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그림에서 철학적 주제까지― 볼프 에를브루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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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떴나 안 떴나 알아보려고 땅 위로 고개를 쑥 내민 두더지. 바로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몽글몽글하고 길고 갈색을 띤 뭔가가 머리에 철퍼덕 떨어진 거예요. 그건 바로 똥이었지요. 두더지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하고 꽥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그 똥을 머리에 인 채, 동물들을 찾아다니지요. 비둘기에게 물어보니 그건 내 똥 아니라며, 자기 똥은 이렇게 생겼다며 하얀 물똥을 철썩. 말은 큼직하고 굵은 똥을 쿠당탕. 토끼는 까만 콩같이 생긴 작은 똥들을 타타타……. 다들 직접 똥을 발사해서 증거를 댑니다. 도무지 범인이 안 잡혀 두더지는 앙앙불락하다가 우연히 원군을 만났어요. 살찐 파리 두 마리가 똥 냄새를 맡더니 ‘개’가 한 짓이라고 가르쳐 주거든요. 그래서 두더지는 어떻게 했을까요? 낮잠을 자고 있는 정육점 개인 뚱뚱이 한스에게 찾아가 작고 까만 곶감 씨 같은 똥을 한스의 널따란 이마에 슝 하고 떨어뜨리고는 기분 좋게 웃으며 땅 속으로 들어갔답니다.
방귀소리만 뽕뽕 나와도 아이들은 깔깔거리는데, 온갖 똥이 다양한 모양으로 질펀하게 나오는 책을 보고 숨넘어가게 웃지 않을 아이들(+어른들)은 없겠지요. 인간의 똥도 전날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 냄새와 색깔과 모양이 다른데, 동물들이 한 종류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다양한 똥에 대해 작가는 할 말이 많았나 봐요. 냄새 부분은 묘사가 안 되어 안타깝지만, (똥이란 다 ‘구린’ 거 아니냐고요? 아니요. 저는 포도를 먹으면 다음날 볼 일을 볼 때 포도 발효된 냄새가 난답니다.^^) ‘타타타’, ‘오동당동당’처럼 똥 떨어지는 소리가 들어간 덕분에 이야기가 더욱 재미있지요. (이 부분은 특히, 번역자의 공을 높이 사야겠지요.)
글 작가인 베르너 홀츠바르트의 글도 물론 재미있지만, 그림 작가인 볼프 에를브루흐의 그림이 아니라면 이토록 책이 재미있진 않았을 거예요. 표지를 예로 들자면, 갸우뚱하는 귀여운 동물 모습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볼프 아저씨는 잔뜩 열을 받은 두더지가 똥을 모자처럼 얹고 씩씩거리며 가는 모습을 그려내서 앞으로 이 책의 내용이 탐정 놀이로 전개될 것임을 슬쩍 보여주지요. 각 동물의 모습도 매우 재미납니다. 토끼를 보세요. 깜짝 놀랄 때는 먹고 있던 홍당무를 떨어뜨릴 정도고, 두더지에게 자기 똥을 보여줄 때는 똥구멍에서 까만 콩처럼 생긴 것들을 타타타 쏟아 내면서 매우 자랑스러운 표정이지요. 꿈을 꾸듯 몽롱한 표정으로 새알 초콜릿 같은 똥을 누는 염소 또한 우스꽝스럽습니다. 베르너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이 부분이 고양이였대요. 그런데 볼프 아저씨가 바꾸겠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동의했다네요.
베르너 아저씨의 아들인 줄리안이 세 살 때 가장 흥미를 느꼈던 게 바로 개똥이었답니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아들아이가 개똥을 축구공삼아 하도 분주하게 굴어, 그거 못하게 하느라 바빴었대요. 집에서도 변기 속에 퐁당 빠뜨린 그 무엇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을 보고, 아저씨는 똥에 관한 책을 사 주려고 책방에 갔는데, 웬걸? 관련 책이 없지 뭐예요. 그래서 베르너 아저씨는 그럼 내가 만들자, 생각했지요. 먼저 이야기 구조를 짠 뒤,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팔아보려 했지만, 솔깃한 모습을 보인 거대 출판사들은 없었어요.
똥이라니! 아이고 더러워라! 대체 어느 부모가 그런 책을 자식에게 사 주겠느냐? 서점에 진열도 못할 거다, 이렇게 그들은 생각한 거지요. 아이디어만 가지고는 안 되겠어서 베르너 아저씨는 광고 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때에 알게 된 프리랜서 삽화가 볼프 아저씨에게 그림을 맡기기로 했어요. 그런데 초안 그려온 게 기발하고 재미난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는 고양이보다 염소가 낫다는 그림 작가 볼프 씨의 의견에 베르너 씨는 무한 동감 표시. 덕분에 우리는 조는 듯, 몽롱한 염소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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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돼지가 이미 1차분은 쏟아냈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조금 더 짜 낸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볼프 아저씨는 똥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실제 동물들의 똥의 색깔과 특징, 그리고 분량까지 정확히 분석한 후에 그렸다는군요. 이 책에서 볼프 아저씨가 보인 기법, 즉 크레용과 물감으로 그림을 따로 그려 오려 붙여 질감을 표현해 낸 콜라주와, 꼭 필요한 것만 그리고 나머지는 다 생략해 여백을 넉넉히 두는 것은 그 뒤에 나오는 책에서도 계속 반복되지요.
