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외 2편
윤석용
끊어진 빨랫줄에 엄마가 서 계신다
칠팔월 불볕더위 끄떡없이 견디더니
다 삭은 무릎 관절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악어 입술 집게 하나 빨랫줄 물고 있다
새하얀 홑이불도 바람 앞엔 속수무책
고단한 울 아버지도 괜찮다고 웃으신다
뭇별들 속삭임에 살포시 내린 이슬
오선지 남던 날들 달려오는 솔바람
곱디곤 등불 하나가 내 안부를 묻는다
나침반
눈빛에 이끌려서 이곳으로 자리했네
북쪽만 바라보던 인연이 흔들리고
바람은 무거운 발걸음 낯선 곳을 향한다
수많은 이야기가 녹음되어 재생되고
구겨진 하루하루 발끝에 매달린 채
숨 가삐 달려온 시간 조금씩 밀어낸다
용돈과 기부사이
-어느 중학생의 3만 원짜리 콩 한 봉지*
도로를 끓이던 오후가 지워졌다
땡볕을 깔고 앉아 채소 파는 백 세 할매
새까만 비닐봉지에 기다림이 담긴다
하굣길 중학생이 가던 길을 멈춘다
감춰둔 비밀 용돈 할머니께 드리자
강낭콩 먼저 뛰어가 가던 길을 세운다
*한국일보 2025년 7월 16일자 기사
윤석용 신인상 심사평
올 하반기 신인상 당선자로 윤석용 님을 선정한다. 응모작품 전편을 통해 시조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잘 갖추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앞으로 좋은 작품을 쓸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작품 곳곳에서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장착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더 깊은 성취를 위해선 끝없는 적공이 따라야 할 것이다. <옥상에서>, <나침반>, <용돈과기부 사이> 세 편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옥상에서>는 첫수 초장 전구의 ‘끊어진 빨랫줄’을 내세워 이미 지나간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지만 둘째 수 초장 후구의 ‘빨랫줄 물고 있다’라는 전언으로 지난날과 단절된 것 또한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옥상은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는 도시인들에게는 잃어버린 공간이다. 어린 시절 옥상에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인이라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옥상에서 바라본 별, 저 멀리 반짝거리던 등불이 떠오르며 순수했던 시절로 잠시 돌아가게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어찌 사느냐며 안부를 물어 온다.
<나침반>은 지구의 자성에 반응하는 자침으로 방향을 파악하는 장치이다. 먼 길을 갈 때 길잡이가 되어 주는 나침반은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하나의 은유로 등장한다.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키듯 뭔가 마음이 가는 곳, 발길을 끌어당기는 마음속의 나침반도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선 첫수 맨 첫음절인 ‘눈빛’이 나침반 역할로 화자를 이끌고 왔으나 인생의 여정에는 변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북쪽만 바라보던 인연’에 ‘바람’이 작용하여 ‘발걸음 낯선 곳을 향’하게 한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원숙해진 화자는 ‘숨 가삐 달려온 시간 조금씩 밀어’내는 연륜을 쌓아가는 것이다.
<용돈과 기부 사이>는 신문 기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두 수로서 나름 완성도를 갖추었지만, 이야기를 보다 풍성하게 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을 전한다. 두 수가 너무 압축되어 서정이 들어설 여지 없이 팽팽한 문맥이다. 날짜를 보니 최근의 기사라 시적 형상화에 서두른 감이 있어 보이는데 세수 정도로 잘 구성하면 감동적인 작품이 될 것 같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시인으로서의 큰 발전을 빈다.
-심사위원: 이 광(글), 김 정, 최성아, 하정철
-《부산시조》 2025년 하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