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글과 인연. 211
[반찬가게]
전 회의 ‘아내 없을 때’는 사실 이 글을 쓰려고 하면서 쓴 글이다. 이곳 조치원으로 이사와서
몇 곳의 음식점과 찬 가게를 들러 보면서 내게 적당하게 맞는 식당과 찬 가게를 찾았고,
그 덕에 가까이 대화를 할 만한 벗이나 술친구가 없는 이곳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얻곤 하기
때문이다. 오산에 살 때에는 수원이나 오산에 가까이 글벗이 있고, 지인도 있어서 집에서 술
을 잘 마시지 않았는데, 이제는 습관이 돼서 그런지 당연하게 생각하는 생활방식이 되었다.
4년 전 조치원 시장에 반찬 가게는 몇 곳 되지 않았다. 그 중에 한 가게를 단골로 정해놓고
딱 한 가지 음식인 육개장을 사다 먹는데, 다른 여러 종류의 반찬들은 집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관심도 없기 때문인데, 아내가 하루 이틀 집을 비우면 필수 코스가 되어
있는 가게이다.
그런데 이번에 시장을 둘러보면서 느낀 것, 반찬가게가 몇 곳 더 늘었다는 것이다. 아마 같은
업종의 가게로서는 노점을 합친 야채 가게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수의 가게가 반찬가게였
으니 말이다. 한두 집 건너 반찬가게가 보였고, 그 모든 가게가 장사가 잘 되는 느낌이다. 내가
가는 가게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늘 손님들로 가득했다.
그만큼 요즘 사람들은 집에서 반찬을 잘 해 먹지 않는 다는 반증일 것이다. 내 어릴 적 전곡읍의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본 기억은 없다. 하긴 시골에는 들에 널린 것이 찬 재료였으니 그렇겠지만,
4-50대 도시 생활에서도 반찬 가게를 더러 보기는 했어도 이렇게 많다는 것을 느끼기는 처음이다.
문득 우리 아파트의 한 집을 이야기해야겠다. 중학생 정도의 학생 한명, 그리고 초등학교 학생으
로 보이는 학생 한명, 그리고 애완견 한 마리.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의 부모, 그렇게 한 가족을 이루
고 사는 집인데, 이 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바로 택배 때문이었고, 하필이면 이 댁이 일층 엘리베
이터 앞이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눈을 의심한 택배를 보았다. 햇반 박스! 대충 세어 봐도 4-50개
는 되 보이는 수량, 전에도 다른 집에 비해 택배가 참 많이 오는 집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햇반까
지 택배를 시키는 집, 그러면 이 집은 아예 음식을 만들지 않는 집인가? 싶은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라면 정도는 끓여먹겠지, 정도로 결론을 내고 말았는데,
그 후로는 묘한 관심이 들어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내리면서 그 집 현관 문 쪽으로 눈이 가고 만다.
매일 그렇게 택배 박스가 두 세 개씩, 그리고 틈틈이 음식점 포장 그릇이 놓여있기도 했고, 그런데
어느 날 보게 된 생수 택배, 큰 페트병 6개 묶음의 생수 뭉치가 세 묶음이 있는 것이다. 저 물로 며칠이
나 마실까? 음식을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라면 끓이는 물과 차를 끓이는 물, 그리고 마시는 물, 칫솔질
하는 물, 저 가족들이 저 물을 사용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집에 정수기 하나
놓으면 될 것을, 싶기도 했다.
어쩌면 그 집 부부의 일상이 너무 바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고 보니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보다
인스턴트 음식과 통일된 재료와 방식으로 제조되어 판매하는 간단한 음식에 적응되어 가는 요즘 젊은
세대, 어린 세대들, 그들이 엄마의 손맛을 얼마나 기억하게 될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날이다.
*이 글을 쓴 후 어느 날 낮, 냉커피로 보이는 플라스틱 잔 두 개와, 작은 포장 봉투(내 생각에는 조각
케잌)를 들고 현관 벨을 누르는 젊은 사람을 보았고, 계란 두 판이 포장되어 현관 앞에 있는데 모 택배
회사의 로고가 선명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