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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서평 평론

노출근

작성자도니 윤형돈|작성시간26.06.20|조회수23 목록 댓글 1

벚나무 노출근의 비애

아파트 화단의 벚나무를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이 아려왔다. 봄이면 구름처럼 꽃을 피워 사람들의 찬탄을 받는 나무였지만, 정작 내 시선을 붙든 것은 꽃이 아니라 밑동에 흉물스레 드러난 노출근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을 생명의 훈장으로 여겼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증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 바라볼수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 뿌리는 과연 스스로 드러나고 싶었을까.

뿌리의 운명은 본래 감추어지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물을 찾고, 돌을 피해가며, 깊고 넓게 뻗어가는 것이 뿌리의 소명이다. 그러나 아파트의 단단한 콘크리트와 좁은 화단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 깊이 내려가지 못한 뿌리는 할 수 없이 지표면으로 밀려 올라왔다. 생존을 위해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 모습은 어딘가 처연하다.

인간의 삶에도 그런 노출근이 있다.

젊은 시절 우리는 마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싶어 한다. 사랑도 깊게 하고, 학문도 깊게 하고, 신앙도 깊게 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자주 그 깊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생계와 경쟁, 관계의 상처와 시대의 소음이 우리의 뿌리를 자꾸만 위로 밀어 올린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감추고 싶었던 것들이 드러난다. 상처, 결핍, 외로움, 후회, 미련이 얼굴의 주름과 말투와 침묵 속에 노출된다. 그것은 마치 벚나무의 노출근과도 같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지하의 역사가 있다.

노출근의 비애는 드러남의 비애다.

꽃은 드러나기 위해 피어나지만 뿌리는 감추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감추어져야 할 것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알 수 없는 민망함과 슬픔을 느낀다. 노출근은 아름다운 벚꽃 뒤에 숨겨진 가난한 이력서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꽃을 칭찬하지만, 정작 뿌리의 사정을 묻지 않는다.

나는 그 뿌리에서 어느 노인의 생애를 본다. 젊은 날에는 꿈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세상을 향한 야심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는 그를 더 깊이 내려가게 하지 못했다. 수많은 좌절과 상실 끝에 그는 어느새 자신의 상처를 숨길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땅속 깊이 묻어 두고 싶었던 기억들이 노출근처럼 밖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무는 그 노출근으로 살아간다. 비록 아름답지는 않을지라도, 비록 민망할지라도, 그것은 생명의 마지막 고집이다.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비애가 오히려 생존의 방식이 된 것이다.

그래서 벚나무 노출근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인생은 꽃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드러난 뿌리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어쩌면 노년이란 꽃이 지는 시기가 아니라, 감추어 두었던 뿌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벚나무는 말없이 서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꽃을 기억하지만, 나는 그 밑에서 흉물스레 드러난 뿌리를 본다. 그리고 그 뿌리가 들려주는 작은 탄식을 듣는다.

"나는 원래 드러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 이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 말이 왠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마치 우리 모두의 숨겨진 비애를 대신 고백하는 목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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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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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嘉南 임애월 | 작성시간 26.06.21 곧아야 깊어지는데....
    점점 얕은 생각들만 하다보니.......
    자꾸만 드러나는 욕망의 뿌리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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