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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墨,회화(繪畵)

문동(文同)의 묵죽도(墨竹圖)

작성자여명(黎明)|작성시간12.08.29|조회수630 목록 댓글 0

 

 

 

 

                             문동(文同)의 묵죽도(墨竹圖)

 

 

新晴山月(신청산월) 신청산 달밤에 - 文同(문동)     

       

高松漏疏月  落影如畵地

고송루소월  락영여화지 

 

俳徊愛其下  及久不能寐

배회애기하  급구부능매 

 

怯風池荷卷  病雨山果墜 

겁풍지하권  병우산과추

 

誰伴余苦吟  滿林啼络緯

수반여고음  만림제낙위

  

높은 소나무 사이로 달빛이 스미니

소나무 그림자는 땅 위에 그림일세

그 풍경 좋아서 그 아래를 맴돌다가

밤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네

바람에 연잎은 돌돌 말리고

산과일 비를 맞아 뚝뚝 떨어지네

나와 함께 시 읊는 이 누구일까

숲 가득 울려 퍼지는 베짱이 울음소리. 

 

文同(문동 1018~1079)  중국 북송(北宋)의 화가. 자는 여가(與可), 호는 소소선생(笑笑先生)· 석실선생(石室先生). 지호주(知湖州)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문호주(文湖州)라고도 부른다. 송사(宋史)에 전(傳)이 있다. 소식(蘇軾)은 그의 시(詩)·사(詞)·그림·초서(草書)를 '4절'(四絶)이라고 칭찬했다. 산수·화조(花鳥)를 잘 그렸고 묵죽(墨竹)에 뛰어났다. 그 자신이 말하기를 "마음이 맞지 않는 바가 있는데도 풀 데가 없으므로 묵죽에 펴 본다"고 할 정도로 항상 대나무를 그려 자신의 사상·감정·인품의 수양을 표현했다. 양주(洋州)에서 관직을 지낼 때 죽향(竹鄕) 원당곡에 깊이 들어가 대나무를 관찰하고 몸소 익혔다. 묵색의 농담(濃淡)과 명암으로 대나무의 각종 형상을 묘사해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진보를 이룩했다. 미불(米芾)은 "묵의 깊이로 면(面)을 삼고 옅음으로 배경을 삼은 것은 여가(문동)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했다. 그는 묵죽예술을 회화의 독립된 영역으로 발전시켰으며 그 시대는 물론 후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종사촌인 소식이 그에게서 대나무 그리는 법을 배운 적이 있었으므로 후세에 '문·소'(文蘇)로 함께 불리기도 했다. 남송(南宋)과 금(金)·원(元) 시대의 묵죽파들도 모두 그를 본받아 정종(正宗)으로 삼았다. 원대에 묵죽의 대가로 꼽히던 오진(吳鎭)은 문동화파의 화가 25명을 가려내어 문호주죽파(文湖州竹派)라는 책을 엮어냈다. 그의 그림은 몇 폭 남아 있으나 초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일설에는 그가 길에서 싸우는 뱀의 형상을 보고난 뒤 초서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시문집으로 단연집(丹淵集)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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