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부부와 여름나기 여행
덕천 염재균/수필가
무더위를 동반한 6월 중순 햇살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한다. 서늘함이 묻어나는 나무 그늘을 찾거나 바람결이 지나가는 다리 밑을 서성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기력하게 지낼 수는 없다. 노년의 삶을 필자는 건강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다. 사람들은 수많은 작은 행복 속에 행운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무더움이 있는 여름임에도, 향수의 고장 옥천에 살고 있는 동창 부부와 1박2일 일정으로 제천 등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하지만, 무더위라고 우리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는다는 평일 여행을 하기로 해서 아내와 같이 옥천읍의 한 아파트로 갔다. 농촌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아파트라 살기 좋은 곳이라 느껴진다. 동창 친구가 여행하는 동안 운전을 맡기로 했다.
초록의 퍼즐이 완성된 농촌의 들녘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첫날의 목적지인 제천의 의림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였는데, 잘 가꾸어진 노송과 의림지가 어울려 관광지로 더욱더 유명하다고 한다.
가꾸기 나름이라는 말이 의림지에 어울리는 것 같다. 살갗을 데울 정도로 심한 무더위로 인해 그늘진 곳으로 다녀야 할 정도로 사람을 힘들게 한다. 의림지의 물들도 농업용수로 사용 중이라 그런지 부유물이 보일 정도로 수량이 많이 줄어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울창한 모습의 소나무라도 더위에는 약한 것 같다. 솔잎이 누렇게 색이 바래가고 있다. 핏기를 잃은 얼굴처럼 보인다. 모 방송국에도 나왔던 촬영 장소인 소나무 근처의 의자에 앉아 시원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더위를 식히려 애써 본다. 폭포를 가로지르는 투명 유리로 된 다리를 건너며 시원한 물줄기를 보노라니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나오다가 근처에 있는 역사박물관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함이 몰려온다. 박물관을 전시된 내용물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규모가 큰 건물에 내용물이 너무 빈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필자만의 생각이기를 바랄 뿐이다.
다음 목적지로 가기 전에 점심을 조금 일찍 먹기로 했다. 아침에 간단하게 삶은 달걀과 토마토 등으로 간단하게 먹었기 때문이다. 주차장이 넓은 도로변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돈가스와 소바를 주문했다. 이곳이 맛집이라는 것을 음식을 먹으며 알 수 있었다. 몰려드는 손님들로 식당 안은 빈자리라 없을 정도로 우리들의 입맛을 돋아나게 했다.
불황을 모르는 식당의 비결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식당을 나와 청풍호반을 조망해 볼 수 있는 비봉산 정상으로 가기 위한 ‘청풍관광모노레일’을 타려고 꾸불꾸불한 도로를 따라 달렸다. 평일이라 사전에 예약 없이 곧바로 탈 수 있었다. 숲속의 우거진 길을 따라 이어지는 모노레일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경사진 곳을 따라 산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시원해야 할 숲속은 무더운 열기로 인해 냉기를 잃은 지 오래인지 덥게만 느껴진다. 마지막 힘을 다해 드디어 정상에 올라 우리 일행을 토해낸다. 정상에 있는 3층으로 올라가 청풍호반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마음속에 저장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더운 열기로 인해 많은 시간을 머물려고 해도 머물 수가 없다.
지난 5월 청풍호를 가로지르며 유람선을 탔던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날은 때아닌 비가 내려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이번은 무더운 열기로 인해 아쉬움이 크다. 여행에 있어서 완전무결한 여행은 없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생각나는 산 정상이다. 다시 내려가는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와 예전에 안면이 있는 매점으로 갔다. 필자의 아내가 감자전의 맛이 그리워서 다시 왔다고 하니 주인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감자전을 만들어 푸짐하게 우리에게 내놓았다. 시원한 막걸리와 함께 먹으며 행복의 미소가 흐르고 있다. 오늘 의미 있는 추억의 시간은 기억이라는 상자에 담길 것이다.
