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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서평 평론

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정순영 4인시집 『언제나 거기 그대로』 읽기 / 임애월

작성자嘉南 임애월|작성시간20.07.22|조회수167 목록 댓글 0

                              4詩集 언제나 거기 그대로읽기


                                    임 애 월 (시인, 한국시학 편집주간)

 

   ‘4인시집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두 권의 시집을 발간한 바 있는 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정순영 시인은, 이번에 세 번째 합동시집 언제나 거기 그대로를 상재한다.

   이번 시집의 인물시 편에서, 네 분 시인이 각각 작품으로써 상대방을 서로 상찬하고 격려하며 화답하는 모습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개성이 워낙 강하고 독특해서 상대방을 인정하려들지 않는 요즘의 시단 풍토에서는 보기 드문, 순수하고 아름다운 광경이다.

   세상의 나이로는 고희를 넘기시고 詩歷으로도 50년을 훌쩍 넘어선 한국문단의 거목 네 분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데(각각 존재감이 강해서), 이 분들은 지속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음식과 술을 나누며 형제처럼 우의를 돈독하게 다진다고 한다.

   앞으로도 백아와 종자기처럼, 문학적으로 서로 알아주고(知音) 격려해주며 언제나 거기 그대로늘 여전하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시집을 읽는다.

 

1. 따뜻한 온기로 아름다운 세상을 열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이제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이 세상엔 없다며 그 줄을 끊어버리고 더 이상 거문고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친구는 많지만<酒食兄弟千個有>, 어려울 때 깊은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는 진정한 친구는 과연 몇이나 될까<急難之朋一個無>. 

      

광교산光敎山에는

다정한 형제봉이 우뚝 서 있다

철철이 진달래 산나리 꽃

뻐꾸기 박새들이 산다

알퐁스 도데의 들이 쏟아지는 밤

소쩍새 소리 들으며

지칠 줄 모르고 시를 쓰는

홍안紅顔이 부럽다

어느 비 오는 날

통닭집에 불러내어

생맥주 마시고 싶어라

                            - 형제봉을 바라보며-임병호 시인전문 / 조병기 

   

   조병기 시인은 위의 작품에서 형제다정한눈빛으로 임병호 시인을 바라보고 있다. “형제봉이라고 은유한 詩語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제는 네 분이 서로 피붙이처럼 격의 없이 지내며 형제 못지않은 사이가 된 것 같다.

   “진달래” “박새” “등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광교산은 임병호 시인이 거주하고 있는 수원의 주산이며 시인의 사는 동네에 바로 인접해 있는 산이다.

   겉치레나 꾸밈이 없는 대자연의 속살처럼, 순수한 영혼으로 반백년이 넘도록 지칠 줄 모르게 시를 쓰고 있는 임병호 시인을 비 오는 날 통닭집에 불러내어/생맥주 마시고 싶다는 조병기 시인의 시적 고백은 거추장스러운 수사 하나 없이 진솔한 마음을 담백하게 드러내고 있어서 미니멀리즘적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머리칼로 창공을 가르며

유유자적 강산을 날아오르던 학이

소나무 위에 살포시 날개를 접듯

 

산수傘壽에 이르기까지

마냥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맑고 티 없이 오직 시에만 젖었느니

 

한 생애가 어쩜 저리 청초할 수 있을까

욕심도 미움도 다 바람결에 날린 학이

소나무 위에 단아하게 날개를 접듯

                             - 학이 살포시 날개를 접듯-조병기 시인전문 / 허형만

 

   허형만 시인은, 조병기 시인의 선비적인 품성과 시정신을 단아하게 날개를 접은 소나무 위의 에 비유하고 있다. 연세는 벌써 산수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맑고 티 없이 오직 시에만 젖어살아온 노시인의 품격을 그야말로 품위 있게 언술하고 있다. 복잡하고 지난한 지상의 삶에서 어떤 것에도 오염되지 않고 청초하게 傘壽를 살아내신 시인에 대한 존경이고 사랑이다.


