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답사기
곧 다가올 장마를 앞둔 유월 중순 주말이다. 오키나와에 머무는 장마전선은 아직 제주도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아선지 쾌청하고 다소 더위를 느끼게 하는 날씨다. 글로컬 국책사업으로 선정된 인제대학은 올봄 지역민 교양강좌로 한국학 아카데미를 개최해 유익한 시간을 보낸다. 지난해 연말 가야사와 조식 선생 생애 연구를 잇는 속편으로 남명이 궁궐로 보낸 상소문을 읽고 있다.
이번 토요일은 수요일마다 가지는 연구교수의 강의와 외부 명사 초청 강연에 이어 현장 답사를 떠나기로 한 날이다. 지난겨울은 가야 고분군과 남명 선생의 발자취가 서린 유적지를 답사한 적 있다. 이번은 남명 선생보다 앞선 조선 성리학 거두 동방 5현으로 향교에 배향된 유학자 일두 정여창 흔적을 찾아가는 발길이다. 조선시대 안동 유림과 쌍벽을 이룬 함양으로 가는 길이다.
김해 시민이 참여회원 다수인데 나는 창원에서 이른 아침 98번 좌석버스로 장유를 거쳐 김해 시민의 종 곁으로 나갔다. 대학 관계자가 회원들의 목걸이 이름표와 생수와 간식을 준비해 배부받았다. 답사지 함양의 역사와 인문과 자연을 아우른 자료를 마련해 일정 수행에 도움이 되었다. 답사객을 이끈 송치욱 연구교수는 학문 깊이만큼 책임감 있게 일들을 처리해 마음이 든든했다.
전세버스가 고속도로를 진입 진주로 향하면서 차내에서 일정을 소개받고 산청 휴게소에 잠시 들러 생초에서 국도로 내려섰다. 함양읍을 앞둔 수동에 위치한 남계서원이 첫 답사지였다. 함양은 지리산권으로 신라나 이후 왕조에서 변방에 속한 행정구역이다. 선사 유적이 남았고 고대 가야 문화로 토기가 발굴되기도 했다. 신라 하대 최치원이 태수로 부임해 조성한 상림 숲이 있다.
조선 초기 사림을 이끈 김종직이 함양 군수로 머물면서 문하생이 된 정여창은 나중 무오사화를 입은 중심인물이다. 정여창의 제자들이 스승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려 세운 남계서원은 영주 소수서원에 이은 두 번째로 후대 사액을 받아 훼철되지 않아 초기 서원 건축 양식 전범이 되었다. 유네스코에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받은 여덟 개 서원 가운데 경남권에는 유일한 곳이다.
남계서원 안내소에서 문화해설사의 간략한 소개를 받고 일행은 풍영루를 지나 경내로 들었다. 동편 양정재와 마주한 서편 보인재 앞에는 묘정비가 있었는데 정여창, 정온, 강익을 향사하는 송덕비를 후대에 세웠다. 강학 공간 명성당 앞 애련헌과 영매헌은 유생들의 유식 공간으로 연못 조경과 어울렸다. 명성당 뒤편 사당은 전학에 이은 후묘로 편액이 걸려 있지 않음이 특징이었다.
남계서원에서 나와 바로 곁 동문수학 김일손을 향사한 청계서원까지 들렀다. 서원 경내 안과 밖에는 우람한 소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일행은 버스로 지곡면 개평리 정여창 고가를 찾아갔다.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가 집성을 이룬 고가촌은 드라마나 영화 촬영 배경으로도 등장한 곳이다. 문화해설사는 우리 일행에게 정여창 고택이 건립 보존된 유래와 건축학적 의미를 소개했다.
이어 함양읍으로 나가 한우국밥으로 점심상을 받고 오후 일정이 기다렸다. 근년에 상림 숲이 바라보인 언덕에 덩그런 한옥으로 세운 고운 기념관을 찾아갔다. 일행은 고운루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쐬며 한 회원의 시 낭송과 한담을 나눴다. 누각에서 내려와 함양 박물관을 둘러 상림을 찾아 숲이 뿜는 음이온에서 힐링이 되는 산책으로 발걸음 가볍게 거닐고 귀로의 버스에 올랐다.
생활권에서 다소 거리를 둔 김해지만 답사객과 뜻깊은 하루를 같이 잘 보냈다. 귀갓길에 지기들한테 고적 사진과 함께 ‘함양 답사’ 시조를 넘겼다. “공맹은 추로에서 주자는 무이에서 / 궁구한 성리 도학 동으로 전래되어 / 근정전 오백 년 동안 백성 교화 힘썼다 // 좌안동 스민 유풍 우함양 뒤질세라 / 홍살문 뜨락 지나 사당에 모신 혼백 / 면면이 위패로 잇는 남계서원 찾았다” 26.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