오늘 밤에 묵게 될 숙소인 단양의 한 호텔로 가서 방을 배정받았다. 10층으로 단양강은 볼 수 없지만, 초록의 산은 볼 수 있는 아늑한 곳이다. 단양에 오면 ‘구경시장’을 들려야 한다고 한다. 단양은 필자가 충북에 근무할 때 기피하는 지역으로 승진자가 오거나 징계처분을 받은 사람들이 오는 유배지와 비슷한 곳이라 했다.
지금은 바뀌어 근무하기 좋은 곳이라 떠날 때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시장 안을 구석구석 돌아보니 음식 냄새에 취해 버티기 힘들다. 저녁에는 소화가 잘 되는 것을 먹으려고 두부를 하는 식당으로 갔다. 필자가 주문한 얼큰한 두부는 너무 자극성이 있어 다음에 먹는다면 담백한 맛의 순두부를 먹어야겠다.
손님 스스로가 해 먹는 달걀후라이와 구수한 맛의 누룽지는 입맛을 살아나게 한다. 소화를 시키기 위해 단양강 잔도 길을 따라 걸었다. 강의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있는 것 같다. 느림보처럼 천천히 흐르는 단양강은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인다. 선비가 유유자적하며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만천하 스카이워크’가 산 정상에 우뚝 서 있다.
관람 시간이 지나 그림의 떡처럼 바라만 보고 있다. 어둠이 내리니 잔도 길에는 가로등처럼 불이 켜져 황홀감을 자아낸다. 단양강을 가로지르는 철교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참을 걷고 나니 발바닥에 불이 났다며 아내들이 불만을 쏟아 낸다. 모두가 몸에 무리가 온 것에 대해 나만 생각하고 잔도 길을 다녀오자고 한 것에 미안할 따름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가 내일의 일정을 상의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의 아침이 밝았다. 자명종 시계가 없는데도 일찍 일어나니 나이를 먹을수록 수면시간이 줄고 있는 것 같다. 피곤함은 아직도 남아 있어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호텔의 조식이 아닌 가지고 온 재료들로 간단하면서도 영양가 있는 식단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호텔을 나와 역사의 숨결이 흐르고 있는 영월로 향했다.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사방이 감옥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청령포의 현장을 찾아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 덕분인지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승지로 변했다. 청령포로 가는 배는 순식간에 타고 순식간에 내린다. 가뭄 탓인지 물의 양도 많이 줄었다. 수많은 바닥의 돌들이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우람하게 자란 뽕나무와 아름드리 적송들이 청령포를 감싸고 있다.
유배를 와서 2개월 동안 머물면서 치욕의 순간들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는지 우뚝 서 있는 관음송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슬픔을 아는 소나무들도 집을 향해 굽어 있어 단종을 생각하는 마음이 사람 못지않아 보인다. 주차장으로 와서 언덕에 있는 빵집의 간판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영화의 인기를 간판에 사용한 상술이 돋보인다. 호기심에 빵집을 찾을 것만 같다.
다음으로 간 곳은 단종이 잠들어 있는 장릉이다. 먼저 ‘단종역사관’에 들려 단종의 탄생과 유배, 죽음과 복권에 이르는 관련 자료를 살펴봤다. 역사관을 나와 조금 걸으며 숲속 길의 소나무가 반기고 있는 오솔길을 따라가니 장릉의 능침이 눈에 들어온다. 봉분 하나에 석물은 왜소하고 간단하게 조성되어 있다. 봉분 좌우에 있는 망주석은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세호(細虎)가 없다고 한다. 장릉 밑에는 애환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인지 하얀 망초꽃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다시는 이러한 역사적인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올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영월의 시장에서 올챙이국수와 메밀전 그리고 넉넉한 인심을 몸으로 느끼며 여행은 길 위의 독서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노년의 삶이란 오래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동창 부부와 함께한 1박 2일간의 여름나기 여행은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 보람 있는 시간이였다.(2026.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