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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오줌 누고 싶다/이규리

작성자강여울|작성시간05.08.12|조회수65 목록 댓글 0


서서 오줌 누고 싶다



이규리



여섯 살 때 남자 친구 소꿉놀이 하다가
쭈르르 달려가 함석판 위로
기세 좋게 갈기던 오줌발에서
예쁜 타악기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좋아, 그 소릴 내고 싶어
그 아이 것 빤히 들여다보며 흉내냈지만
어떤 방법, 어떤 자세로도 불가능했던 나의
서서 오줌 누기는
목내의를 다섯 번 적신 뒤, 축축하고
허망하게 끝났다

도구나 장애를 한 번 거쳐야 가능한
앉아서 오줌누기는
몸의 길이 서로 다른 때문이라해도
젖은 사타구니만큼이나 차가운 열등이었다

그 아득한 날의 타악기 소리는 지금도 간혹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로 듣지만
그 소리엔 젖어 축축한 그늘이 있다

서서 오줌 누고 싶다
마지막 한 방울의 우울까지 탈탈 털어내고 싶다


-계간 [작가세계] 2003. 봄호 -

**어제 마실을 갔다가 이 시를 만났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어릴 때 언덕에서 놀다가 남자 아이가 고추를 꺼내 갈기던 오줌발이 그리던 포물선을 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기억해 보았지만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오줌을 갈길 때 기세 좋던 고추가 오줌발이 끊어지자 맥없이 주저않는 것과 함께
내 신기함도 그쳤던 것 같다.

그래서 한 줄 꼬리글을 달아놓고, 내 집을 너무 오래 비워놓았다는 생각에
먼지도 털겸 이리로 옮겨 놓는다.


**둥근 그림


나는 서서 오줌 누고 싶어 한 적 없다. 하루에도 몇 번을 탈탈 털어도 결국 다 털어내지 못한 말뚝 박고 싶은 본능이 남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앉아서 오줌 누지 않는다면 대지가 졸졸 즐겁게 대답하는 소릴 들을 수 없다. 오줌을 누는 것은 내놓고 해도 좋은 정사다. 하늘이 엉덩이를 내릴 때마다 산이 내뿜는 입김은 그림이다


젖은 사타구니의 위대한 힘, 물기 없는 사막은 생명을 밀어낸다. 그러나 젖은 물가는 사철 재잘재잘 시끄럽다. 남은 우울이 없이 기쁨을 알랴. 멀리까지 보내기 위해 쥐어짜야할 설움, 아무것도 묶어 둘 수 없는 약한 말뚝의 눈물. 나는 서서 오줌 누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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