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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서평 평론

구향순 시집 『바람의 견인』 해설

작성자嘉南 임애월|작성시간21.07.08|조회수116 목록 댓글 0

                                    기독교적인 사유, 따스한 휴머니즘의 詩

 

                                                임 애 월 (시인, 한국시학 편집주간)

 

 

  구향순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바람의 견인』을 출간한다.

이 시집에서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그리움, 슬픔이나 상처 등의 감정들이 서늘하게 절제되어 선명한 이미지로 구현되고 있다. 그 절제된 감정선은 소외된 대상들에 대한 연민이었다가, 현실비판적인 자세였다가, 어두운 시절을 넘기 위한 달관이었다가, 먼 그리움이었다가, 그 모두를 아우르는 기독교적인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되어 간다.

  화려한 기교나 수사로 본질이 전도되거나, 전혀 새롭지도 않은 클리셰한 시들, 일기나 수필의 한 단락 같은 시 같지 않은 시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구향순 시인은 시의 威儀와 품격을 지키면서 시 쓰기에 대해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은 섬세하고도 성실한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

 

1. 바람의 이미지

  “바람”의 문학적 심상은 다양하게 표출된다. 생명이나 魂 등을 상징하기도 하고, 때로는 삶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고난이나 역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전적으로 볼 때는 자연현상으로서의 공기의 흐름과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에 바람의 의미는 다의성을 지닌다.

이 시집의 표제시로 쓰인 작품 「바람의 견인」을 먼저 읽어보면 여기서의 “바람”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상징하는 이미지와는 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시인의 말>에서 “시는 바람이고/바람은 내 삶을 견인한다”라는 말을 새겨보면 여기서 “바람”은 시인의 내면세계의 질서를 관장하고, 믿음과 삶의 방향을 올곧게 제시하는 절대적인 위상을 지닌 천상의 바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발 힘 빼지 말고 순순히 따라와라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이걸로는 양이 안 차서 그래요

이번엔 보란 듯이 꼭 성공할게요

 

발로 차며 곁길로 빠져

번번이 헛디디며 넘어졌던

 

이젠 제풀에 지쳐 저절로 빠진 힘

부드럽게 앞서가는 바람의 숨결

 

초의 입은 듯 가볍게 날아오른다

                         - 「바람의 견인」전문

 

  바람이 앞서 견인하면서 “순순히 따라오”라고 하는 모양새나 “곁길로 빠지”다가도 “제풀에 지쳐” 돌아온 화자가 다시 바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때 비로소 “초의 입은 듯 가볍게 날아오르”는 걸로 미루어 보면 여기서 바람의 의미는 화자가 추구하는 믿음 속 절대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음에 인용한 작품에서도 그와 비슷한 장면을 느낄 수 있다.

 

시샘 달 지나는 이듬달

동면에 든 짐승들 깨어나듯

은어로 술렁이는 광교산

건강식품 가게 애써 외면하고

 

꽃망울 터지는 벚나무

젖빛 살 냄새에 취하는데

바람의 말 비침 마음 깨운다

지금 보약 한 첩 먹는 중이라고

 

그러고 보니 말빚을 갚지 못한 나는

염치없는 빚쟁이

값없이 먹는 것들에 대한

감사는 밥 먹듯 잊고

언총(言塚)에나 묻힐 내 말들

 

그러나 내가 다 헤아리지 못할

놀라운 은혜여

꽃을 피우고 감정을 다스리는

바람의 말이여,

                   - 「바람의 말 비침」전문

 

  “감사는 밥 먹듯 잊고/언총(言塚)에나 묻힐 내 말들”에서 나타난 작품 속 화자는 시인 자신으로서 시를 쓰는 일조차 겸손하게 반성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놀라운 은혜여/꽃을 피우고 감정을 다스리는/바람의 말이여”를 통해 “바람”의 의미는 은혜를 내리는 절대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다음의 시를 읽어보면 더 확연해진다.

