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글과 인연. 213
[문단 20년, 생존본능]
사업의 실패는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한 번 주저앉으니 일어설 용기도 배짱도 없어졌고, 무기력만
내 안에 가득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는 자격미달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그
런 상황에 부딪치더라도 가장이라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한다는데, 나는 그 어떤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 부끄럽고 가족들, 특히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
이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랬던 것이다.
삶이 무엇인가? 그 후 많은 생각을 한 것이, 산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살아 낸다는 것에
대한 문제였고, 특히 살아낸다는 것이 주는 의미, 곧 생존을 위한 전투력이 내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저 주
어진 일상에 적당하게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던 존재였던 것이다. 어쩌면 특별한 변화가 없이 평탄하
게 살아온 삶이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겼다. 곧 이렇게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내 삶을 옭죄기 시작한 것이다. 막걸리로 취해 잠이
들고, 잠이 깨면 죽음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편하고 쉬울까를 생각하게 되고,
의정부 북부역, 지금은 가능역이라고 부르는 줄 알고 있지만, 전철을 타러 승강장으로 갔고, 전철이 들어오
는데 문득 ‘지금 뛰어들면 죽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다. 뛰어 내릴까? 생각하며 망설이는데 전철은 이미
승강장으로 들어선다. 늦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던 어느 날, 그 날은 정말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시
내를 조금 벗어나 한적한 기찻길로 가서 전철이 오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저만치서 전철이 기적을 울리며 달려오는데, 나는 계산을 한다. 몇 미터쯤 왔을 때 뛰어들어야 브레
이크를 밟기 전, 단 한 번의 충돌로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그때 기적 소리와 함께 내 귀에 들려
오는 말, ‘너 지금 뛰어들어봤자 병신밖에 안 된다!’라는 충고였고 그와 동시에 내 몸은 자연스럽게 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지금도 그 때 내 귀를 쩡쩡 울렸던 그 소리가 내 마음이 소리친 것이었는지. 환
청이었는지, 또는 어떤 영적인 영향이었는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마음과 몸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음은 벌써 죽음을 준비하고 실
행하려고 하는데, 몸은 마음의 판단을 따르지 않는 것이라는 것, 본능, 그것은 생존본능이었던 것이다. 사람
에게 있는 몇 가지의 본능, 생존본능, 종족본능, 무리본능, 이런 것들 중 가장 최우선인 본능, 내 몸은 그 본능
에 충실했던 것이다.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아무리 몸이 거부한다 해도, 이대로 이곳에 있으면 멀지 않아 나는 죽음을 실행하게
될 것이라는’ 그리고 이 판단은 ‘차라리 이곳을 벗어나자!’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었고, 당시 가까운 사촌 중에
태백에 살고 있는 사촌형을 생각했으며, 그곳으로 얼마간 피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형에게 전화를 하
니 쾌히 오라고 권한다. 그렇게 나는 도망치듯 태백으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여러 달 생활하게 되는데,
사촌의 집은 시내를 벗어나 산골짜기에 있는 광부 숙소였고, 그곳에서 시내인 태백으로 나오려면 숙소에서
한참 걸어 내려와서 버스를 기다려야 했던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었기에 여러 날 있는 동안 나는 도시의 냄
새를 잊으면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