경상도 하동(河東)

섬진강 백사청송(白沙靑松)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장철 의연하다

 

꽃 피고 새들 지저귀는

갈마산 시(詩)의 동산

청죽(靑竹)숲 푸르게

푸르게 가꾼 시인

 

섬진강 유유한 물길로

팔십 리 포구 돌아

남해바다로 흘러가는

맑은 시혼이 유정하다

 

오늘도 쌍계사 종소리로

사바세계 가슴 밝히는

빛 밝은 노래

 

하동 천지 누리에 가득한

서정의 빛

풀과 별이여

언제나 눈부신 상징이여

                 - 서정의 빛이여, 상징이여-정순영 시인전문 / 임병호

 

   임병호 시인은 정순영 시인에게 서정의 빛이여, 상징이여-정순영 시인을 헌사했다. 하동의 갈마산에는 정순영 시인의 시비가 서 있고 풀과 별1970년대 초에 정순영 시인이 데뷔한 시전문 문예지이다.

   순수하고 맑고 서정성이 강한 정순영 시인의 시세계를 빛 밝은 노래” “누리에 가득한/서정의 빛” “눈부신 상징으로 예찬하는 임병호 시인은 봄 여름 가을 겨울/사시장철 의연하언제나 거기 그대로청청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유정하게 노래하고 있다.

 

나무로 치면

겨울에서야 그 푸르름이 드러나는

소나무 같기도 하고

 

한 천년쯤

우륵의 가야금 가락으로

백성의 한을 달래는

오동나무 같기도 하고

 

곧기로는

새벽이슬에 몸을 씻는

속을 비운 대나무 같기도 한데

 

다정하고 부드러운 손길을

언제나 그리운 고샅길 품안에 고여드는

햇살 같기도 하고

 

나직한 염려 한 마디는

그 울림이 가슴 속까지 여울지는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어디에서나

위로하는 시를 자란자란 읊조리네

                             - 고샅길 품안에 고여 드는 햇살-허형만 시인전문 / 정순영

 

   정순영 시인은, 허형만 시인의 곧고 강하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소나무” “대나무” “햇살등으로, 그 문학성을 우륵의 가야금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백성들의 을 달래는시를 자란자란 읊조리는 허형만 시인의 시적 행보는 그 울림이 가슴 속까지 여울져 흐르는 강물의 품처럼 넓고도 깊다는 상찬이다.

 

2. 꽃의 기억법 - 조병기 시인

 

   꽃은 종자식물의 번식기관인데도 그 다양한 종류의 특성과 아름다움 때문에 문학작품 속에 수시로 등장한다. 꽃은 아름다움, 사랑, 열정, 기쁨, 희망, 목표, 웃음 등의 심미적 대상으로 비유되거나,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금방 사라지는 짧은 속성의 무상함은 아쉬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형벌도 달이 차면

꽃으로 피나 보다.

무심코 지나쳐 버린 날

말 없음에 떨려나는 입술은

수로부인의 보랏빛 고뇌.

차마, 벼랑이 높아

다가갈 수가 없네요.

지상에는 지독한 사랑 하나

지나는 바람도 비켜가던가

한낮의 꿈이 낮달로 떠 있다.

                           - 모란전문 / 조병기

 

   신라 향가 헌화가의 주인공인 절세미인 수로부인벼랑이 높아/다가갈 수 없지독한 사랑 하나낮달로 떠 있는 어느 봄날, 이 작품의 화자는 모란꽃 앞에서 지나간 사랑의 기억을 소환하고. 그 이루지 못한 사랑의 형벌로 만개한 꽃 앞에서 한낮의 꿈처럼 허망하게 지나쳐가는 시간의 통증을 견디고 있는 것일까. 화무십일홍의 무상함을 속절없이 노래하고 있는가. 그 어떤 화려함이나 황홀함도 지나가고 나면 한바탕 꿈처럼 허무할 뿐이다.


어쩌자는 게야.

