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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참배를 통해 본 현충일의 현충원 풍속도 임준수

작성자김용복|작성시간26.06.08|조회수26 목록 댓글 0

60년 참배를 통해 본  현충일의 현충원 풍속도
             임준수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대리)

임준수 전)중앙일보 편집국장 대리


 동작동 국립묘지(서울 현충원)에서 본 현충일의 아침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맑고 처연했다. 10시 정각, 21발 조포의 첫 포문이 깊은 침묵에 잠긴 거대한 숲의 정적을 깼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관대작들의 요식적인 애국 치례가 보기 싫어 공식 행사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조포에 이어 들리는 애국가 소리는 나도 모르게 자세를 가다듬게 했다.   

 현충일 공식 행사는 올해로 71번째를 맞지만 나 개인에게는 60주년 참배 행사다. 1966년을 시초로 환갑 회차가 되기까지 참배를 거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개근 참배를 하게 된 것은 대단한 애국심에서가 아니다. 30대 초반에 과부가 된 누님의 상심이 너무 애처러워 그 슬픔을 함께하고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은 私心에서 나온 것이다. 어언 94세에 이르른 그 누님은 2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하여 현충일에 남편 묘소에가 보지 못하고 있다

 60년간 고정 참배객으로 동작동 국립묘지를 들락거리다 보니 나는 본의 아니게 현충원의 현충일 풍속도에  정통하게 되었다. 만일 누가 현충원의 생태계 변천사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면 인터뷰 대상 1호로 나를 찾아야 할 것이다. 나만큼 그 변천 과정을 빠삭하게 아는 현장 체험자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60년 개근 참배를 통해 터득한 그 식견(?) 일부를 고찰 사례로 소개한다.

동작동 국립묘지(서울 현충원)


 올 추모행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것은 묘소마다 꼽혀있는 弔花 한 송이가 일제히 造花에서 生花로 바뀐 것이다. 비록 시들어 있었지만 단 몇 시간이라도 싱싱한 꽃을 헌정받은 영령들은 흐뭇해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꽃들을 화병에 꼽은 손길이 여학생들의 섬섬옥수가 아닌 현역 사병들의 거친 손길이라는 점이다.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수백 명의 여중고생들이 와서 조화를 바치는 뉴스 보도가 시민들을 감동시켰다. 그런 정겨운 모습이 사라진 것은 학생들이 과외공부에 바쁘거나 학생동원 시대가 지난 때문인지 모르겠다.

造花에서 生花로 바뀐 묘역의 모습


 매년 현충원을 찾으면서 내가 가장 주목한 곳은  6.25전몰자 묘역이다. 1970~1980년대만 해도 현충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곳(일반묘역)에는 참배객들이 성시를 이루었다. 대개 전몰자의 부모이거나 친지들이었다. 장가도 못가고 산화한 영령들이 대부분일테니 아내나 자식이 있을 턱이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부터 6.25묘역은 참배객이 부쩍 줄어 전몰자의 노모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하루종일 땡볕아래 묘소를 지키는 모습이 가물에 콩 나듯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애처러운 자태도 찾아볼 수 없는  무주공산이 되고 말았다.


 참배객이 가장 많은 곳은 나의 매형 등 월남전 전몰 장병들이 묻혀있는 51묘역이다. 현충일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월남전 참전장병들 중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많다. 그 중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해병 제복에 권총(장난감)까지 찬 차림으로 불안정한 걸음을 걷는 참전용사가 있었는데, 이번 현충일에는 그 노병이 보이지 않아 염려스럽다. 전우의 묘비를 쓰다듬으며 방성대곡하던 그  경상도 할배가 오후엔 다시 나타나기를 빌며 이른 아침의 제 60회차(에누리) 현충일 참배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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