鍾繇 (종요; 151~230)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정치가 ·서가(書家).
자(字) 원상(元常). 영천군 장사현(潁川郡 長社縣:河南省 長葛縣) 출생. 후한(後漢)에서 벼슬하여
상서복야(尙書僕射)에 올랐으나, 조조(曹操)와 제휴하여 위(魏)나라 건국 후에는 조조 이후로 3대를 섬겨 중용되었다.
글씨는 팔분(八分: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에 뛰어나, 호소(胡昭)와 더불어 ‘호비종수(胡肥鍾瘦)’라 일컬어졌다.
왕희지(王羲之)는 특히 그의 글씨를 존경하였다 하며 《선시표(宣示表)》《묘전병사첩(墓田丙舍帖)》
《천계직표(薦季直表)》 등이 법첩(法帖)으로 전해온다.
그 가운데 《천계직표》는 계직이라는 인물을 문제(文帝)에게 추천한 상표문(上表文)으로
왕희지보다 앞서는 고체(古體)의 해서로 씌어 있는데 후세에 만든 위작이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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