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허친스의 생략과 유머
그림책은 일반적으로 페이지 수가 적고 화면 수도 적기 때문에 최대한 절제하고 생략해서 필요한 화면을 설정해야 한다. 만약 어떤 글을 그림책으로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문장 속에 표현되었던 배경, 시간, 등장 인물의 외형과 심리 및 동작 등을 그림으로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개성적인 문체를 가진 화려한 문장이라도 그림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다시 문장으로 중복해서 표현한다면 독자의 자유로운 탐색의 폭을 좁히는 결과가 되기 쉽다. <로지의 산책>(팻 허친스 글,그림)은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의 관계를 명료하게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암탉 로지가 산책을 나갔어요.
마당을 가로질러
연못을 빙 돌아
건초더미를 넘고
방앗간을 지나서
울타리를 빠져나와
벌통 밑으로
그리고 저녁밥 먹을 시간에 돌아왔어요.
만약 글만 놓고 본다면 이것을 책으로 내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약간 유치한 그림풍이 유쾌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림 자체의 매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그림 양식이 아니라 어떤 나라의 농촌 풍경을 정말 멋지게 표현한 다른 화풍이었다 하더라도 암탉을 노리는 여우가 그림 속에 없었다면 이 그림책은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책에서 글의 해석력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고 <로지의 산책>에서처럼 평범한 글이라도 기발한 발상으로 그려 달라고 화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처음부터 여우의 출현이 예상되지 않았다면 이 책이 그림책으로 나올 이유가 없으며 여우를 상상해 낸 사람이 글쓴이든 그린이든 그 사람이 바로 그림책 작가인 것이다.(이 책에서 그린이와 글쓴이는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글이 없거나 다른 묘사 방식을 가졌다면 어떠했을지 검토해 보자. 글이 없거나 좀 길게 표현되었더라도 이야기 전개에는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긴장감과 유머는 많이 떨어진다고 느낄 것이다. 간략한 글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로지의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태도와 조응하면서 여우의 탐욕과 실패를 대비시키고 있다. 독자는 여우가 로지를 막 잡을 듯한 화면과 놓쳐 버린 화면, 그리고 배경이 바뀌는 다음 화면을 넘겨 가며 여우의 행동을 예측하고 상상하면서 이 책을 즐기게 된다. 여우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은 자유로울 수 있고 이 그림책이 갖고 있는 단순성으로 인해 자유로운 상상은 작가의 의도된 유머를 빗나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이 중복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글과 그림이 중복된다고 해도 서로의 울림이 다르면서 조화가 된다면 그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지의 산책>처럼 글과 그림을 의도적으로 엇나가게 해서 얻는 경쾌한 효과는 그림책이 주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글이 어떤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을 경우 그림이 단순하게 중복해서 묘사한다면 우리는 그 장면을 감상할 수 있을 뿐이지 적극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참여하기 어렵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림이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에 대해서 글이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절제와 생략을 통한 글과 그림의 조화는 단순한 이야기에 풍부한 유머와 상상력을 제공하고 <로지의 산책>을 한 번 보고 또 보아도 즐거운 그림책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