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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오돈 창작실

현재를 명징하게 보려면

작성자주오돈|작성시간26.06.05|조회수19 목록 댓글 0

현재를 명징하게 보려면

 

4년마다 돌아오는 지방선거일을 넘긴 유월 초순 목요일이다. 어제 한림 강가를 트레킹하고 텃밭을 둘러와 잠을 깬 새벽에 친환경 텃밭 경작을 남겼다. “온천장 가는 길목 신동리 수로 곁에 / 안면 터 지낸 이가 밭농사 버거워해 / 두 이랑 더부살이로 몇몇 작물 가꾼다 // 친환경 농법으로 비닐을 덮지 않아 / 김매고 돌아서면 다시금 돋아나도 / 잡초와 힘겨루기에 끌려가지 않을래

 

목요일은 의미 깊은 시간을 보내는데 삼월부터 이번 학기 수강한 청강생 마지막 날이다.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되어 김해학 아카데미로 가야사와 남명학을 공부하면서 연이 닿은 인제대 사학과 교수가 학부 교양강좌로 개설한 한국 인물사 탐구수업에 매주 빠지지 않고 나갔다. 평소 책에서 알던 내용에 새로운 살을 더 보탠 기회가 되어 강좌 청강을 허여해준 배 교수에 감사하다.

 

석 달 동안 목요일 동선은 아주 길던 자연학교 걸음을 다녀왔다. 신어산 기슭 은하사를 거쳐 어방동 캠퍼스로 가거나 을숙도에서 낙동강 둑길 맥도 생태공원을 걸어 경전철로 인제대로 향하기도 했다. 이번엔 동선을 줄여 봉황대 유적지와 동상동 거리를 거쳐 가려고 이른 아침 외동반림로를 걸었다. 퇴촌교 삼거리를 앞둔 창원천 수변공원 운동기구에 매달려 잠시 몸을 단련했다.

 

이후 창원대 삼거리로 나가 불암으로 오가는 98번 좌석버스를 탔다. 창원터널을 넘어간 장유에서 시내로 든 김해도서관 앞에서 내렸다. 길 건너편 수로왕릉에서 이어진 가야사누리길구간이 남은 봉황동 유적지다. 나라에서 정한 국가 사적지로 경주 포석정이 1호이고 김해 봉황동 선사유적이 2호다. 3호가 수원 화성이니, 봉황동 유적지의 위상이 어떠한지 짐작이 가능하지 싶다.

 

잔디와 숲으로 가꿔진 공원으로 들어 선사시대 주거 형태를 복원한 고상 가옥과 망루를 거쳐 가락국제단이 설치된 언덕으로 올랐다. 덩그런 황세바위는 가야국 장수 황세와 낭자 여의가 혼약을 맺고 성혼이 되지 못한 슬픈 전설로 전해왔다. 동편 기슭에는 여의낭자 혼령을 위로하는 여의각이 나왔다. 회현동 골목에는 선사인이 살던 조개무지 터를 유리 벽 속에 복원해 둘러봤다.

 

경주만큼 왕릉 덩그렇거나 유적 유물이 많지 않으나 김해가 고도임을 보여준 곳이 회현동이다. 금관가야 왕궁이 있었을 터로 추정한 곳은 지하 매장물을 시굴한 뒤 잔디를 입혀 놓더랬다. 김해가 오늘날 도시로 팽창하기 이전 원도심에 해당한 김해 장터를 둘렀다. 오일장이 서는 2일과 7일이면 저잣거리가 펼쳐져 상인과 손님이 북적대는 골목인데 무싯날이라 거리는 한산했다.

 

이어 부원동 골목으로 드니 골동품이나 뒷고기를 파는 가게도 나왔다, 다른 데는 편의점이 낯익으나 거기는 슈퍼 간판이었다. 보살 점집이 보이고 여관이나 여인숙은 밤이면 간판에 불이 켜지는지 궁금했다. 부원동에서 분성로를 건너 동상시장으로 갔다. 향교와 읍성이 위치한 상동을 동서로 나눈 동쪽이 동상동이다. 재래시장 일부 구역은 동남아 외국인 거리로 이색적 풍물이다.

 

칼국수로 이른 점심을 때우고 어방동 캠퍼스로 가 쉼터에 잠시 머물다 탐진관 강의실로 들었다. 동아시아 사상사를 연구해 지역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중견 교수 한 학기 강의를 젊은 친구들 틈에 섞여 시간을 유익하게 보냈다. 다음 주 기말고사로 마무리 시간은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재우 편이었다. 성리학 질서에 기반을 둔 조선의 국운은 쇠하고 근대로 옮겨가는 전환기였다.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배 교수는 지역 대학의 한계 앞에 고민하는 학생들의 진로 개척에도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기울였다. 역사는 현재를 바라보는 관점을 명징하게 해주고 부끄러움을 일깨워 준다고 함에 공감했다. 강의 준비에 도움을 준 서책으로 상식의 독재를 소개해 후일 한 번 읽으려 한다. 한 학기를 대중교통으로 인제대 캠퍼스로 오감이 전혀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2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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