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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김혜순

작성자강여울|작성시간02.05.31|조회수38 목록 댓글 0




김혜순




그대가 답장을 보내왔다
아니다 그대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는데
나는 답장을 읽는다
病은 답장이다

(그대가 이 몸 속에 떨어져 한 번 더
살겠다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아보겠다고
뜨거운 실핏줄 줄기를 확,
뻗치는구나 견딘다는 게 病드는 거구나)

내 피부에 이끼가 돋는가 보다
가려움증이 또 도진다
내 사지에서 줄기가 뻗치는지
스멀스멀한다
온몸 위로 뜨거운 개미들이
쏘다닌다

그대가 또 시도때도없이
가지를 확 뻗친다

내 손가락이, 네게 닿고 싶은 내 손가락이
한정 없이 한정 없이 늘어난다
이 손가락 언제 다 접어서 옷소매 속에 감출까?
몸 속에는
너무 익어 이제는 터져버리는 일밖에 없을
홍시들
울 듯 말 듯

오늘밤 벌써
내 얼굴 밖으로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나는 또 젖은 흙처럼
이부자리에 확 쏟아져버린다

보내지도 않은 그대의 답장을 읽는 밤
나는 또 하룻밤 안에
사계절을 다 살아버린다


**내 병은 너무나 깊어
백지다
아무리 읽어도 다 읽지 못한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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