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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서평 평론

현대시조의 시대적 구분 / 이우종

작성자嘉南 임애월|작성시간21.01.18|조회수73 목록 댓글 0

 

現代 시조의 時代的 구분

 

 

이 우 종

 

 

'현대(現代)'라고 하는 말부터가 가변적(可變的)이거니와 과연 어느 때부터의 작품을 현대시조라고 명명(命名)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외국 문학에서는 대체로 고대(古代) · 중세(中世) · 근대(近代) · 현대(現代)의 구분이 분명하게 되어 있지만, 우리 한국 문학은 그 발달 과정이 시대적으로나 그 내용의 전형성(典型性)이 있어 서구(西歐)처럼 순조롭지 못했기 때문에 학자들 간에 이론(異論)이 많다.

특히 그중에서도 근대문학과 현대문학의 개념은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학자에 따라서는 근대문학과 현대문학을 합쳐서 근대문학이라 칭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현대문학이라고도 하고, 혹은 신문학과 현대문학으로 구별해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대체로 고대문학과 신문학과 현대문학으로 구별하고 있다.

즉 서구적인 정치 제도를 본받음으로 해서 위로는 정치 체재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생활 양식에 이르기까지 서구화 물결이 일기 시작한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의 작품을 고대문학이라 하고, 그 이후 독립을 쟁취하고자 거족적으로 항일(抗日)에의 횃불을 높이 든 1919년의 3·1운동까지의 25년간의 문학을 신문학이라 명명하고 있다.

때문에 소설에서는 이때의 소설을 신소설(新小說)이라 칭하고, 시에서는 신시(新詩) 또는 신체시(新體詩)라고 하며, 극분야에서는 신극(新劇) 혹은 신파극(新派劇)이라고 한다.

이에 시조(時調)의 경우는 갑오경장 이전의 작품을 고시조(古時調)라 하고, 그 후 오늘날까지의 작품을 한데 묶어 현대시조로 칭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문학적인 변이(變異)를 진단할 경우 작가나 작품의 특수성을 외면한 채 역사적 또는 사회적인 배경만을 중시한다면 그것이 진단의 편법은 될지 모르나 최선의 방법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작품상의 변이를 가져오게 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따진다는 것이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작가나 작품을 구명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할 뿐, 문학적인 시대 구분은 어디까지나 작가나 작품 중심에서 시도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작가나 작품의 변이도 각 장르마다의 특징이 있어 동일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시조는 시조라고 하는 특수성에서 그 작가나 작품을 진단할 수밖에 없다.

갑오경장 이후 오늘날까지의 시조 맥박을 짚어볼 때 거기에는 커다란 변동이 세 번 있었다.

첫째는 이제까지의 고시조 틀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1907년 이후의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과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가 그러하고,

둘째는 자기 육성(肉聲)을 발견하기 시작한 1925년 이후의 노산 이은상(駑山, 李殷相)과 가람 이병기(嘉藍, 李秉岐)가 그러하며,

셋째는 현대적인 목청을 가다듬기 시작한 1940년 이후의 호우 이호우(豪愚, 李鎬雨)와 초정 김상옥(艸汀, 金相沃)이 그러하다.

그래서 육당과 춘원 이후를 고시조와 맞서는 신시조(新時調)라 칭하려 하고, 노산과 가람 이후의, 현대시조로 넘어오기 직전을 근대 시조라 명명하고자 하며, 호우와 초정 때부터를 비로소 현대시조라고 부르려 한다.

 

(1) 신(新) 시조

 

신시조(新時調)라 함은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 있어 커다란 혁신을 가져 온 1907년부터의 시조를 뜻한다.

육당 최남선은 1907년 3월 3일자로 발행된 대한유학생회(大韓留學生會) 회보 제1호에 낙천자(樂天者)라는 이름으로 〈국풍(國風)〉 4수를 처음 발표했다(본인 말로는 그 이전에도 시조를 쓴 일이 있다고 하나 실제로는 발견되지 않음).

이 작품의 특징으로는 첫째 시조 부흥 운동을 주도했던 최남선의 최초의 시조였다는 점,

둘째로는 종전의 시조라는 이름과 구별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풍이란 이름을 사용한 점,

셋째로 장(章)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장별(章別)로 띄어 쓴 점,

넷째로 개화기에 있어서의 일반 시조라 할 수 있었던 산문정신의 발현으로 사설시조를 시도한 점,

다섯째로 그때의 시대성을 반영한 우국 정신과 함께 계몽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최남선은 그 후 〈압록강〉 〈대 조선 정신〉등 새로운 형태와 내용의 작품을 계속 발표했고, 이어서 1917년부터는 이광수가 이에 가세하여 기행 시조를 시발로 많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들 두 사람이 고시조에 맞서 쌓아 올린 업적은 실로 크다.

먼저 형식 면에서는 종전의 장별을 무시한 연기법(連記法)에서 초· 중 · 종 3장으로 나누어 표기하는 장별 기법을 시행했고, 단수 형식에서 연수 형식으로 발전시켰으며, 다시 국 ·한문 혼용체로부터 언문일치체(言文一致體)를 추구했는가 하면 '어즈버' '하노라' 식의 허사(虛辭)를 지양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마다 반드시 시제명(詩題名)을 붙였다.

다음 내용면에서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이나 안빈낙도(安貧樂道)등을 구가했던 사대부들의 관념적인 여기문학(餘技文學)으로부터 탈피하고 민족 의식의 강조와 함께 계몽적 사상을 펴 가면서 제재(題材)를 실제적인 현실에서 구하려 했다.