이 사람아

달 맑은 이 한 밤을

그리움도 죄가 되던가요.

어느 바람에 견디다 못 해

예까지 와서 소리 없이 흐느끼나.

살아서도 죽어 있는 목숨

죽어서도 살아 있을 영혼

적막한 땅 끝에 와서

흐느끼는 사람아

어쩌자는 게야.

                                - 억새꽃전문 / 조병기

 

   억새는 비교적 바람에 잘 견디는 여러 해 살이 풀이다. 그래서 민둥산 산등성이나 척박한 황무지에도 뿌리를 내리고 산다. 그꽃은 다른 꽃들에 비해 현란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지만 무리지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가을의 대표적인 풍경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달 맑은밤에 적막한 땅 끝에 와서/흐느끼는 사람으로 묘사된 억새꽃의 흔들림은 살아서도 죽어있는 목숨/죽어서도 살아있을 영혼의 안타까운 사연을 품은 한스러운 대상으로 환치되고 있다. “땅 끝척박한 지구의 모퉁이까지 떠밀려와 회한과 그리움에 가슴 떠는 절박한 어느 한 생이, 고즈넉한 가을밤 억새꽃의 흔들림으로 형상화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3. 생태적 상상력 - 허형만 시인

 

   요즘 코로나의 역설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 지구를 지배하는 인간들의 직진행보가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멈추었는데 놀랍게도 대기가 깨끗해지고 자연생태계가 복원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코로나라는 몹쓸 감염병은 인간들에게 고통스러운 대재앙이 분명하다. 세계적인 팬데믹을 막기 위해 나라마다 국경을 봉쇄하면서 사람들 이동이 갑자기 멈추었고 공장과 운송수단들도 대부분 멈추어 섰다. 그런데 그로인해 오염되어 죽어가던 자연환경은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고 하니 정말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회색이었던 도시의 하늘이 파란색을 띄고, 베네치아 운하는 60년 만에 맑아졌으며 마르세유 앞바다에서는 긴수염고래 한 쌍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다. 생태맹으로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던 도시인들에게, 코로나19가 지구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 되었다.

   현재의 속도로 무분별하게 자연환경을 파괴·오염시킬 경우 인간에게 22세기는 없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참새 두 마리가 통통통 장난치며 놀고 있다.

 

저 가녀린 발가락이 대지를 울린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춤추는 이파리들

 

구름의 그림자도 잠시 놀아주다 먼저 간다.

 

참새 두 마리의 작은 몸짓에 우주가 축복이다

                                                  -「작은 몸짓전문

 

   허형만 시인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새, , 우듬지, 황소, 연잎, 풍란 등 그 대상이 자연물인, 생태적 상상력의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참새는 어디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새이다. 그 작은 참새 두 마리가 통통통 장난치며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화자는 그 두 마리의 참새를 온 우주의 중심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가녀린 발가락이 대지를 울리고 그로인해 이파리들춤추구름잠시 놀아주며 온 우주가 참새 두 마리를 위해 움직이며 정성을 쏟고 있다.

   하긴 각각의 관점에서 보면 이 지상에 존재하는 꽃 한 송이, 개미 한 마리 모두가 제 삶의 주인공들이다. 지구의 주인은 인간만이 아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개체들 모두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저 연잎의 가녀린 실핏줄을 눈여겨 자세히 보아라.

 

번갯불에 쏘인 듯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바람을 타고 흐르는 시간의 기억들

마치 생명의 힘줄처럼

우주에 뻗치는 길,

길 위에서 가슴 시리게 파닥이는

 

저 연잎의 싱싱한 숨소리를 온몸으로 들어 보아라.

                                                   - 「섭리전문

 

   “연잎의 실핏줄은 무심하게 그냥 지나치지 말고 멈추어 서서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바람을 타고 흐르는 시간의 기억들이 흐르고 있는 연잎의 실핏줄 속에는 우주에 뻗치는 길이 있다. 이파리 한 장에도 온 우주의 기운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연잎의 싱싱한 숨소리를 들으려면 온몸으로 집중해서 들어 보아야 한다.