 

정갈한 대나무 숲에 들어

하늘이 거느리는

바람의 말 듣는다

 

바깥처럼 떠돌며

궁싯궁싯 뒤척였던 날들이

별것 아니었다는 생각

 

같은 모퉁이를 돌지만

하늘 향해 휘지 않는 꿈이

서로 일으켜 준다는 깨우침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실천하는

어깨 나란한 나무들

 

하물며 사람인 나를

헛디디지 않게

이끄시는 바람의 말

                  - 「바람의 말을 듣다」전문

 

  사랑을 나란히 실천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의 힘이다. “하물며 사람인 나를/헛디디지 않게/이끄시는 바람의 말”에서도 보이듯이 “나”를 온전하게 이끌어가는 것도 바람의 힘이다. 이 지구상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는 개개인의 내면세계라는 말도 있듯이 하고 싶은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 사이에서 인간은 언제나 번민하고 갈등하게 된다. 보이지는 않지만 가시밭길 같은 세상의 길에서 발 헛디디지 않도록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작품 속 “바람”의 이미지는 나약한 인간을 구원하는 절대자의 또 다른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다고 하겠다.

 

2. 소외된 이웃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시선

  구향순 시인은 작고 낮은 대상들을 인식하는 시선이 남다르다. 그는 소외된 시적대상들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것은 수사를 위한 기교가 아니라, 진실로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진정성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그 바탕은 기독교적인 사유와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들은 자칫 잘못해 종교라는 틀 속에 갇히면 보편성을 잃기 때문에 선교시가 되거나 기도, 복음, 훈계, 성경해석 등의 수준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거부당한 시는 대체적으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좋은 시가 될 수 없다.

  구향순 시인의 시들은 그 선이나 경계를 넘지 않는다. 기독교적인 색채를 슬쩍슬쩍 끌어오되 지나치거나 넘침이 없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하나의 구조적 장치로서 적절하게 배치되고 있어 오히려 작품들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봉담 지하차도 공사장

용접공이 쏘아대는 불꽃에

이글이글 타오르던 해

그렁그렁 눈시울 젖는다

 

분출되는 자동차 매연 속

칠월 한가운델 지나는

저 사람

 

지져야 하리

불평불만에 익숙한

내 부정한 입술

 

이사야의 제단 숯불처럼

저 시퍼런 불꽃으로

지져야 하리

 

햇무리와 용접불이 빚어내는

우주의 둥근 결

지구의 중심인 그대

오늘도 무사히 안녕하시라

                     - 「햇무리」전문

 

  이 시의 시적화자도 시인 자신이다. “칠월의 한가운데”서도 뜨거운 불꽃을 쏘아대며 자기 일에 충실한 “용접공”의 뜨겁게 흐르는 땀을 바라보며, “불평불만에 익숙한/내 부정한 입술”을 “이사야의 제단 숯불”로 지져야 한다는 자기반성은 전혀 가식적이지 않다. 오히려 차분하면서도 신성하게 다가온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이 사회의 본류가 아닌 지류들이 살아내는 삶의 현장을 목도한 시인은 그들을 “지구의 중심”으로 두고 “햇무리와 용접불”이 만나는 그 접점에 숭고한 삶의 의미를 선명하게 부여하여 “오늘도 무사히 안녕하시라”며 그들의 안위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다.

 

웃어라, 꽃

발 딛고 사는 곳이

물속이라지만

 

낮은 자리 가득 채운

앙증맞은 꽃이여

너는 작지만

큰 사랑 꽃이다

                 - 「웃어라, 꽃」부분

 

  부분을 인용한 「웃어라, 꽃」에서도 “물속”이나 “낮은 자리” “너는 작지만”이라는 시어를 통해 시적화자가 보는 대상이 작고 볼품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너는 작지만/큰 사랑 꽃”이라는 의미부여를 함으로써 그 대상은 이제 우주의 중심이 된다.

  세상인심이라는 게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는데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약자에게 한없이 약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내어주는 화자의 진심을 읽어낼 수 있다.

