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찾아다니는 사람
서인식/자유기고가
처음에는 시가
도서관에서 태어나는 줄 알았다.
두꺼운 시집을 옆에 쌓아 두고
어려운 단어 몇 개쯤 자유롭게 다루게 되면
언젠가 문장 끝에
시인의 그림자가 걸터앉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괜히 턱을 괴고
세상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표정부터 연습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문장은 점점 말라갔다.
시를 쓰겠다던 사람의 방에는
커피 얼룩과 담배 냄새만 늘어났고
원고지 위에는
의미를 알 듯 말 듯한 문장들만 떠다녔다.
결국 나는
시가 책상 밖으로 도망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길을 나섰다.
산골짜기로 들어가
구름이 걸린 능선을 바라보았고,
강가에서는 괜히 돌멩이를 주워
시처럼 보이는 모양을 찾기도 했다.
바다에 가서는
파도 앞에 오래 서 있기만 해도
왠지 깊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주막집이 좋았다.
저녁 무렵 허름한 주막에 들어가
모르는 사람들과 대포잔을 돌리다 보면
세상에는 이미
시인보다 더 시 같은 인간들이 많았다.
막노동을 하다 내려왔다는 사내는
허리를 두드리며 막걸리를 질질 흘리며 들이켰고,
평생 고기를 잡았다는 노인은
바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갑자기 죽은 개뼈다귀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들은 대개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시보다 오래 남았다.
나는 가끔 메모를 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취해서 글씨도 제대로 못 썼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이 또한 문학이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돌이켜 보면 꽤 우스운 일이었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비극적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되도록 유쾌하게 견디며 살고 있었다.
돼지국밥집 텔레비전에서는
하루 종일 나라 걱정을 떠들어댔고,
옆자리 사람은
월세 이야기와 정치 이야기를 섞어 말하다가
결국 막거리 값이 제일 문제라고 결론 내렸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모두의 관심은
내일 비가 오는지
버스가 끊기기 전에
집에 갈 수 있는지에 가까웠다.
나는 그 소란 속에서
오히려 시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시는 거창한 문장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농담을 던지는 사람들의 입가에 있었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서로의 잔을 채워 주는 손끝에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시를 찾으러 다닌다는 건
대단한 진실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이 원래부터
조금 우습고
조금 슬프고
그래서 끝내 사람 냄새 난다는 사실을
늦게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오늘도 누군가는 산골짜기에서
안개를 보고
강물 위에 흔들리는 저녁빛 윤슬을 바라보며
심각한 얼굴로 시를 찾고 있겠지만,
아마 시는 그런 사람 옆에서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벌써 한참을 웃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