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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文字. 古文

순자(荀子) 勸學篇

작성자无耳朶(무이타)|작성시간21.01.18|조회수425 목록 댓글 0

<荀子-總三十二篇>

第一. 勸學篇


  君子曰學不可以已靑取之於藍而靑於藍

水爲之而寒於水木直中繩 以爲輪其曲中規雖有槁暴不復挺者 使之然也

故木受繩則直金就礪則利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則知明而行無過矣

故不登高山不知天之高也不臨深谿不知地之厚也

不聞先王之遺言不知學問之大也

干越夷 之子生而同聲長而異俗敎使之然也

詩曰嗟爾君子無恒安息靖共爾位好是正直神之聽之介爾景福神

莫大於化道福莫長於無禍

 

君子曰: “學不可以已.”

군자가 말했다. “배움은 그칠 수가 없다.”

靑, 取之於藍, 而靑於藍;

푸른색은 쪽풀에서 취한 것이지만 쪽풀보다 푸르고

冰, 水爲之, 而寒於水.

얼음은 물이 된 것이지만 물보다 차갑다.

木直中繩, 輮以爲輪, 其曲中規.

나무가 곧아 먹줄에 맞다가도 휘어 바퀴가 되면 굽은 것이 콤파스에 맞는다.

雖有槁暴, 不復挺者, 輮使之然也.

비록 말리더라도 다시 펴지지 않는 것은 휘어짐이

그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故木受繩則直, 金就礪則利,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아지고 쇠는 숯돌에 나가면 예리해지니

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 則智明而行無過矣.

군자가 널리 배워 날마다 자기를 살핀다면 지혜가 밝아지고 행동은 허물이 없을 것이다.

故不登高山, 不知天之高也;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보지 않으면 하늘이 높다는 걸 알지 못하고

不臨深谿, 不知地之厚也;

깊은 계곡에 다다르지 않으면 땅이 두텁다는 걸 알지 못하며

不聞先王之遺言, 不知學問之大也.

선왕이 남겨놓은 말을 듣지 않으면 학문의 큼을 알지 못한다.

干越夷貉之子, 生而同聲,

간나라와 월나라와 이나라와 맥나라의 오랑캐 자식들이 태어나선 우는 소리가 같지만,

長而異俗, 敎使之然也.

자라며 풍속이 달라지는 것은 교육이 그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詩曰: “嗟爾君子, 無恆安息. 靖共爾位, 好是正直. 神之聽之, 介爾景福.”

『시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嗟爾君子 無恆安息아! 너희 군자들아! 항상 편히 쉬려고 하지 마라!
靖共爾位 好是正直너희 자리를 공손히 다스리고 이런 정직함을 좋아하라.
神之聽之 介爾景福신께서 들으시면 너에게 큰 복을 내려주시리.

 

神莫大於化道, 福莫長於無禍. -「勸學篇」

신은 교화의 도보다 큰 게 없고 복은 재앙이 없는 것보다 긴 게 없다.



吾嘗終日而思矣不如須臾之所學也吾嘗 而望矣不如登高之博見也

登高而招臂非加長也而見者遠順風而呼聲非加疾也

而聞者彰假輿馬者非利足也而致千里假舟楫者非能水也

而絶江河君子生非異也善假於物也

南方有鳥焉名曰蒙鳩以羽爲巢而編之以髮繫之葦苕風至苕折卵破子死巢非不完也

所繫者然也西方有木焉名曰射干莖長四寸生於高山之上而臨百 之淵木莖非能長也

所立者然也蓬生麻中不扶而直白沙在涅與之俱黑蘭槐之根是爲芷其漸之

君子不近庶人不服其質非不美也所漸者然也

故君子居必擇鄕遊必就士所以防邪酸而近中正也

物類之起必有所始榮辱之來必象其德肉腐出蟲魚枯生 怠慢忘身禍災乃作强自取柱柔自取束邪穢在身怨之所構施薪若一火就燥也平地若一水就 也

草木疇生禽獸群居物各從其類也是故質的張而弓矢至焉林木茂而

斧斤至焉樹成蔭而衆鳥息焉醯酸而예聚焉故言有招禍也行有招辱也

君子愼其所立乎

積土成山風雨興焉積水成淵蛟龍生焉積善成德而神明自得聖心備焉

故不積 步無以致千里不積小流無以成江海騏驥一躍不能十步駑馬十駕功在不舍

而舍之朽木不折 而不舍金石可鏤

 

청출어람(青出於藍)

이 말은 흔히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날 때 인용되곤 한다.,

이와 유사한 문장이 등장하는 예는 순자(荀子)의 권학(勸學)편을 들 수 있다.

 

君子曰:學不可以已。青、取之於藍,而青於藍;冰、水為之,而寒於水。

木直中繩,輮以為輪,其曲中規,雖有槁暴,不復挺者,輮使之然也。

故木受繩則直,金就礪則利,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則智明而行無過矣。

 

군자 왈,

배움을 그칠 수 없다.

