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추워!”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예술촌에 있는 사진작가 배병우(59)의 작업실 건물에 들어서면서 나는 “추워요~”하며 덜덜 떨었다. 안 그래도 영하 10도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날씨인데, 그는 난방도 하지 않은 실내에서 분홍색 스웨터에 분홍색 목도리를 꽁꽁 두른 차림으로 일하고 있었다.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예술촌에 있는 사진작가 배병우(59)의 작업실 건물에 들어서면서 나는 “추워요~”하며 덜덜 떨었다. 안 그래도 영하 10도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날씨인데, 그는 난방도 하지 않은 실내에서 분홍색 스웨터에 분홍색 목도리를 꽁꽁 두른 차림으로 일하고 있었다.
- ▲ /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사실 배병우에게는 난방이 필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는 늘 자연, 즉 야외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그는 40년째 자연을 사진 찍고 있고 25년째 숲에서 소나무를 찍고 있다. 최근엔 초기 작업인 바다 사진에 다시 빠져 남해안을 떠돈다.
“추위에 떨어도 대자연 숲 속을 걷는 건 정말 좋아요. 40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하 20도 실외에서 종일 사진을 찍어도 끄떡없었는데, 지금은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 ▲ 배병우의 소나무시리즈 (2008)
800㎞면 서울~부산 왕복이네요. 사진 장비만 해도 무거웠을 텐데…. “어휴, 사진 장비가 30㎏이에요. 그런 거 짊어지고 매일 30㎞씩 걷는 건 완전 극기훈련이었죠.”
요즘 현대사진은 아이디어가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참 원시적으로 사시네요. “네, 저 촌스러워요. 어떤 외국 전문가가 그랬어요. 당신 작품은 현대사진이 아니다, 동양화 같다. 그런데 바로 그거예요. 한국적인 느낌이 나니까 외국에서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작가 작품에서는 ‘I am Korean’이 나오면서 보편적인 미적 감수성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적이라, 그의 사진에서 수묵화 느낌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찍어 아무 가공 없이 내놓는데, 그의 풍경은 실경(實景) 산수(山水)가 아니라 뜻을 그린 사의적(寫意的) 동양화 같은 면이 있다. 동트기 직전 새벽안개가 자욱한 소나무 숲이나 어스름한 밤바다는 흑백 모노크롬(단색)으로 표현돼 더 관념적이다.
경주 남산의 소나무, 제주도, 타히티 바다 등 왜 늘 자연만 찍나요. “전남 여수에서 나서 고등학교 때까지 자랐어요. 고향집 뒷산에 소나무가 있었는데,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자리 잡은 풍경이 바로 소나무이고 바다인 거예요. 저한테는 자연이 모든 것의 원천이에요.”
지난 2~3년간 국내외 미술시장이 호황일 때 즐거웠던 대표적인 작가가 배병우다. 2005년에 가수 엘튼 존이 런던에서 그의 소나무 사진(130×260㎝)을 2700만원에 산 게 크게 뉴스가 됐고, 2007년엔 홍콩 크리스티경매에서 소나무 사진(120×120㎝) 두 점 시리즈가 13만8000달러(약 1억3000만원)에 낙찰되는 등 그와 관련한 시장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죄송하게도 선생님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은 꼭 ‘돈’ 얘기를 합니다. “국내외 경매에서 비싸게 팔린 게 자주 뉴스가 돼서 그런데, 전 IMF를 겪었기 때문에 지난 호황기 때 사실 즐거움보다는 걱정이 컸어요.”
지금 국내외 미술시장이 다 나빠졌는데 어떤지요. “경제가 안 좋으니까 저 역시 별로 안 좋은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것에 영향 받을 나이는 아니잖아요. 이제 막 시작한 젊은 작가라면 값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게 커리어에 매우 안 좋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사진만 40년 찍었고, 이젠 안정된 위치에 들어갔잖아요. 그래서 시장 변동에 별로 흔들리지 않아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 1 알함브라 궁전 시리즈(2007) / 2 알함브라 궁전 시리즈(2008)
배 선생은 현장을 중시하는 작가시죠. “아무래도 여행을 다니며 자연을 찍고, 또 세계 곳곳에 남의 전시도 많이 보러 다니니까요. 학생들한테도 현장얘기를 많이 해줘요. 여기 서재에 있는 도록을 다 스캔해서 컴퓨터에 넣어놓고, 학생들이 다른 작가와 비슷한 작품을 하고 있으면 찾아서 꺼내 보여줘요. 네가 이 걸 극복해야 하고 아류가 되지 않아야 한다, 라고. 사진만이 아니라 그림도 보여주고, 학생들에게 필요한 거라면 아트페어와 경매 도록도 가리지 않아요.”
왜 사진을 시작했나요. “원래는 그림을 그렸죠. 고등학교 때 미술반이었는데, 카메라를 좋아해서 들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찍었어요. 대학(홍익대 응용미술학과) 때 사진 하는 친구가 한 명 있어서 같이 다니며 찍다가 이렇게 됐죠.”
그땐 사진이 인기장르가 아니었을 텐데, 요즘 사진은 미술의 중심 장르가 되었죠. “추사 김정희 글씨가 아무리 좋아도 외국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사진은 전세계 누구나 즉각적인 이해가 가능한, 뛰어난 비주얼 랭귀지(visual language)예요.
제가 외국어는 잘 못하지만 외국에서 누구를 만나도 제 사진 보여주면 금방 소통이 되고 멋진 사진을 찍어 주면 금방 친해져요. 전 사진의 그 점이 제일 좋아요.”
그런데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샵 덕분에 아마추어도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어서 사진가에게는 엄청 위기 아닌가요. “네, 사진가가 도전 받고 있는 거 맞아요. 그런데요, 잘 보시면 진짜 스트레이트로 사진 잘 찍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어요. 못 찍은 사진 손 암만 봐도 좋아지는 줄 아세요? 그리고 포토샵으로 만진 사진은 생명력이 없어요. 전 아주 약간 톤 정리하고 먼지 털어내는 것 외에는 트리밍도 안 해요.”
그는 책꽂이에서 독일의 세계적 사진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사진집을 빼어 펼치더니 “이 사람이 아이디어만 좋은 줄 아세요? 사진도 진짜 잘 찍거든요. 일단 완벽한 사진을 찍은 다음에 아이디어도 있는 거지요” 했다. 하지만 디지털이 아닌 필름을 쓰는 건 아마 배씨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아직 못 찍어본 자연이 있나요. “북한의 황량한 풍경을 찍고 싶어요. 아름다운 금강산 말고 황량한 풍경. 당장 올해는 봄이 오면 스페인을 다시 걷고 싶어요. 800㎞ 다시 다 걸을 자신은 없고, 특히 좋았던 곳만 골라 20~30㎞씩 열흘, 딱 200~300㎞만 걷고 싶어요.”
배병우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인 한국 사진가이면서, 국내에서 사진을 인기장르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1950년 전남 여수생으로 홍익대 응용미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부터 서울예술대(전 서울예술전문대) 사진과 교수로 있다. 2006년 스페인 티센미술관 개인전, 2008년 벨기에 브뤼셀 ‘한국문화 페스티벌’전 등 활발한 활동. 작년 말엔 세계적 미술전문 출판사인 하체 칸츠(Hatje Cantz)를 통해 작품집을 냈다. 세계문화유산인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전 측의 의뢰로 지난 2년 동안 알함브라궁전과 주변을 찍었고, 올해 초 알함브라궁전 안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전시할 계획이다.
/ 이규현 미술저널리스트 artkyu.tistory.com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