇴근하면서 내일이 아내의 기일이라는 말과 함께
산에 다녀와야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생각이 나자 그는 씻어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지
고 만다. 주방으로 간 그는 커피포드에 물을 붓고 끓인다. 그리고 진한 블랙커피 한 잔을 타
서 한 모금 마신다. 뜨거운 것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소파에 앉아 입으로 후후 불면서
남은 커피를 마시는데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그는 힘겹게 일어나 안방의 침대 곁에 놓아둔
폰을 들어 홀더를 연다. 처제의 전화였다.
“형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벌써 몇 번짼데”
“아! 미안하게 됐네.”
“형부! 어제 술 많이 마셨구나? 에고 술 냄새 여기까지 폴폴 나고 있네.”
그는 처제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 산에 가지 못한 것을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아니 지금 산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알지, 형부 목소리만 들으면 어제 술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처제! 그렇지 않아도 지금”
“형부! 지금 우리는 산에 있어. 아버지랑 엄마랑 같이”
처제의 목소리 곁에 누구냐? 하는 장모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이리 바꿔!”
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 수화기 속에 장모의 목소리가 흘러온다.
“자넨가? 그렇지 않아도 자네가 산에 온다고 할까봐 연락을 안했네. 아침에도 서둘러서 우
리끼리왔지. 자네 어제 술 많이 마셨나? 이 사람아! 몸 생각을 하게”
“아닙니다, 어머니! 그렇지 않아도 지금 준비해서 산에 가려고 하는 참인데”
“그럴 필요 없네, 쉬게. 자네 마음을 우리가 왜 모르겠나. 아무 생각 말고 푹 쉬고 저녁에
집으로 건너오게, 저녁이라도 같이 하세”
미안했다. 어제 회사에는 아내의 산에 가야한다고 결근을 말해놓고 퇴근 후에는 아내 보다
는 그녀를 생각하느라 술을 마신 것이 마음에 걸렸다.
“괜찮습니다.”
“아무 소리 말고 저녁에 건너오게, 자네 장인도 자네와 한 잔 하시고 싶으신 눈치이니. 그저
장인 생각하고 건너오게”
그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녁에 처갓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장인 장모에게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었고,
아내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먼저 갈 곳이 있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오셨어요?”
여주인은 오늘은 올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두부김치와 소주
한 병을 그가 앉아 있는 식탁 위에 올려놓더니
“오늘은 나도 한 잔 하고 싶은데 괜찮지요?”
하며 앞자리에 앉는다.
그는 말없이 병을 따서 여자에게 한 잔 따라 주고 자신의 잔에도 따른다. 여자는 건배라던가 한
잔 하시지요. 라는 말도 없이 잔을 들어 한 숨에 마신다. 그리곤 두부 한 점을 집어 입에 넣고 우
물거리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