 

등에 짊어진 버거움보다

느릿한 행보에 연민이 간다

묵언의 더듬이가 찍는

무수한 은유

 

베트남 다녀올 생각은 접었어요

아빠 잃은 사내아이 둘

키우는 일이 쉽지 않네요

에두르는 말속에 숨은 향수

 

살얼음판 같은 낯선 땅

조심조심

더듬어가는

저 이국 여자

 

그래도 엄마니까

잘 해낼 거라고

하나의 문장 같은 삶

함께 응원하며 맞댄

기도의 더듬이 몇

                   - 「더듬이」 전문

 

  이 시에도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인 한 부모 가정의 베트남엄마가 등장한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게 “느릿한 행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로인해 더듬이를 올리고 더듬더듬 “더듬어가는” 그녀에게 “그래도 엄마니까/잘 해낼 거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기도마저 더듬이로 올리는 시적화자의 진정한 마음 씀씀이가 따스한 이미지로 구현되고 있어 감동스럽다.

  이 밖에도 「그 아이」 나 「초여름 2」 「섬 2」 등의 시편들에도 작고 낮은, 소외된 대상들에 대한 무한 사랑과 관심, 배려가 따뜻하게 녹아있다.

 

3. 현실 비판적인 시

  문학작품은 그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 아놀드 하우저는 인간이 창조한 ‘모든 예술은 사회적으로 이미 조건 지어져 있다’고 하였다. 작가가 활동하는 사회, 그 안에서 창조되는 모든 것들은 그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작품에 반영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사회와 현실은 언제나 괴리가 있다. 사람들은 그 유기적 관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면서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오늘도 허기진 별 하나 툭 떨어졌다

가슴 미어지는 슬픈 낙화

 

수리하던 기계에 끼어

만신창이가 된 채 끌려 나오는 청년

 

보살핌 받아야 마땅했던 새싹

16개월 아기 정인

 

나는 부끄럽고 미안한

이 아찔한 행간

어떻게 건너야 하나

 

하늘이 내려준 사랑은 잊고

수습 못 할 독버섯 화려하게 핀 세상

 

하늘이여, 하늘이여

퍼붓는 폭설 폭폭한 폭우여

참다 참다 툭 터진 하나님 눈물이여,

                     - 「별이 떨어지는 날은」 전문

 

  “기계에 끼어/만신창이가 된” 기계 수리공이나 양부모의 학대로 숨을 거둔 “16개월 아기 정인”이는 아무 잘못도 없이 희생된 가엾은 영혼들이다. 죄가 있다면 열심히 산 죄, 너무 어린 죄... 그것도 죄라면 세상은 너무 가혹한 곳이 아닌가. 죄를 짓고도 뻔뻔한 사람들이 우글대는 세상에서 그들의 잘못마저 “부끄럽고 미안한/이 아찔한 행간” 사이에서 시인은 “하늘이여, 하늘이여” “참다 참다 툭 터진 하나님 눈물이여”를 외치며 스스로 속죄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무관심한 우리 모두가 죄인일지도 모른다.

  이 사회는 기득권을 먼저 차지한 계층을 위한 그들만의 무대가 아니다. 사회구성원인 개개인 모두가 함께 행복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타지에 몇 달 거주할 일 있어 찾은

웅장하고 멋진 예배당

잘 영근 알밤처럼

반드르르 야무져 보이는 남자 분께

목사님 학위부터

길게 늘어지는 달변 된 자랑 듣는다

능통한 영어 설교 들으려고

멀리서도 몰려온다는데

능통은 최고지만

신통은 꼴찌일지 몰라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될 화려한 이력

문득 김지하 시인의 시가 그립다

새 교회

산 위의 지붕 없는 교회

해, 달, 별, 꽃과 나무

바람 연주에 맞춰 목청껏 찬송하는

그런 새 교회

                             -「그분은 부재중」전문

 

  여기서는 영혼도 없이 껍데기의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교회를 비판·풍자하고 있다. 물질이 만능이라는 이 시대에, 실종된 순수를 그리워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힘이 있다. 비록 “지붕 없는 교회”일지라도 “해. 달, 별, 꽃과 나무”가 싱싱하고 “바람 연주에 맞춰 목청껏 찬송하는” 그런 오염되지 않는 교회라야 “그분”도 함께 하실 거라는 확신을 말한다. 기독교인으로서 같은 종교의 영역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가 않을 텐데, 영혼이 떠나버린 껍데기는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해도 “신통은 꼴찌”이고“그분은 부재중”이라고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는 어조에 오히려 힘이 실리고 있다.

