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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文字. 古文

중국고사성어-脚踏實地(각답실지)各得其所(각득기소)各自爲政(각자위정)刻舟求劍(각주구검)角逐(각축)刻畵無鹽(각화무염)

작성자古方|작성시간13.09.16|조회수232 목록 댓글 1

脚踏實地(각답실지)
脚:다리 각, 踏:밟을 답, 實:열매 실, 地:땅 지.
뜻 : 일을 처리하는데 솜씨가 착실하다는 뜻으로, 품행이 단정하고 태도가 성실한 것을 일컫는 성어다.
출전: 사미광(司馬光. 1019~1086)이 자치통감을 써 낸 뒤에 사람들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나온 말.
  사마광은 송나라 때의 저명한 역사학자로서 자는 군실(君實)이었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역사연구에 뜻을 두고 많은 책들을 읽었다. 영종 황제 연간에 그는 통감(通鑑)의 주필이 되어 19년 동안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면서 매진해 전력을 다하여 집필에 힘을 기울였다.
  어떤 때는 밤늦게까지 글을 쓰고도 이튿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서 계속 연구와 집필에 골몰했는데, 너무 깊이 잠들어 일에 지장을 줄까봐 둥근 나무로 경침(警枕)을 만들어 베고 선잠을 자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치통감을 쓸 때 먼저 널리 사료를 수집 정리하여 세심히 연구한 뒤 신빙성이 있는 자료들만 선택하여 이들을 순서대로 연관 지은 다음 수정해서 책으로 묶었는데, 그 태도는 매우 엄숙하고 세심하였다고 한다. 자치통감은 도합294권에 부록30권을 첨부한 방대한 저술이다.
  전국시대부터 오대시기에 이르기까지 1360여 년 동안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자치통감이라는 책이름은 당시 황제였던 신종(神宗)이 붙인 것이라 한다. 말 그대로 ‘정치에 바탕이 되는 보배로운 거울.’로 이후 가장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역사서로 인정받았다.
  사마광의 이같이 성실한 태도는 당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옹(邵雍)이라는 학자는 그를 칭송하여 “그는 실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발로 뛰며 답사한 사람이다.”(君實脚踏實地人也. 군실각답실지인야) 라고 말하였다.

 

各得其所(각득기소)

各:각각 각, 得:얻을 득, 其:그 기, 所:바 소.

어의: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행한다는 뜻으로 각자 그 능력이나 적성에 따라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 것을 가리

       킴.

출전: 역경 계사(繫辭) 하(下), 한서 동방삭전(東方朔傳)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때 일이다. 무제의 여동생이 병으로 몸져누웠을 때, 자기가 죽은 뒤에 아들 소평군(昭平君)이 죄를 범하여 사형당할 것을 걱정하여, 황제에게 돈을 바쳐 미리 그 죄를 대속(代贖)할 것을 청원했다.

  황제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여동생은 머지않아 죽었다. 황제의 딸과 결혼한 소평군은 차츰 교만해지고 횡포해지더니 그만 술에 취해 관원을 죽이고 체포되었다.

  재판관은 난처했다. 마땅히 사형감이지만 아무튼 상대는 황제의 조카요 사위가 아닌가,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무제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어 보았다.

  무제도 난감했다. 법을 거스를 수도 없고 죽은 여동생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들은 모두 "이미 죄는 대속되었으므로 사면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제는 "비록 내 사위지만 법을 어긴 자를 그냥 두면 천하만민의 신용을 잃는다."며 법률에 따라 사형을 명했다.

  그때 동방삭(東方朔)이 와서 술잔을 바치며 말했다.

  "상벌이 공정하니 이는 천하의 복입니다."

  무제는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저녁 황제는 동방삭을 불렸다.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그대는 정말 밉살스럽구려."

  "저는 폐하의 공정함을 찬양하고 슬픔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술잔을 바쳤을 따름입니다."

  재치 있는 동방삭의 말에 감탄한 무제는 전에 빼앗은 관위(官位)를 되돌려주고 비단 백 필을 내리고, 그 후로 더욱 총애했다.

 

各自爲政(각자위정)

:각각 각, :스스로 자. :할 위, :정사 정.

어의: 사람이 저마다 멋대로 행동하며 전체와의 조화나 타인과의 협력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뻔함을

       함.

출전: 춘추좌씨전

  춘추시대의 일이다. ()나라가 진()나라와 서로 협력하였기 때문에 송나라와 초()나라는 사이가 벌어졌다. 이에 초나라 장왕(莊王)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동맹국인 정()나라에 명하여 송나라를 치게 했다.

  결전 전야에 송나라의 대장 화원(華元)은 장졸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식사 때 특별히 양고기를 지급했다.장졸들은 모두 크게 기뻐했지만, 화원의 마차꾼 양짐(羊斟)만은 이 양고기를 먹지 못했다.

  어느 부장(副將)이 그 이유를 묻자 화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마차부 따위를 먹일 필요는 없다. 마차부는 전쟁과 아무 관계가 없으니 내가 한 일에 아무 참견 말게.”

