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내가 읽은 시

가을의 유서/ 파블로 네루다

작성자嘉南 임애월|작성시간20.09.27|조회수106 목록 댓글 1

가을의 유서

 

파블로 네루다

 


가을엔 유서를 쓰리라
낙엽이 되어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루 밤새 하얗게 들어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은 바닷가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 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큰곰 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 내어 읽으리라

 

♣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 1904~1973)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시인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들꽃향기 이승남 | 작성시간 20.09.29 아!
    가을을 다독이는 간절한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좋은 시 고맙습니다!
    댓글 이모티콘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