   이 작품에서도 자연에 대한 경배의식이 내재되어 있어서 작은 생명체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섬세하게 배려하는 시적화자의 생태적 상상력을 읽을 수 있다.

 

4. 술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 임병호 시인

 

   임병호 시인은 휴머니스트 시인이다.

작고 외로운 대상들에게 더 따스한 눈빛을 보내는 시인의 작품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잘 나고 힘센 자들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묵묵하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시인은, 그들에게 더욱 힘차게 살아달라는 주문을 작품으로 형상화시킨다.

 

신문배달원은 최일선 뉴스 전달자다

새벽 다섯 시쯤이면 아파트 문 앞에

조간신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아침처럼

싱싱하게 살아가는 배달원이다

신문을 펼치면 향긋한 종이 냄새

행간 사이로 온 세상이 보이고

밝은 소식들이 봄 초목처럼 신선하다

근래에는 성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지만

옛날엔 중 · 고등학생들이

옆구리에 신문뭉치를 끼고

가가호호 신문을 돌렸다

버스 문 탁탁 두드리며

남문 가요~ 오라잇 외치는

멋진 안내양에게 신문 한 장 주면

시내버스를 공짜로 타고 다녔다

수원역에서 오목내 마을까지

새벽에 뛰면서 걸으면서

서울신문 돌리던 시절이 있었다

, 싱그러운 소년시절 추억이여

신문배달 학생들도 언론인이었다.

                                            - 신문배달원전문


   시인은 30여 년 동안 언론사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새벽마다 조간신문 떨어지는 소리를 남들보다 더 관심 있게 기다리는 듯하다.

   “신문배달원이 무심하게 던져놓고 간 새벽신문에서 풍겨 나오는 향긋한 종이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열면 그 행간 사이에서 보이는 세상이야기, 그 속에 서울신문을 배달하던 시인의 싱그러운 소년시절도 따라 나온다.

수원역에서 오목내 마을까지/새벽에 뛰면서 걸으면서신문을 돌리던 힘든 시절이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는 건 그때 신문을 배달하던 그 학생이 결국 신문기자가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신문배달원은 최일선 뉴스 전달자” “신문배달 학생도 언론인이라는 행간 속에서 과거 신문배달을 했던 언론인으로서의 강한 자부심이 보인다. 거기에 묻어 오늘 새벽 신문을 전해주고 간 얼굴도 모르는 신문배달원의 앞날이 더욱 싱싱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엿보인다.

 

사인시맏형 조병기 시인은

어부인 보필하시느라고 두문불출,

서울 댁에서 막걸리 마시며 심신을 달랜단다.

 

허형만 시인은 글도 잘 안 써져

부인과 함께 거니는

의정부 뒷산 산책이 유일한 일과란다.

 

코로나19’ 감옥살이 힘들다는

성남 정순영 시인은 소맥이 명약이라고

형제들을 해방시키려 한다.

 

치명적인 유혹을 어찌 견디랴

야탑역 부근 주점으로

임병호는 수원에서 급히 달려간다.

 

, 술은 역시 신약이었다

마스크 풀고 단숨에 몇 잔 마셨더니

이 세상 고뇌가 금세 사라졌다.

 

가로수 가지에 새순 돋는 연둣빛 소리

산수유 꽃망울 열리는 노오란 찰라

코로나가 사라지는 뒷모습이 보였다.

                                           - 명약 복용하기전문

 

   자칭 타칭 주당인 임병호 시인에게 술은 역시 명약인가 보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들 침체되어 삶의 생기를 잃어갈 때 사인시 형제중의 막내인 정순영 시인의 유혹에 흔쾌히 넘어가 분당으로 달려가고 마스크 풀고 단숨에 몇 잔 마셨더니/이 세상 고뇌가 금세 사라졌다는 조금은 위험한 고백을 읽다가 코로나가 사라지는 뒷모습이 보인다는 끝부분에서는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사회적 거리두기등으로 다소 소원해진 이즈음 생활이 많이 답답했던 만큼 술맛은 더욱 좋았을 것이다. 그저 지금처럼 오래도록 맛나게 드실 수 있기를 기원한다.