이 책은 27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220만 부 넘게 팔리며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고, 독일 아동청소년문학상 후보에 올랐어요. 이후 다른 작가들도 똥에 관심을 보여 관련 그림책들이 많이 나오게 되지요. 볼프 에를브루흐 아저씨는 (번역서마다 볼프 에를브루흐, 에를부르흐, 예를브루흐, 울프 에를브루흐 등 여러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어요. 그래서 책 찾기가 힘들어요.) 1948년 독일 부퍼탈에서 태어나 에센의 폴크방 조형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사회에 나와 오랫동안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에스콰이어’ ‘뉴욕’ ‘슈테른’ 같은 세계적인 잡지에 그림을 그렸는데, 1985년에 제임스 애그레이의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에 삽화를 그려 그림책 세상에 데뷔했어요. 위에 소개해드린 베르너 홀즈바르트 글에 삽화를 그린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가 홈런을 날려,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요. 이 책은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작가의 다른 그림책들, 특히 자신이 글과 그림을 도맡은 온전한 자기 책들의 주제는 상당히 심각하고 무겁답니다. 존재론적인 의미를 찾는 철학적 주제를 다룬 책이 대부분이지요. 그는 어린이 책의 90%는 잉여물에 불과하다고 냉정하게 비판했어요.
약 10~12년 전부터 출판사들은 문득, 어린이 책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 뒤부터, 어린이 책들이란 돈을 버는 확실한 수단이라는 것을 주로 의미하게 됩니다. 출판사들의 책 목록을 슬쩍 보면 같은 주제들과 같은 미학들로 넘쳐납니다. 그것들은 아주 잘 팔릴 것이 확실한, 특정한 규범을 고수하지요. 그러니 당연히 엄청난 잉여물이 쏟아져 나온 겁니다. 90%는 좀 과장이겠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좋은 어린이 책이란 무엇일까요?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이 그것을 통해 이미지를 새로이 만들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책이 좋은 어린이 책이라고 볼프 에를부르흐는 말해요. 그럼 그가 글과 그림을 모두 담당한 자신의 그림책은 어떤지 한 번 살펴볼까요?
『커다란 질문』에서 그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커다란 질문을 던지지요. 즉, “넌 왜 여기 있니? (Why are you here?)” 번역본에서는 ‘왜 태어났는지 / 왜 세상에 왔는지’로 살짝 바꾸어 놓았지만, 그렇게 되면 원문과 의미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내가 지금 현재 여기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이렇게 난감한 철학적 질문은 언뜻 골치 아픈 것 같지만,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간단하고 발랄한 대답을 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 형은 생일 케이크 촛불을 훅, 불어 끄면서 “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라고 말하고, 비행기 조종사는 “넌 구름과 입맞춤하려고 세상에 태어난 거야.”라고 말하지요. 새는 “너만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야!”, 빵집 주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고”라고 하지요. (제빵사는 예로부터 힘든 직업군에 속하지요. 밤을 새워 빵을 만들어 아침에 파는, 낮밤이 뒤집어 생활하는 직업이라, 중세 때는 마을 처녀들이 제빵사와 결혼하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네요.)
또, 씨앗을 뿌리고 그것이 자라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봐야 하는 정원사는 참을성을 배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지요. 그런데 인간이나 새에게만 질문하는 게 아니라 무생물에게까지 질문을 던졌다는 게 매우 독특하고 흥미롭군요. 바위와 숫자 3의 대답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죽음은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꼭 찾아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독자가 직접 자신의 대답을 써 볼 수 있도록 넉넉한 빈 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모눈종이를 오려 붙이고, 포크 사진, 악보까지 활용해서 콜라주한 그림은 마치 우리가 매우 복잡한 임무를 완수하려고 여기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보다 단순한 이유로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최대한 간결한 외곽선으로 처리되어 있어요. 게다가 아무 무늬도 없는 옅은 색 배경은 앞으로도 에를브루흐 그림책의 특징으로 나타난답니다. 작가는 이 여백은 독자들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용도라고 말한 바 있어요. 철학적 질문과 저마다의 대답이 신선한 이 책은 2004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라가치상을 받았어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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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http://www.goethe.de/kue/lit/prj/kju/ill/ag/erl/koindex.htm
http://www.goethe.de/kue/lit/thm/aug/en4274194.htm
http://www.goethe.de/kue/lit/thm/aug/en3950966.htm
이 글에 나온 책들
- [똥 그림에서 철학적 주제까지― 볼프 에를브루흐 1]
-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 사계절
작은 두더지가 하루는 해가 떴나 안 떴나 보려고 땅 위로 고개를 쑥 내미는 순간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답니다. 두더지 머리 위로 똥이 떨어진 거예요. 두더지는 “네가 내 머리에 똥 쌌지?” 하며 온갖 동물들을 찾아가 묻는답니다. 어린이들은 두더지를 보며 까르르 웃기도 하고 두더지의 물음에 대신 대답하기...
-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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