푸른 물감은 쪽에서 취하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

얼음은 물에서 이뤄지지만 물보다 더 차다.

나무가 곧아서 먹줄과 맞아도,

구부려 수레바퀴 테를 만들면,

그 구부러진 곡률이 컴퍼스(compass)로 그린 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비록 햇빛에 다시 말린다한들, 곧게 펼 수 없음은,

이미 구부려졌기 때문이다.

고로 나무는 먹줄을 받아야 곧아지고,

쇠는 숫돌에 갈아야 날카로와진다.

군자는 배움을 널리 미치게 하고, 날마다 자기반성을 해야,

지혜가 밝아지고 행실에 허물이 없어진다.

 

여기 而青於藍이란 것이,

오늘날처럼 제자가 스승보다 더 특출하다는 뜻으로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저 글에 보이는 여러 비유는,

배움으로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이끌어진 것이다.

본문에 이어지는 다음 말씀은 더욱 이 뜻을 확고히 하고 있다.

 

故不登高山,不知天之高也;不臨深谿,不知地之厚也;

不聞先王之遺言,不知學問之大也。干、越、夷、貉之子,

生而同聲,長而異俗,教使之然也。

 

고로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의 높음을 알 수 없고,

깊은 골짜기에 임하지 않으면 땅의 두터움을 알지 못한다.

선왕의 남기신 말씀을 듣지 않으면,

학문의 대단함을 알지 못한다.

간, 월, 이, 맥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태어났을 때는 같은 소리를 내지만,

자라면서 풍속이 달라지는 것은,

가르침이 그러하게 한 것이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았지만,

교육으로써 이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함이니 애초,

而青於藍이라는 것이,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자가 말하고자 하는 본의는,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선천적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한즉 공부가 깊어지면 혹간 스승을 앞지를 수도 있기는 하겠다.

하지만 스승을 앞지르고 말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정작은 자기 자신의 성숙에 방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일(李謐)과 공번(孔璠)은 청출어람을 두고 말할 때,

흔히 인용되는 사제지간의 이야기다.

차제에 이를 좀 더 새겨보자.

 


李謐,字永和。初師事小學博士孔璠。數年之後,璠還就謐請業。

同門生為之語曰 青成藍,藍謝青,師何常,在明經。 (太平御覽)

이일은 자(字)가 영화이다.

처음 선생으로 소학박사 공번을 섬겼다.

수년이 지나자 공번이 외려 이일에게 물었다.

(※ 請業 : 스승으로 모신다는 뜻이 있음.)

동문생이 이를 두고 말하다.

 

‘청(青)이 남(藍)이 되니, 남(藍)이 청(青)에게 감사하다.

(※ 여기서 청은 제자, 남은 스승 또는 각기 그 성취의 수준을 가리킴.)

선생이 어디 하나로 상시 고정된 것이랴?

다만 경전의 도리를 밝히는데 있음이니.’

이 글을 대할 때,

제자가 스승을 앞질렀다는 사실에 한눈을 팔 것이 아니라,

학문하는 사람에게 있어선 무엇이든 자기의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데,

집중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青出於藍而青於藍。

푸른 물감이 쪽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

 

여기서 青出於藍보다 而青於藍에 집중하면,

제자가 스승을 앞질렀다는 자극적 사건에 빠져버릴 우려가 있다.

학문한다는 것이 연예활동이 아닌 한,

선정적(煽情的)인 일에 마음을 빼앗기며,

입을 벌리고 놀랄 일은 아니다.

 

하니까,

而青於藍에 빠지면,

青出於藍이란 본질을 잊게 된다.

青出於藍이란 곧 스승을 구하고, 학문을 갈고 닦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 결과 而青於藍, 스승을 앞지르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허나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공부가 진전되고, 학문이 깊어진다는데 그 의의가 있을 뿐이다.

 


是故古之聖王未有不尊師者也。尊師則不論其貴賤貧富矣。

(呂氏春秋)

그런고로 옛 성왕치고 스승을 존숭하지 않은 경우는 아직 없다.

스승을 존숭함엔 그 귀천이나 빈부를 따지지 않았다.

 


知不足者好學,恥下問者自滿。

앎이 적다고 느끼는 자는 배움을 좋아한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자만한 이다.

 

이제 청출어람의 뜻새김에 있어,

다만 제자가 스승을 앞질렀다는 것보다는,

순자의 처음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으리란 생각이다.

이에 그 부분을 다시금 음미해본다.

 


故木受繩則直,金就礪則利,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則智明而行無過矣。

고로 나무는 먹줄을 받아야 곧아지고,

쇠는 숫돌에 갈아야 날카로와진다.

군자는 배움을 널리 미치게 하고, 날마다 자기반성을 해야,

지혜가 밝아지고 행실에 허물이 없어진다.

 


學者必求師,從師不可不謹也。

학자는 반드시 스승을 구해야 한다.
스승을 섬김에 삼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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