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랑진 물길 따라
유월 초순 화요일이다. 자연학교 등굣길 교통편을 열차로 이용하려고 창원중앙역으로 향하다가 창원천 상류에서 ‘개망초꽃’을 봐 한 수 남겼다. “녹음이 짙어가는 초여름 유월 산천 / 토종이 아니면서 이 땅에 널리 번져 / 무성히 세력을 불려 하얀 망울 뒤덮다 // 국운이 쇠해 갈 때 그럴 듯 붙인 이름 / 백여 년 흐른 세월 고난을 헤쳐나와 / 이제는 만방에 우뚝 흥초라고 부르리”
망초는 국운이 쇠하던 구한말 토끼풀로 불리는 클로버와 함께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대표 귀화식물이다. 그 유래가 철도가 개설되면서 침목으로 쓰인 목재에 씨앗이 붙어와 철길 주변부터 퍼져나갔다고 해 수긍이 갔다. 두해살이로 작은 꽃송이가 하얀 꽃잎 안에 노란 꽃술을 달고 있어 계란프라이꽃으로도 알려졌다. 개망초는 망초와 비슷한 사촌이라 엄격히 구분 짓지 않아도 된다.
물길 따라 강변 자전거길을 걸으려 창원중앙역에서 순천발 경전선 부전행 무궁화호를 탔다. 전날은 뒷기미 나루를 찾아가느라 김해 생림에서 강심을 가로지른 철교를 걸어 건넜는데 이번엔 열차로 삼랑진까지 갔다. 삼랑진 역사를 빠져나가 천태산과 양수발전소로 가는 방향으로 걸어 철길 굴다리를 지났다. 드넓은 둔치는 낙동강 제3경에 해당하는 딴섬 누리생태공원이 펼쳐졌다.
깐촌으로 불리는 작원마을로 가는 길섶에는 ‘처자교’ 안내가 세워져 있었다. ‘승교’로도 불리는 쌍무지개 다리로, 한 스님이 파계를 무릅쓰고 아리따운 아가씨에 반해 청혼을 간청하다 다리 놓기 시합에서 져 비련으로 끝난 전설이 서린 다리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밀주지에 전해지던 전설의 다리가 4대강 하천 정비 때 우곡천 하류 샛강에 실체가 드러나 모래흙을 덮어 보존한다.
천태산이 바위 벼랑으로 막은 동래에서 한양으로 오르는 영남대로 강변이다. 까치마을로 불려 ‘까치 작(鵲)’을 붙여 작원(鵲院)이다. 깐촌에는 임진왜란 때 동래부를 함락시키고 한양으로 진격하던 왜구와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당시 돌아간 작원관 전투에서 희생된 넋을 기리는 위령탑이 있다. 이때 생겨난 ‘밀양 놈 싸움하듯’ 속담은 백병전으로 목숨을 내놓은 치열한 싸움을 이른다.
깐촌 나루에는 민물고기잡이에 쓰는 고깃배가 묶여 있었다. 강 언저리는 갈대가 무성하고 물빛은 암녹색을 띠어 산과 들과 강도 온통 녹색을 띤 유월의 산하였다. 낙동강이 하류로 흘러오면서 녹조가 발생함을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축산이나 공장 폐수는 줄어도 농사철 농경지에서 흘러드는 유기질과 고온에 의한 계절적 녹조는 어쩔 수 없어 다가올 장맛비가 해결책이다.
깐촌에서 물금으로 내려가는 강변은 자전거가 다니는 생태교를 따라 걸었다. 강 건너편은 감자 경작으로 알려진 김해 생림 도요마을이 보였다. 천태산 벼랑으로는 터널과 함께 경부선 철로가 지나 유홍준은 답사기에서 차창 밖 강변이 아름다운 곳으로 하동에서 구례로 오르는 19번 국도와 함께 꼽았다. 그 길을 섬진강도 그랬고 낙동강에서도 여러 번 걸어지나 복에 겨울 정도다.
벼랑에는 영남대로 잔도 흔적이 보였다. 벼랑에 바윗돌을 덧대 조붓이 낸 길이 잔도다. 삼랑진과 원동 사이는 작원잔도이고, 원동에서 물금 사이 황산잔도가 남아 있다. 벼랑 생태교가 끝난 원동 중리마을 앞은 파크골프장이고 강가는 가야진사였다. 신라 적부터 조선 후기까지 용신에게 제를 올리는 사당이다. 용신제 제례 의식은 지역 민속문화재로 전승 보존함이 다행스럽다.
철길 굴다리를 벗어나 원리 골목을 걸으니 면 소재지임에도 60년대 70년대 드라마 세트장을 지나는 듯했다. 중국집과 추어탕집은 문이 닫혔고 참기름을 짜는 가게는 문이 열려 있어도 인기척이 없었다. 하루에 서너 차례 정차에 떠나는 열차를 놓치면 다음 차편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해 서둘러 순천행 열차에 올랐다. 잠시 눈을 붙여 졸다 깨니 진영역에서 터널을 관통하고 있었다. 2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