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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오돈 창작실

뒷기미 나루를 찾아

작성자주오돈|작성시간26.06.09|조회수35 목록 댓글 1

뒷기미 나루를 찾아

 

새롭게 한 주가 시작된 유월 둘째 월요일이다. 잠을 깬 새벽에 전날 다녀온 여항산 트레킹을 글로 남기고 초여름 미산령시조도 한 수 보탰다. “녹음이 짙어가는 미산령 넘는 길섶 / 산딸기 붉게 익어 손 뻗어 입에 넣고 / 군락지 빗살서덜취 잎줄기가 억세네 / 눈에 띈 참반디는 멱만 따 지나면서 / 참취도 끄트머리 여린 순 찾아 보태 / 응달에 노루오줌이 분홍 꽃을 피웠네

 

날이 밝아온 아침은 어제 예보된 비가 뒤늦게 간간이 흩날려도 우산은 펼치지 않은 채 이른 시각 산책을 나섰다. 외동반림로 퇴촌교 삼거리로 나가 수변공원에 몸을 단련했다. 궂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이 지긋한 이가 몇몇 몸을 풀다 떠났다. 한동안 매달린 운동기구를 뒤로 하고 천변으로 내려서니 냇바닥은 노랑꽃창포 잎줄기가 싱그럽고 웅덩이는 개구리밥이 동동 떴다.

 

아침나절 산책 동선을 멀게 잡아 창원대 삼거리로 나가 김해 불암동으로 가는 97번 버스를 탔다. 시내를 관통해 창원터널을 넘는 낮은 구름이 걸쳐진 불모산과 대청계곡 수풀은 암녹색을 띠었다. 장유를 거쳐 김해 시내로 드니 등굣길 학생들로 차내가 혼잡해 기사는 승객을 못다 태워 다음 차편을 이용하십사 사정했다. 장유에 학생 수용이 넘쳐 김해 시내로 다니는 이들이었다.

 

분성사거리에서 내려 풍유둥 차고지를 출발 생림 마사로 가는 60번 버스로 갈아탔다. 나전고개를 넘으니 무척산으로는 안개가 걸쳐져 여름 장마철을 연상했다. 시골 행정 관서와 학교를 지나 마사마을 입구에 내렸다. 낙동강 강심으로 단선 철길은 폐선 되어 레일파크로 바뀐 강가다. KTX가 다니는 복선 철길 교량에다 대구부산고속도로 교량까지 예전과 사뭇 달라진 강심이었다.

 

강변 갯버들은 열대 정글이 연상되듯 무성하고 유장히 흐르는 물빛은 푸르렀다. 옛 국도 철교를 걸어서 건너자 좌우로 새로운 교량이 가지런히 걸쳐 지났다. 일직선 곧게 뻗은 트러스트 다리가 끝난 강 건너는 삼랑진 상부마을로 민물횟집이 여럿 나왔다. 조선시대 수운으로 조창이 있던 터를 기린 빗돌이 선 산기슭에는 여흥 민씨 오형제 학덕과 우애를 기리는 삼강서원이 보였다.

 

상부마을에서 삼랑진역으로 가는 송지로 향하지 않고 밀양강이 낙동강 본류에 샛강으로 보태지는 뒷기미로 갔다. 예전 좁다란 벼랑길은 사대강 정비 자전거길 확보를 위해 차량도 조붓이 다녀도 될 정도로 넓혀졌다. 뷰 좋은 벼랑에는 횟집이 두 군데였는데 웅어회를 판다고 했다. 은어처럼 바다로 나가 민물로 회귀하는 웅어는 낙동강 하굿둑에 막혀 다른 유역에서 옮겨오는 듯했다.

 

낙동강 파수꾼으로 불리는 요산 김정한이 남긴 여러 소설에서 수라도는 양산 원동 화제 들판과 낙동강이 배경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뒷기미 나루는 밀양강이 본류로 합수하는 뒷기미에서 강 건너 오산과 명례가 배경으로 식민지 시대와 해방 후 민초들의 애환과 상처를 오롯이 담은 작품이다. 홀아비 박 노인과 그의 아들 뱃사공 춘식과 며느리 속득이, 손자 칠손이 이야기다.

 

외딴 횟집에 있는 뒷기미 벼랑 나루터에는 거룻배가 아닌 작은 고깃배가 한 척 묶여 있었다. 벼랑이 끝난 곳에서 자전거길로 뚫은 강둑을 따라 걸었다. 비는 가늘게 내려 우산은 펼치지 않은 채 나아가다 길섶에 농익은 산딸기가 보여 몇 줌 따 입에 넣어 간식으로 삼았다. 거족마을 앞들은 벼농사가 아닌 사계절 비닐하우스단지로 딸기와 같은 특용작물을 가꿔 소득이 높을 듯했다.

 

거족마을에서 밀양강을 건너는 잠수교에는 동남아 청년 셋이 낚시에 열중했다. 그들은 현장으로 일을 나가지 않은 날이면 여가가 아닌 생계로 고기를 낚아 끼니로 때우는 모양이었다. 미끼를 매달지 않은 갈고리바늘에 은박지가 반짝였는데 그들은 연방 고기를 낚아 올렸다. 밀양강 하류 잠수교 건너 들판을 가로질러 상남 편촌에서 밀양을 출발해 마산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2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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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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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새신발 | 작성시간 26.06.14
    <뒷기미 나루>라는 지명은
    김정한의 소설에서 처음이고
    그 이후 자네가 가까이 근무할 때
    푸른 강가를 함께 바라보았지.

    지금의 <뒷기미 나루>는
    오래 전 젊은 날의
    흑백 사진과 같은 기억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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