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글과 인연. 222
[문단 20년, 연작시]
이번 호에서는 그동안 썼던 많은 시 중에서 연작시를 쓰게 된 동기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신작로에서 350편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이미 소개해 드렸으니 더 필요하지는 않지만, 당시 내 형편에서 ‘문학과
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내 생명의 연장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가는 힘과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꽃 15편
어느 해인가 마산에서 내가 활동하던 문학단체의 모임이 있어서 갈 기회가 있었고, 그 때 가보았
던 마산어시장의 새벽 경매 모습은 ‘마산 어시장’이라는 시를 쓰게 해 주었는데, 행사 다음 날 버
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가는 길, 중앙 분리대가 화단으로 꾸며있었고 수많은 꽃나무가 꽃을 피
우고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끝자락에 가지 하나가 한 뼘 정도 다른 가지에서 벗어
나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보았고, 집에 온 후 여러 날 지났을 때부터 그 꽃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쓴 시가 연작시 “꽃”이다.
술 27편
나는 술을 즐긴다. 여행을 가면 그곳의 토속주나 서민들이 가장 즐기는 술을 일부러 찾을 정도이지
만, 그래도 가장 편한 술은 소주라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데, 그러나 나는 술을 마시는 기본적 고집
이 있다. 곧 ‘배를 채우고 마신다.’ ‘취하도록 마시지 않는다.’ ‘말에 실수를 하지 않을 정도까지 마신
다.’ 이다. 대체적으로 소주 한 병정도의 양을 기준으로 삼는데, 기분이 좋으면 조금 더 마실 정도이
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내가 ‘술 취한 것 같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진상리에서 21편
내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정선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 시절을 보낸 진상리를 고향이라고 말할
정도로 내가 사랑하는 마을이다. 임진강, 대북방송이 왕왕 들렸던 곳, 북과 마주쳐 있는 곳, 목함 지
뢰 사고로 우리 장병 두 병이 장애를 입은 곳에 인접한 마을, 바로 연천군 군남면 진상리이다. 그곳의
추억을 연작으로 쓴 시이다.
어머니 15
나는 둘째 아들이다. 그러나 형님이 필리핀의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어머니께서는 큰 손자와의
생활을 하시게 되었는데, 그 생활이 아무래도 자식들보다는 불편하셨던 어머니께서 넷째이며 외동딸
인 동생이 모시겠다는 청을 거부하시고 그래도 순서대로 둘째 아들과 생활하시겠다는 고집이 있어서
15년간 내가 모시고 임종까지 지켜 드렸는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아파트 베란다에 바람을 쐬러
나가서 어쩌다 보게 되는 노인들의 실버카에 몸을 의지하고 걸으시는 분들을 보면서 되살아나는 어머
니의 모습을 그리면서 쓴 연작시이다.
그 중 마지막 시인 “어머니”는 작곡가 송영수님의 작곡과 백석대학교 음대 교수인 소프라노 임청화님
의 공연으로 발표되었는데, 매년 5월이면 이 곡을 밴드와 단톡에 소개해 드리고 있는다. 그러고 보니 연
작시만으로도 시집 한 권은 충분히 엮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묶어두
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