  이튿날 양군의 접전이 시작되었다. 화원은 양짐이 모는 마차 위에서 지휘를 했다. 송나라와 정나라의 군사가 모두 잘 싸워 쉽게 승리가 나지 않자 화원이 양짐에게 명령했다.

  “마차를 적의 병력이 허술한 오른쪽으로 돌려라.”

  그러나 양짐은 반대로 정나라 군사가 밀집해 있는 왼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당황한 화원이 소리쳤다.

  “아니 어디로 가려는 것이냐?”

  “어제의 양고기는 당신의 뜻이며, 오늘의 이 일은 나의 생각이오.

  양짐이 이렇게 말하며 곧바로 정나라 군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기 때문에 화원은 마침내 붙잡히고 말았다.

  대장이 포로가 된 것을 본 송나라 군사는 전의를 상실했다. 그 결과 250여 명의 군사가 적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사공(司空. 토지와 민사를 맡아보는 관리)까지 포로가 되었다. 정나라 군사는 도합 460량의 병거(兵車)를 포획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송나라의 대패는 바로 양짐이 화원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각자위정했기 때문이다.

 

刻舟求劍(각주구검)
刻:새길 각, 舟:배 주, 求:구할 구, 劍:칼 검.
어의: 배에 표시를 새긴 뒤 칼을 찾다. 어리석고 단편적인 지식에 얽매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말한다.
출전: 여씨춘추 찰금편(察今篇)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들고 있던 칼을 그만 물 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얼른 칼을 빠뜨린 뱃전에다가 표시를 해두고, “내가 칼을 빠뜨린 곳은 바로 여기다” 하고 자못 영리한 체하며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배가 언덕에 와 닿자 그는 아까 표시를 해 놓은 그 자리에서 물로 뛰어들었다. 그는 그 자리에 칼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배는 이미 그동안에 칼을 빠뜨린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갔는데도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런 식으로 칼을 찾겠다니 얼마나 한심스러운 이야기인가.

(장기근 편저 고사성어 대사전에서)

 

角逐(각축)
角:뿔 각, 逐:쫓을 축.
뜻 : 서로 뿔을 맞대고 싸우는 형세, 조금도 양보 없이 대등하게 겨루고 있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이다. 각축지

세(角逐之勢), 호각지세(互角之勢)라고도 한다.
출전: 전국책 조책
  <서수에게 수레를 씌우고 마복을 곁말로 세워서 진나라와 각축을 벌인다.(駕犀首而 驂馬服 與秦角逐. 가서수이 참마복 여진각축)
  서수는 관직 이름으로 위(魏)나라의 재상인 공손연(公孫衍)을 말한다. 마복은 조(趙)나라의 장군 조사(趙奢)의 호(號)다.
  당나라 말기의 시인 위장(韋莊. 836~910)의 시 상원현(上元縣)에 보면 ‘남조 때 서른여섯 영웅들이 흥망을 다투다가 그 와중에 다 스러졌다.(南朝三十六英雄 角逐興亡盡此中. 남조삼십육영웅 각축흥망진차중) 는 시구가 있다.

 

刻畵無鹽(각화무염)
刻:새길 각, 畵:그림 화, 無:없을 무, 鹽:소금 염.
어의: 비유가 타당치 않거나 너무 차이가 나는 물건을 비교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무염(無鹽)이라는 곳에 성은 종리(鐘離)라 하고 이름은 춘(春)이라고 하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워낙 박색이어서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시집도 가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녀는 재선왕을 찾아가 당시 제나라에 산재했던 문제들을 제시하면서 해결책을 올렸더니 재선왕은 그녀의 재능에 탄복해서 황후로 삼고 무염군(無鹽君)에 봉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가 황후가 되었든 무염군이 되었든 간에 얼굴이 못생긴 여자를 일러 ‘무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미녀를 서시(西施)라고 부르듯이 무염은 아예 추한 여자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리하여 무염과 서시는 정반대의 뜻이 되고 말았는데, 만일 이 양자를 병칭(竝稱)한다면 그것은 바로 추한 것을 높이 여기고 아름다운 것은 낮게 보는 것이 된다. 이것을 가리켜 ‘무염을 새겨 그렸는데 엉뚱하게도 서시가 되었다.’(刻畵無鹽 唐突西施. 각화무염 당돌서시) 고 한다.
  진서(晉書) 주의전(周顗傳)에 보면 진원제 때 신하들 중 일부가 주의를 가리켜 고결하기로는 악광(樂廣)과 같은 사람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주의는 “나는 감히 악광과 비교될 수 없다,” 고 하면서 어찌 무염에게 분칠을 한다고 갑자기 서시가 될 것인가?(何乃刻畵無鹽 唐突西施也. 하내각화무염 당돌서시야) 라며 겸양했다고 한다.

 

 


자료-손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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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방일 | 작성시간 13.09.17 귀한 고사성어 올려주심에 고맙습니다~
    풍족한 한가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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