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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나눔

[묵상]지난 날들이 돌아봐 질 때...

작성자Wen Xiongche|작성시간06.08.28|조회수50 목록 댓글 3
지난 날의 후회들
 
그 때 그렇게 했더라면 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확신 속에 있었다고 믿었지만, 그리고 결코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들이 꼬여져 갈 때 그런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곤 한다.   차라리 그 때 그렇게 했더라면이라고.
 
오늘 아침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라는 것을 묵상하면서 나는 그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것은 상황에 대한 이해나 그 상황의 정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바를 믿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오늘 낮에 또 한번의 인사 면담이 있고는 다시 흔들린다.  다시 내 마음은 상심을 하게 된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지만 나는 내 기준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고 또 그로 인하여 상심하고 낙망 하게 된다.  왜 일이 이렇게 꼬여 가는 것일까  이럴 줄 알았더면 그 때 차라리 귀국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온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풀려 가는 것 같고 나는 계속적으로 꼬이는 듯할 때,  내가 그렇게 원하는 것을 바로 내 옆 사람이 차지하는 것을 볼 때 조차도 나는 기뻐하기로 결정하고 그 모든 일에 감사하면 축복할 만큼 자라지 못한 것 같다.   내게 아무런 일도 없을 때, 내가 평안하고 여유로울 때 나는 얼마든지 다른 이들을 축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내 앞에 벌어지는 상황들이 낙심 되게 하고 소원에서 멀어지며 나는 떨어지고 남들이 붙는 것을 보면서 축복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영역임을 절실하게 절감하게 된다.
 
요셉을 다시 묵상한다.
흔히 꿈의 사람, 비전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요셉은 결코 자기가 원하여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하여 나는 그가 꿈을 가지고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 간 삶이라고 보여지는 부분을 발견하기 어렵다.   단지 꿈과 연결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린 시절의 꿈을 자주 얘기했고 그가 꾼 꿈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 정도 일 것이다.   그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급으로 팔려가면서 그는 아버지 밑에서 사랑 받던 그 좋은 시절은 이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살아갈 때 나는 그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별히 애급의 총리가 될 그런 꿈을 꾸면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고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필경 그 상황에서 그에게는 그런 꿈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노예의 신분이었기에 다른 무엇을 하려고 준비한다든지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가만 있으면 그는 그냥 노예로 그 집에서 그렇게 늙은 집사가 되어 한 평생을 보디발의 집을 섬기고 살아 갔을 것이다.   별일이 없었다면 그에게 꿈이란 그냥 보디발의 집에서 평안하게 수석 집사로 그렇게 살다 평안히 하늘 나라로 가는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 당시 그에게 그 옛날의 꿈이 가슴에 살아 펄떡 거리고 있었을까?  나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한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는 그에게 그런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그가 맡은 일에 대하여 성실하고 충성 되이 일했음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주인이 보건 보지 않건 관계없이 정직하고 신실하게 임무를 다했다.  그가 형을 원망하며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며 세월을 보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환경 가운데 그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주인의 안주인의 명령에도 의롭지 못한 일에 대하여 단호하게 거절하기까지 그는 올바르게 처신했다.   그 사건으로 그의 길은 평범한 어쩌면 안정된 노예의 삶에서 변화를 주게 된다.   그렇게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이었다.  그 시험을 통과하여야만 그는 노예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 노예 상태는 그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벗어 날 수 없는 것이다.   종신토록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는 그 상황은 그의 꿈이나 비전으로 변경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바꾸시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디발의 아내를 보내므로 그가 노예에서 해방되게 된다. 
 
그에게 노예에서의 해방은 자유가 아니라 노예보다 못한 죄수의 자리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이에 대한 요셉의 반응을 본다.   성경의 어디에도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며 괴로워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죄인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혀 이런 후회를 했다는 의심이 가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감옥에 갇힐 줄 알았다면 그렇게 거절하지 않는 것인데, 그냥 적당히 응해 줬다면 그 집에서 안정되게 오히려 더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렇게 선한 척, 잘난 척해서 이렇게 감옥에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하며 한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감옥에서도 역시 그의 정직함과 신실함으로 주어진 일에 전심으로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분명하게 보여졌다는 것이다.   비록 그가 술 맡은 관원에게 그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자기를 기억해 주기를 간청하며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소망이 간절히 있었지만, 그는 결코 그 억울함으로 인하여 침울하게 과거에 묶여 혹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스러워 하며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린 체 그렇게 지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 가운데서 나는 역시 그가 애급의 총리가 되는 그런 꿈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에게 꿈이 있다면 어떻게 감옥에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정도였을 것이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것은 단순히 그를 애급의 총리로 세우는 그런 작은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고 그 후세를 통하여 인류 구원의 역사를 계획하시는 거대한 비전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작은 충성에서 시작되어 시험되고 광야를 거치며 그 시험을 통과해 나가면서 하나님의 때가 차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기 원한다.  정말 속이 시원하도록 역전된 상하관계 속에 내게 상처 주고 아픔을 준 그를 다시 만나길 원한다.  내가 성공하여 내 밑에서 용서를 구하는 그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만약 애급의 2인자 총리가 된 이후에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보디발의 아내가 아니었을까?   그를 내 앞에 불러서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 시키고 내 앞에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고소하게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통쾌할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지 않았다.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거니와 그이 형들과의 대면 장면을 보면은 그의 마음에 이미 그런 일들에 대하여 단 한 점의 원한이나 원망이 없음을 보게 된다.   그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었음을 충분히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었고 오히려 그들을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있을 때, 그리고 모함을 받아 감옥에 죄인으로 있을 때조차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고 그렇게 인정하고 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그 역시 힘들어 하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어려움만 계속 되는지 번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루 속히 그 억울함을 벗어나고 싶어했고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가 어찌할 수 없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 그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서는 성심 성의를 다했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대답하는 말로 보건 데 항상 하나님께서 그를 보고 계시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득죄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을 보면 그가 하나님 앞에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상으로 나타나셔서 환상을 보여주고 계시를 하시고 하셨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삶을 통하여 모든 상황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였고 그 앞에서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하여 대단히 민감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지금 내게 주어지는 상황들이 점차 힘들어진다 형들에게 미움받는 것보다 더 힘든 노예로 그리고는 더 떨어질 것 없을 것같은 상황에서 다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죄인의 신분으로 옮겨 가면서 여전히 신실했던 바로 그 요셉을 기억하자.
우리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때가 채워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볼 것이고
그리고 순간 순간 내 앞에 놓여지는 시험을 통과하는 것들이, 그 어려움의 시간들이
하나님의 때를 채워 나가는 작업들이 될 터이니...
 
뒤를 돌아보지 말자. 앞만 보고 나가자.
현재 주어진 땅에서 전심 전력으로 최선을 다하자.
후회하지말고 원망하지 말고 사랑하며 축복하자
그리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로 결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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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수아네 | 작성시간 06.08.28 아멘!
  • 작성자진쯔샨 | 작성시간 06.08.29 집사님 방가방가~행여 소식이 있나 궁금했는데 반가워요.항상 뒤돌아보면 후회가 많은것들이 많아요 요즘 저희들도 지난 3년여의 중국생활을 보며 후회막심할때가 많아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하시고 우릴기다리시는 주님께 왜 집중하지 못하는지..주안에서 늘 묵상하시는 모습이 오히려 부럽네요.화이팅!!
  • 작성자일사각오 | 작성시간 06.09.23 "god works" 하나님의 일하심에 순종하시는 모습이 아릅답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 현재 하늘 문을 여시고 부으 주십니다. 그 은혜를 계속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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