 

찔레꽃 향기가 왜 슬픈지 모르면서

전쟁을 주관하는 바람은

지나치는 흔적마다 폐허를 낳고

사람들은 또 아이를 낳고

- 「모르지」부분

 

서른 살 너를 보낸 오월

네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장미꽃도

유혈낭자하게 피어 운다

 

오월에 피는 붉은 장미는

뜻을 굽히지 않는 증거의 말들이라던

그 말

 

네 신분은 군인이었으므로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했던

아, 그 말은 얼마나 공허하고 슬픈가

- 「서른 살 너를 보내고」부분

 

  이 작품들은 전쟁 혹은 항쟁의 후유증을 비판, 고발하고 있다. “전쟁”은 “폐허를 낳”는다. 전쟁은 일부 권력자들의 놀음이지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서민들에게 있어서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은 대를 이어서 오래도록 남는다. 전쟁은 이 지구상에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야만적인 행위일 뿐이다.

  「서른 살 너를 보내고」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군인” 신분으로 진압에 나섰던 젊은이 이야기인 것 같다. 상처로 남아있는 그날의 후유증을 “유혈낭자하게 피어 우”는 장미꽃으로 환치시켜 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젊은이의 “자책”이 참으로 안타깝다.

 

4. 뜨거운 祖國愛와 모국어 살려 쓰기

  조국애는 국민들의 잠재의식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국 혹은 모국은 개인에게 있어서 가정과 사회 다음의 큰 울타리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국가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지만 재난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맨 처음으로 가동되는 건 정부기관의 시스템이다. 코로나19로 위기가 닥친 이즈음의 지구촌은 나라마다 그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로인해 국민들이 감수해야 하는 고통의 무게도 다르게 나타난다.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와르르 터져버린 인도의 코로나19 확산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날마다 수천 명의 사망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전염성이 파격적인 이 유행병에 대해 안일했던 인도정부는 국가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듯하다.

 

충남 서천군 판교면 현암리

일본식 적산가옥 한 채

이층 깨진 유리창에

멈춰버린 묵시의 시간

 

삼십육 년 가슴에 박힌 옹이

고작 열한 명에게 목숨 줄 잡힌

오천오백열다섯 명

천황폐하 만세 쌀 좀 주세요

일본인은 본토인 우리는 조선인

 

강요의 목줄 끌어당길 때마다

시르죽어 그렁그렁

바보같이 순박하기만 했던

 

아침저녁 저 노을 붉디붉은 것은

생각하면 서러워

다시 서러워

눈언저리 충혈된 항변의 불꽃

                     - 「시간이 멈춘 마을」전문

 

  충남 서천군 현암리에 있는 “일본식 적산가옥 한 채”를 보는 순간 시인은 36년 동안 “가슴에 박힌 옹이”가 덧난다. 그 시절을 산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 36년간의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살고 있다. 그게 바로 우리들의 정신 속에 집단무의식으로 내재되어 있는 조국애이다.

  쌀 한 줌을 얻기 위해 “천황폐하 만세”를 부른 건 “바보같이 순박하기만 했던” 건지 생목숨 부지를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아직도 “아침저녁” 노을은 붉고 “눈언저리 충혈된 항변”은 시퍼렇게 살아 있다.

