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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행서.초서

해서 / 서체종류

작성자어람. 최증수|작성시간08.05.14|조회수961 목록 댓글 2

 

 

    ◈해 서 ( 楷 書 )

  • 예서가 더 실용적으로 변모하면서 위진 남북조 시대에 와서 해서의 특유한 품격을 이루었다. 해서는 지금의 정자인데 북위시대의 것을 위시해서 이른바 '육조풍'의 해서가 유명하다. 종
  • 요와 왕희지를 걸쳐 초당의 구양순,우세남,저수량 이 북위서를 계승하고 왕희지법을 더하여 방필에 원필을 가미한 완미(完美)에 가까운 체계를 이루었고 그 후 안진경이 출현하여 거의 원필을 이용하여 웅장한 남성적인 해서를 완성하였다.

장 맹 룡 비 ( 張 孟 龍 碑 )

육조 시대의 대표적인 해서이다. 서도에서의 힘은 적절한 조화가 따라야 한다. 결구법이 바로 그것인데, 장비액(張碑額)은 그런 것의 본보기라 하겠다.

본문도 점획의 배치에 따라 소박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이지적으로 당대(唐代)의 서와 같은 정제미 를 나타내고 있다. 경중의 배합,각도의 변화, 그리고 글자의 흐름에 따라 그것들을 조절하는 의욕적인 필력, 이러한 모든 요소가 큰 비석에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흔적들을 표면에 나타나지 않게 할 것, 여기에 서도의 비결이 있다.

장맹룡비는 북위서 가 유행하던 때의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용(龍門)의 강함과 예리함,정도소(鄭道昭)의 온화함, 고정비의 완성된 계획성 등이 함축되어 있는 훌륭한 유산으로 여겨진다.

비면은 해서로 26행,한 행에 24자씩 새겨져 있고, 비음은 이 비를 세움에 있어서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의 관위 성명을 연서한 것이 10여단 있다. 이 비의 비액에서 '청송(淸頌:덕을 칭송한다)'으로 표현 되는 바와 같이 송덕비이다.

장맹룡은 당시 불교가 성행하고 있었지만, 공자와 맹자의 학문을 깊이 믿는 유교를 선양하였다. 그 공적이 컸기 때문에 향당(鄕黨)들이 이에 감탄하여서 장맹룡의 덕을 기리고자 비를 세웠고, 그의 일대기에 관한 것과 칭송이 그 내용이다.

고 정 비 ( 高 貞 碑 )

당의 구양순과 더불어 이지파(理智派)의 대표격으로 이 비석을 꼽을 수 있다. 이렇듯 고정비는 구양순의 비와 쌍벽을 이룰 만한 해서의 비문이다.

이 비문의 작자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그 출토 시기도 얼마되지 않아서,이 서체에 관해 논의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비를 수록한 책도 그리 많지 않다. 한 책에 의하면 고정이라는 사람은 비서랑의 벼슬을 지냈고 나이 26세에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비는 그가 죽은 지 9년이 지나고서 세워졌다고 한다.

이 비에서 그려지고 있는 고정이 명족 (名族)이었고 게다가 외척(外戚)이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비를 쓴 사람은 당시 제일의 명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비는 구양순의 비와 마찬가지로 필의 기수(起收)가 매우 자연스럽고 형태의 조합이 합리적이어서 비난할 여지가 없는 구조를 이 루고 있다. 더불어 전서의 균형감과 통일성을 갖추고 있어서 회화적인 미가 뛰어나다.

구 성 궁 예 천 명 ( 九 成 宮 醴 天 銘 )

이 비는 당태종 6년(632)에 당태종이 수나라의 인수궁을 수리하면서 만든 구성궁에 샘 물이 뿜어 나오게 된 것을 기념하여 만든 비이다. 문장은 위징이 쓰고 글씨는 황제의 명에 따라 구양순이 특별히 정성들여 썼다.

구양순의 나이 75세때의 서(書)로 구양순이 왕희지의 필법을 배웠으나, 이미 글씨는 구양순 자신의 자체였다. 그리고 해서의 필법이 극에 달했다고 평가된다.

전각은 양문으로 되어 있고 구성궁예천명의 여섯 글자가 2행에 있고, 본문은 24행으로 되어 있다. 남북 서풍을 융합한 수대의 서풍을 전,예서에 바탕을 둔 구성법으로 방향을 바꾸어 장방형의 형태로 씌어져
있다.

내핍법(內逼法) 혹은 배세(背勢)에 따르고 있으므로 점,획이 중심에 모여 있으나, 비의 결체는 여유가 있고 전절(轉折)과 구부러진 곳의 용필은 아주 훌륭하다.

구성구예천명비는 새 시대 감각을 불어 넣은 것으로 화도사비(化度寺碑)와 더불어 구양순의 대표작이다. 해서를 쓰는데 있어서 정통이라 할 수 있으나, 너무도 정제된 필획의 구성을 하고 있어서 자칫하면 형태만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기 쉽다.

안씨가묘비(顔氏家廟碑)

안진경이 72세 때 쓴 걸작이다.

가문에 대한 기록으므로 한점, 한획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또한 안진 경 글씨의 특징인 잠두서미
(蠶頭鼠尾)의 극치를 이루는 것으로 "구성궁예천명"과 견주어지는 해서이다.

획이 살쪄 보이면서도 투박하지 않고, 덤덤하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경지는 가히 신필(神筆)이 라 할 만하다

안 근 례 비 ( 顔 勤 禮 碑 )

안씨가묘비와 더불어 안진경 해서의 2대 역작중의 하나이다.

비가 세워진 연도는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비문 중에 기재된 사실을 감안해 입비(立碑)는 안진경의 말기의 글씨로 추정되어 진다. 비는 사면각이나 세째 면은 갈아 없어졌고, 약 1천 6백 여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안근례비는 비의 자획이 온전하며 특히 삼면의 글씨는 원필이며 강,유가 잘 조화되어 있다. 또한, 장봉의 표현이 세련되어 있으며 그의 해서중에서 가장 우수한 기교 표현 작품이라 한다.

안진경의 필법은 구양순의 경우와 다른 바 없으나 구법(歐法)보다도 약간 붓을 세우며, 안서(顔書)의 가로획은 우상향세(右上向勢:손에 쥔 붓을 그대로 댄 후 일단 조금 띄웠다 오른 쪽으로 그음)의 수법을 사용한다. 구(歐)의 배세(背勢), 안(顔)의 향세(向勢)라고 부르는 이 상대적인 조형수법은 해서 기법의 양극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비의 내용은 안진경이 그의 조부인 안근례의 일대기를 써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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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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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늘푸름 | 작성시간 08.05.16 공부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글 잘 읽고 갑니다.
  • 작성자매난국죽 | 작성시간 19.02.03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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