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바오로 신부님이 저희 용문성당으로 부임하셨습니다. 미사를 땡치고서 얼른 아래로 내려가서 흡연을 하면서 친구를 만나서 부랴부랴 마리아관으로 향했습니다. 국수파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이 먹는데, 친구가 떡을 억~수로 좋아하여서 놀랐습니다. 그러고 나서 친구를 부모님께 소개시키고 나서 집으로 왔습니다.
주님은 특별한 일을 통하여서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계시는 것 같습니다. 갖가지 온갖 힘겨운 일을 겪으면서 정말로 괴로웠던 건 아무런 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일에 아는 사람을 만나서 인사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지낸 오늘 하루는 너무도 벅찬 행복이었습니다.
인간이 주님 곁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원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죄의식이 없다면, 기도도, 고해 성사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죄의식이란 어떤 잘못을 한 때문이 아니라, 원래 인간이 지닌 원죄의식입니다. 원죄는 감정적인 행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다른 충동질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는 아버지와의 불화에서 되게 오랜 시간 동안 죄의식을 느껴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어느새 성당을 다니면서 기쁨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어머님과 성령 기도회를 가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또는 따로 미사 시간에 참석하면서 '아버지가 어디 계실까?'하고 궁금해하는 시간에서, 또한 같은 구역의 반장이신 분께 인사를 드리면서, '아! 아버지도 반가운 분이 나에게도 반갑군나.'라고 느끼면서 아버지와 가까워졌습니다. 주님은 어느 곳에서나 계십니다. 그걸 찾을 수 있는 은총을 우리 모두에게 청합니다.
이 승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