 

너는 바다였다가 적산(敵産)이었다가

진봉면이었다가 광활면이 되었다

곡선을 지운 직선과 직각만 있는 곳

크게 팔 벌려 불끈거리는 힘줄

멀리 까치놀 등지고 선 드넓은 품이

얼마나 오달지게 근사한지

잠시 잊을 뻔했다

굴욕의 멍에를 매야 했던 출생의 요람

무력(武力)만 있어 무력(無力)했던 그때

몽땅 빼앗길 줄 알면서도

정직하여 풍성한 소출을 냈던

이젠 농부의 웃음 깃든 거늑한 벌판

바람 앞에 팔 벌린 광활은 외친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근성이 있다고

함께 숨 쉬고 함께 꿈꾸는

전쟁을 견딘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바람 앞에 팔 벌린 광활」전문

 

  나라가 힘이 있어야 그 국민들도 대접을 받는다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전쟁을 견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근성이 있다”는 화자의 외침에 필자도 갑자기 애국심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

  “무력(武力)만 있어 무력(無力)했던 그때”는 다시는 없을 거라고 “곡선을 지운 직선과 직각만 있는” 광활한 평야에 선 화자는 나라 사랑 조국애가 저절로 부풀어 오르나 보다. 여기서 “바람”의 의미는‘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시 구절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구향순 시인은 안타깝게 사라져가는 우리말들을 다시 살려내 쓰고 있다. 외래어나 외국어 사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작금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시인의 모국어 사랑은 곧 나라를 사랑하는 조국애의 일환으로 읽힌다.

  시르죽어(「시간이 멈춘 마을」), 거늑한(「바람 앞에 팔 벌린 광활」), 시샘 달(「바람의 말 비침」), 으밀아밀(「우리 이대로」), 지샌달(「수선화 묵시」), 개밥바라기(「그 아이」), 곰비임비(「달을 닮다」), 물오름달(「물오름달」), 안다미로(「가을 장미」), 잇바디(「가을꽃」) 등... 우리 고유어들은 연못 속 잉어의 지느러미처럼 구 시인의 작품 속에서 제 자리를 찾아 날렵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싱싱하게 유영중이다.

 

5. 그리움을 채색하는 노래

  그리움은 지나온 것들에 대한 애착이고 실존적 자아에 대한 확인이며 독백이다.

시인의 그리움은 그 대상이 무한하게 확장된다. 지나간 시간들이었다가,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열망이기도 하고, 먼저 떠난 이들을 소환하는 초혼곡이기도 하고, 또는 현실 속의 잔잔한 것들에 대한 혼자만의 노래일 수도 있다.

 

처음 가는 약국에서

한 달분 혈압약 받았다

 

약을 먹으려는데

한주먹의 유가와 땅콩 캐러멜이

주루룩 쏟아져 나온다

 

종일 잠깐씩 생각하게 하는

연세 지긋한 약사 부부

 

데면데면한 세상

너무 과하지 않고

너무 모자라지 않는

 

한주먹만큼의 인정과

한주먹만큼의 배려가 맛스러워

즐겁게 지나가는 하루

만나는 그대에게 선물로 가는

한주먹만큼의 웃음

                    - 「한주먹만큼의」전문

 

  약국에서 “혈압약”을 받으면서 “한주먹의 유가와 땅콩 캐러멜”을 받아온 화자는 “너무 과하지 않고/너무 모자라지도 않는” “한주먹만큼의 인정”에 선뜻 매료된다. 인정이 그리운 시대에 작은 마음을 나눠주는 “연세 지긋한 약사 부부”의 손길에 “한주먹만큼의 웃음”을 꽃 피워보는 따스한 광경이다. 인정이나 배려는 서로 주고받을 때 완성된다. 즉, 주고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만 유효하다는 뜻이다. 먹지도 않는 것들을 왜 넣었냐고 생각한다면 그건 인정이 아니고 불편한 과잉친절이 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우리 이대로 숲으로 가자

눈은 사분사분 내리고

으밀아밀 무언가 있을 것 같은

하얀 자작나무 숲

 

오물 고물 굴속에 다정히

겨울 나는 다람쥐 가족처럼

흰 머리칼 쓰다듬으며 살

움막 한 채 짓자

 

짧은 햇살 산 넘고

푸성귀로 차려진 소박한 식탁

눈 커다란 사슴이 기웃대는

우리 밥상 좀 봐

 

멀리 산짐승 우는 소리에

하늘은 더 가까이 내려오고

단잠 든 하룻밤 그사이

욕심 없이 순한 짐승이 되자

                           - 「우리 이대로」전문

 