 

5. 성령의 빛으로 정순영 시인

 

   정순영 시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요즘에 발표하는 시편들에서는 그 행간 속에 신앙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는 작품들이 자주 보인다. 특히 요 몇 년 사이, 부인이 말기 암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기적처럼 완치된 이후부터는 조금 더 신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신앙인에게는 종교의 힘이 대단한 위력을 갖는다. 삶의 힘든 여정을 버티어 나가는 과정에서 신이 내려주는 그 힘은 정신적인 바탕을 든든하게 해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지렛대가 된다.


내가 숲속의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사유思惟는 뿌리가 되고

뿌리가 깊을수록 싱그러운 인격의 가지를 거느리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오늘 하루도 스스로 짓는 소욕의 죄를

하늘의 파란 바람으로 씻는

 

성령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가지를 거느리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눈부신 빛 속에서

숲속의 한 그루 해맑은 나무가 되어

 

말씀의 울림으로

세상 끝까지 성령의 씨를 뿌리는 나무가 되어

                                       - 눈부신 빛 속에서전문

 

   마음의 눈이 밝은 자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어 영생을 얻을 것이나, 아담과 이브처럼 마음의 눈이 어두운 자는 선악과나무의 열매를 따 먹기 때문에 에덴의 동산에서 추방되고 만다.

   스스로 한 그루의 생명나무가 되고자 하는 시적화자는, 깊은 사유뿌리로 삼고 오늘 하루도 스스로 짓는 소욕의 죄를/하늘의 파란 바람으로 씻는의식의 과정을 날마다 거르지 않으면 눈부신 빛을 분명하게 보게 되리란 믿음을 확신하고 있다. 뿌리가 깊을수록” “인격의 가지는 더욱 울창해지리라.

 

늘 기도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애절하게 소망하지만 아쉬움과 눈물을 남기는 것이 있다.

 

눈부신 햇살에 흠씬 젖은 투명한 몸으로

나를 용서하고

세상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하기

 

사랑하기는

그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다.

                                      -사랑하기전문

 

   “늘 기도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행간에는 아직도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는 자책이 섞여있다. “눈부신 햇살에 흠씬 젖은 투명한 몸은 성령의 세례를 받아 맑아진 영혼을 의미함이므로 나를 용서하고/세상의 허물을 덮어주는 행위는 스스로를 먼저 반성하고 修身한 후에 다른 이들의 허물도 기꺼이 용서하겠다는 사랑하기의 방법이다.

   여기서 그 빛의 갑옷은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를 이름이니 그 빛의 갑옷을 입는다는 의미는 지속적으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깊은 신앙심의 표현이라고 읽힌다.

   ‘간절히 기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 속에는 사람의 의지 속에도 초자연적인 힘이 들어있다는 의미도 들어있을 것 같다.

 

6. 진정성 있는 감동의 울림


   세 번째 4인시집 언제나 거기 그대로을 읽는 동안,

네 분의 거장 시인들이 서로서로 격려하고 상찬하며, 진솔한 마음을 주고받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울림이 큰 감동을 받았다.

   공공의 선보다는 개인의 감정이나 이익이 우선시되는 작금의 우리 시대.

눈이 핑핑 돌아가도록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디지털 시대의 가벼운 시류에 합류하지 않고,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묵직한 삶을 자연스럽게 고집하는 시편들에서는 따스하고 정감 있는 사람냄새가 난다. 그 행간을 따라 읽다보면 화려하게 치장한 현란함이 아닌 연필로 꼭꼭 눌러쓴 글씨 같은 순수하고 담백한 위로와 웃음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코로나 이전의 특별할 것도 없던 일상생활이 그리워지는 요즈음, 이 시집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짚어 읽으며 경자년 장마철을 견뎌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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