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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이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운 추억

작성자김용복|작성시간23.06.10|조회수80 목록 댓글 0

홀아비이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운 추억

             연두흠/ 수필가

연두흠

연탄을 사용했던 옛날에는 뜨거운 물이 부족했다그래서 부모님을 따라 동네 목욕탕에 가곤 했었는데...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수도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목욕탕의 모습도 참 많이 변했다예전엔 목욕탕에 샤워기가 부족해서 탕 주변에 걸터앉아 때를 밀었고 조그만한 플라스틱 바가지로 물울 떠 몸을 씻어 냈었는데...

 

언젠가부터 아버지와 다니던 동네 작은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찜질과 목욕을 같이 할 수 있는 대형 목욕탕이 생기기 시작했다탕도 사우나실도 넓어지고 종류도 많아졌다목욕탕 안에 설치된 TV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볼 수 있다참 편리한 세상이다.

 

 어릴적 엄마를 따라 여탕에 간 기억이 난다.

 형과 나는 탕 안에서 누가 더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나 시합도 했고 플라스틱 세숫대야 두 개를 서로 포개어 배에 갔다 대고 놀았다형과 나는 그걸 ‘거북선 놀이’라고 했다몸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둥둥 뜨는 게 재밌었고 중심을 잘 잡고 물장구를 치면서 그렇게 탕 안에서 재밌게 놀았다한참을 탕 안에서 놀다 보면 갈증이 났다내가 떼를 쓰면 엄마는 손목에 차고 있던 로커 열쇠를 빼서 형에게 건네주셨고 받은 로커 열쇠의 번호를 목욕탕 아줌마에게 보여주면 우리는 비닐로 된 삼각우유를 얻어 먹을 수 있었다엄마가 차고 있는 로커 열쇠는 ‘마법의 열쇠’였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고부터 형과 나는 아버지를 따라 남탕으로 가기 시작했다엄마는 이태리 타월에 비누거품을 내서 닦아주셨었는데... 아버지는 이태리 타월로만 밀어주셨다

“홀아비 자식이라는 소리 안 듣게 깨끗하게 다녀야 한다”

라고 말씀하시며 때를 밀어주시는 아버지의 말씀에 형과 나는 늘 “네”라고 대답했었다어렸지만 내가 ‘홀아비 자식’이라는 게 마음 아팠지만 아버지가 밀어주시는 이태리 타월은 더 아팠다하지만 아버지가 무서워서 꾹 참았던 기억이 난다아버지는 탕 안에 들어 갈 때마다 “슈~우 시원하다”라고 말씀하셨고 뜨거운 물이 시원하다는 거짓말 같은 아버지의 말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는 늘 나보다 두 살 많은 형에게 당신의 등을 맡기셨다어렸지만 나도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하지만 늘 아버지는 장남인 형에게만 당신의 등을 맡기셨다나는 19살 때부터 형을 대신해서 아버지의 등을 밀어 드렸다...

 

 동내 목욕탕이 문을 닫고부터 우리 집도 연탄에서 기름보일러로 바꾸었던 것 같다뜨거운 물이 중간에 끊기기도 하고 온도가 일정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아버지는 집에서 목욕을 하셨고 나도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깔끔하셨다그래서 일주일에 꼭 한 번은 때를 밀으셨는데 아버지의 등을 자주 밀다 보니 적당한 속도와 압으로 결을 찾아 밀면 때가 더 잘 나오는 것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었다.

 그후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5년간 병원에서 고생을 하셨다유일하게 침상 위에서 내려오는 날은 일주일에 한번 있는 아버지 목욕하는 날이었다아버지는 간병인들이 물만 뿌리신다고 나에게 받는 목욕이 시원하고 좋다 말씀하셨다그렇게 아버지는 일요일에 오는 나를 꼬박 기다리셨던 것이다.

  침상 위에서 조심스레 아버지를 내려 휠체어에 앉히고 세탁기 옆에 양변기에 아버지를 앉혀 변을 보게 했다좁디좁은 공간에서 아버지가 변을 보시면 냄새로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휠체어에 앉은 채로 수염도 깎아드리고 때를 밀어드리고 발가락 사이사이도 깨끗이 닦아드리면 아버지는 좋아하셨다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 전까지 일주일에 꼭 한 번 이상 때를 미실 정도로 깔끔을 떠시던 우리 아버지... 기저귀에 변을 보시는 게 얼마나 싫으셨을까?... 몸의 절반이 마비가 오셨기 때문에 말씀하실 때는 힘들어 하셨지만 다행히 정신은 온전하셨다. 컨디션이 나쁘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만 빼고는 말이다

 아버지는 음식을 삼킬 수 없으셔서 코에 삽입한 관으로 생활하셨다그래서 양치질을 하지 못했다당신이 기어코 양치를 하고 싶다 해서 칫솔만 드렸는데 기도로 물이 들어가 숨이 막힐 뻔한 이후로 나는 커다란 면봉으로만 이빨을 닦아 드렸다머리에 기름기가 많으셔서 늘 베개에 수건을 깔아놓으시고 주무시던 아버지... 그래서 아버지 머리는 꼭 두세 번씩 감겨 드렸고 사타구니와 항문까지 손에 비누 거품을 내어서 깨끗하게 닦아드렸다목욕을 마치고 나면 침상 위에서 드라이기로 잘 말려드리고 습하지 않게 베이비파우더를 사타구니와 항문까지 발라드렸다그리고 난 바로 기저귀를 채워드리지 않았다아버지가 답답하실까 봐... 이런저런 옛날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곤 했는데  그제야 기저귀를 채워 드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아버지 목욕을 시키고 나면 삼사일 동안 허리가 아파 허리를 제대로 펴지를 못했지만 아프다는 말은 아내에게도 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너무나 큰 사치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유독 아버지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몸도 마음도 무거워  퇴근 후 대전 관평동에 있는 ‘킹 스파 사우나’를 들렸는데 젊은 아빠가 이태리 타월로 어린 자식의 몸에 때를 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요즘도 이태리 타월로 때를 밀어주나?” 보기 드문 모습이었지만 보기 좋았고 과거 우리 부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특하게도 잘 참는 아이가 더 귀여워 보였다이태리 타월 꽤나 아플 텐데 말이다.

 어릴 적 아버지와 같이 다니던 동네 목욕탕... ‘홀아비 자식’ 그리고 ‘아버지가 닦아주시던 이태리 타월’보다 더 아픈 게 있다그 옛날 형과 내게 때를 밀어주시던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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