 

(2) 근대(近代) 시조

 

근대시조라 함은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추구하고 집단보다는 자아발견에 눈을 뜨기 시작한 1925년부터의 시조를 의미한다.

이은상은 1925년 4월 18일에 그의 초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봄처녀〉를 발표했고, 이병기는 같은 해 7월 1일에 아홉수로 된 대작 〈봉천행(奉天行)〉을 발표했다.

그 이전에도 이은상은 1922년에 〈아버님을 여의고〉라는 작품을 시초로 몇 편의 시조를 발표한 바 있고, 이병기 역시 1921년 〈도(悼) 이(李) 마리아〉라는 시조를 비롯해 수 편의 작품을 쓰긴 했다.

그러나 이들 작품들은 다 같이 습작기의 작품 수준에 머무른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자유시를 써 오던 조운(曺雲)이 처음으로 1925년 4월에 〈법성포 십이경(法聖浦 十二景)〉이라는 제(題)의 시조를 〈조선문단〉에 발표함으로써 주목을 끌게 했고, 송아(頌兒) 주요한(朱耀翰)도 같은 해 1월 19일자 동아일보에 〈빛깔 없고 말 없는〉을 발표했으며, 양상경(梁相卿) 역시 같은 해, 같은 지면을 통해 〈영지애화(影池哀話)〉 등을 발표함으로써 명실 공히 근대시조의 문을 열어 놓았다.

결국 노산, 가람을 비롯한 조운, 송아 등이 시조 창작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시기는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근대 시조의 출발점을 1925년으로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활약한 시조시인들로는 이들 이외에도

고두동, 권덕규, 김기진, 김상용, 김어수, 김영진, 김억, 김오남, 김찬영, 김희규, 박노철, 박용철, 박종화, 변영로, 변영만, 서항식, 설의식, 안자산, 양상경, 이광수, 이희승, 장응두, 장정심, 정인보, 조종현, 최남선, 탁상수, 피천득, 한용운, 현진건 등이 있었다

근대 시조의 특징을 든다면, 형식 면에서는 시조 한 수를 장별로 나누어 정직하게 3행으로 표기해 오던 것을, 때로는 한 장을 둘로 꺾어 6행으로 표기하는 수법이 등장하기 시작한 점과 시조가 3장으로 밖에 성립할 수 없다고 하는 엄숙한 전통을 거부하고 2장시조(二章時調 : 양장시조(兩章時調)도 가능할 것이라는 노산의 엄청난 모험이 있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으며, 내용면에서는 서구의 근대 문예 사상이 들어옴으로써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등이 차츰 등장했고 이때부터 민족의 재발견과 함께 개인을 중심으로 한 생활 주변을 노래하기 시작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밖에 수많은 시조 이론이 쏟아져 나왔다는 점, 육당과 춘원의 2인 시조 문단에서 다수인 시조 문단으로 바뀌었다는 점과 함께 육당의 〈백팔번뇌(百八煩惱)〉 출간으로 사상 최초의 개인 시조집이 나왔다는 점 등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3) 현대(現代) 시조

 

현대시조란 예술적인 가치 의식과 언어적인 가치 의식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1940년부터의 시조를 뜻한다. 이호우는 1940년 6월 〈문장〉지에 〈달밤〉이 추천됨으로써 그의 향토색 짙은 서정적 목청이 전국에 메아리쳤는가 하면, 김상옥은 영롱한 언어 감각으로 구축한 〈봉선화(鳳仙花)〉를 가지고 동년 10월 문장지에서 추천을 받음으로써 열띤 박수를 받았고, 투명한 이미지를 앞세우는 장응두도 같은 해 같은 잡지에 〈한야보(寒夜譜)〉로 추천을 받았으며 그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는 오신혜(吳信惠)의 〈눈〉이 당선됨으로써 마침내 현대 시조의 장은 열렸다.

현대에 와서 다른 모든 분야가 극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면서 발전해 가고 있듯이 시조도 매우 복잡하게 변해 가고 있어도 그 특징을 단적으로 들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그 중에서 두드러진 것을 몇 개 든다면 먼저 표기법의 다양화를 들 수 있다.

장별로 나누어 고지식하게 3행으로 표기하는 시인이 아직도 있는가 하면 그대로 6행 표기법을 따르는 이도 있고 혹은 종장의 초구를 독립시켜 4행 또는 7행으로 표기하는 시인도 있으며, 때로는 시어나 음률에다 촛점을 맞춤으로써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행을 잡기도 한다.

이번에는 장과 장 사이를 무시하고 연속해서 표기하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수(首)의 구별까지도 의식하지 않고 이어서 쓰려는 시인들도 더러 있다.

다음에는, 섬세한 언어 기교, 밀도 짙은 구성, 개성 있는 발성벙의 심화, 내면세계의 추구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주정적인 것보다는 주지적인 것을, 청각적인 것보다는 시각적인 것을, 평면적인 것보다는 다차원적인 것을, 물적 형상보다는 심적 형상을, 의식세계보다는 무의식 세계를 추구하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1940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조를 하나로 묶어 현대시조라고 부르자는 것부터가 무리한 주장일지 모르나, 한 마디로 현대시조란

 

①현대적인 언어를 가지고,

②현대적인 사상과 감정을,

③현대적인 기법으로 구축한 시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①의 조건만 가지고 있는 것을 신시조,

②의 조건까지 지니고 있는 것을 근대시조,

③의 조건마저 고루 갖추고 있는 것을 현대시조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보는 보다 많은 독자층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제까지 현대시조라고 일컬어 오던 육당의 작품에서부터 다룬 것을 부언해 둔다.

 

 

-1985년 발행 『流東 이우종 華甲紀念詩文集』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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