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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文字. 古文

[고사성어]철중쟁쟁(鐵中錚錚)

작성자古方|작성시간10.11.04|조회수243 목록 댓글 0

 

철중쟁쟁(鐵中錚錚)

[요약] (鐵: 쇠 철. 中: 가운데 중. 錚: 쇠 소리 쟁. 錚: 쇠 소리 쟁)

 

쇠 중(中)에서 소리가 가장 맑다는 뜻으로,

평범(平凡)한 사람들 중(中) 좀 우수한사람을 비유한 말.

쇠는 좋은 것일수록 쟁쟁하고 소리가 맑게 울린다.

 

[유사] 용중교교(傭中佼佼= 똑같은 물건 가운데 조금 나은 것이란 말.)

 

[출전]《후한서(後漢書) 卷十一 유분자전(劉盆子傳)》

 

 

[내용] 후한 광무제는 후한의 초대 황제로 이름은 유수(劉秀)이며,

전한(前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9세손이다.

그는 황제위에 올랐으나 적미(赤眉)를 비롯하여 왕망 때부터의 유적(流賊)들이

날뛰고 있어서 옥좌에 편히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전한을 없애고 왕망 이 신(新)이란 나라를 새로 세웠을 당시에 일어났던 대규모의 농민 반란군으로

처음은 번숭을 수령으로 낭야에서 일어나, 뒤에 봉안. 서선. 사녹 등이 이끄는 군대까지

이에 합류되어, 산동 성을 중심으로 유분자(劉盆子)를 왕으로 받들고, 그 위세가 대단했었다.

그들은 한나라 왕실의 상징인 붉은 색으로 눈썹을 그려 표를 하고 다녔기 때문에 적미라는

이름을 듣게 된 것이다.

 

 

적미는 한때 수도 장안으로 쳐들어와, 이미 왕망을 넘어뜨리고 황제의 위에 올라 있던

갱시 제 유현을 쳐 없애고 광무제 유수와 대결하게 되었다. 광무제는 등우(鄧禹)와 풍이(馮異)를

보냈으나 전세가 불리해져 그가 몸소 출진하여 가까스로 항복을 받아냈다.

그들은 대장 번숭(樊崇)이 유분자와 함께 웃통을 벗어 스스로를 벌하는 모습으로 항복해왔다.

 

赤眉忽遇大軍,驚震不知所為,乃遣劉恭乞降,曰:『盆子將百萬眾降,陛下何以待之?』

帝曰:『待汝以不死耳。』樊崇乃將盆子及丞相徐宣以下三十餘人肉袒降。

 

 

광무제는 먼저 유분자에게 죄를 묻자, 유분자는 ‘만 번 죽어 마땅하나 제발 살려 달라.’고 했다

 

.明旦,大陳兵馬臨洛水,令盆子君臣列而觀之。謂盆子曰:『自知當死不?』

對曰:『罪當應死,猶幸上憐赦之耳。』帝笑曰:『兒大黠,宗室無蚩者。』

 

 

이어 광무제는 번숭. 서선 등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항복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원한다면 다시 한 번 실력으로 승부를 결정해도 좋다.

짐은 항복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자 그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을 받아주시니 그저 호랑이 입을 벗어나 사랑하는 어머니

품에 돌아온 것 같다면서 아무런 후회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 같은 대답에 광무제는 “경들이야말로 철중쟁쟁 용중교교란 것이요.”하고 말했다.

又謂崇等曰:『得無悔降乎?朕今遣卿歸營勒兵,鳴鼓相攻,決其勝負,不欲強相服也。』

徐宣等叩頭曰:『臣等出長安東都門,君臣計議,歸命聖德。百姓可與樂成,難與圖始,

故不告眾耳。今日得降,猶去虎口歸慈母,誠歡誠喜,無所恨也。

帝曰:『卿所謂鐵中錚錚,庸中佼佼者也。』

 

 

 

 

 철중쟁쟁(鐵中錚錚)

 

 

여러 쇠붙이 중 유난히 맑은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 가운데 특별히 뛰어난 사람을 이름.

 

후한(後漢) 때 광무제(光武帝)의 이야기이다.

그 때 나라안은 군웅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장안(長安)에 적미(赤眉), 농서에 외효,

하서(河西)에 공손술(公孫述), 수양(雖陽)에 유영(劉永), 노강(盧江)에 이헌(李憲),

임치(臨淄)에는 장보(張步) 등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황제는 먼저 적미(赤眉) 토벌을 시도했다.

적미는 전한 경제(景帝)의 자손에 해당하는 유분자(劉盆子)를 황제에 추대하고 있어서,

황제는 등우(鄧禹)와 풍이(馮異)를 보냈으나 전세가 불리하자 황제가 몸소 출진하여

겨우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대장 번숭(樊崇)이 유분자를 데리고 웃통을 벗어

스스로를 벌하는 모습을 하고 항복해 온 것이다. 그래서 유분자에게 물어 보았다.

"그대는 자기의 죄가 만 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아닌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유씨 일족을 망신시킨 놈" 이어 번승에게 물어 보았다.
"아군의 실정을 보고, 항복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어때, 다시 일전을 해볼 텐가?"
함께 항복한 참모 서선(徐宣)은, 숭이 입을 여는 걸 기다리지 않고, 머리를 땅에 내리치면서 말했다.


"저희들은 호랑이 입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품에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항복한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할 뿐, 후회는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수는 서선을 향해 만족스럽게 말했다.
"그대는 철중쟁쟁(鐵中錚錚)이고 용중교교(庸中佼佼)로다."
유수는 그들에게 낙양에 살곳을 마련하고 전답을 하사했다.

 

'용중교교'란 범인(凡人) 중에서 좀 나은 자라는 뜻이다.

철중쟁쟁과 함께 그만그만한 자 중에서 좀 나은 자를 두고 말한다.

광무제의 생각은,  정말 유능한 인간이라면 시세의 추이를 통찰해 벌써 귀순했을 것이고,

천하의 대세를 분별 못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아직도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고 있을 것이다.

 

항복한 시기는 결코 이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직도 고집을 부리고 있는

어리석은 자에 비하면 차라리 낫다고 본 것이다.

 

 [출전]《後漢書》<유분자전(劉盆子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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