  속세의 잣대를 버리고 더 이상 추구할 것도 없이 어느 정도 세상을 달관했을 때 삶은 아름다워지기 시작한다. 고급주택이 아니라 “움막 한 채”에도 감동하고 “하얀 자작나무 숲”에 “사분사분 내리”는 흰 눈이 오늘따라 그립고 “오물고물 굴속에 다정”한 “다람쥐 가족”들도 사랑스럽다. 세속의 욕망을 모두 벗어버리고 “순한 짐승”이 될 때 “하늘은 더 가까이 내려”올 테니.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평생 눈앞의 욕망에 이끌려 다니다가 시간을 모두 허비하고 만다. 100년도 안 되는 유한한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부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그저 따스한 배려와 사랑으로 서로를 감싸 안을 때, 그들의 삶에서는 그리운 향기가 저절로 피어오른다.

 

나는 가을꽃이야

그렇게 말하며

어색해 웃는 너를 보고

코스모스보다는 해바라기가 어울려

덤덤히 흐르던 강물처럼

그냥 대답했지

터벅터벅 멀리 걸어온 여행길

누군가 꼽아놓고 떠난

바람개비 도는 언덕

까맣게 건너뛰었다고 믿었던

그리움이라는 말

잇바디 곱게 웃는 해바라기 앞에서

문득 네가 보고 싶다

                            - 「가을꽃」전문

 

  “그리움이라는 말”을 아직 건너뛰지 못한 감수성 깊은 시적화자의 가을 들길이 그리움으로 물들고 있다. 해마다 가을이면 피어나는 “가을꽃”처럼 가을 길에서만 밀려오는 먹먹한 것들이 있다.

  노드롭 프라이는 『비평의 해부』에서 우주의 주기적 변화를 출생, 성장, 결실, 쇠락 후 다시 출생하는 반복의 형식으로 문학의 원형을, 봄은 희극, 여름은 로맨스, 가을은 비극, 겨울은 풍자와 아이러니의 구조를 갖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봄꽃은 화사해 보이는데 가을꽃을 어딘가 쓸쓸한 기운이 있다. 가을 길에서는 이유도 없이 “문득 네가 보고 싶”어지고 오래된 그리움이 다시금 터져 나와 일렁이기도 한다.

 

바람이 부는가 하면

잠시 몸 젖혀

바람길 열어주고

다시 꼿꼿이 일어서는

갈대는 갈대

 

바람 바람 지난 길로

새 새 떼로 날고

제 몸 훑고 지난 것들

그리워 또 그리워

쓸쓸히 비우는 골다공증

 

누가 저 텅 빈 뼛속에

절대 고독 수혈했나

꽃구름 펴오르는

해 걸음 강 언덕에

갈갈 허리 편 고독은 고독

                    - 「갈대」전문

 

  “갈대”는 가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 이름에서부터 이미 가을 냄새가 난다.

“바람 바람”, “새 새”, “그리워 또 그리워”, “갈갈 허리 편 고독은 고독” 등의 시어 반복으로 생겨난 음표들이 시의 행간을 날아다니고, “골다공증”과 “누가 저 텅 빈 뼛속에/절대고독을 수혈했나”가 은유하는 「갈대」는 참으로 맛깔 나는 가을 시 한편이다.

 

  좋은 시는 그 울림이 크다.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드러내지 않고 슬쩍 눌러두는, 함축적 의미를 품고 있는 시는 품격이 있다.

구향순 시인의 작품들은 품격 있는 내공을 지닌다. 그 내공은 구 시인만이 채색할 수 있는 고유한 빛으로 치환된다. 구 시인의 시들을 읽으면서 가슴이 따스해지는 건 그 바탕에 기독교적 휴머니즘이 은은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그 시선에는 온기가 있고 서늘하게 갈무리된 감정들은 절제의 경계를 넘지 않아 정갈하다.

  이번에 상재하는 구향순 시인의 시집 『바람의 견인』은 깊이 있는 울림으로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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