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준(金奭準,1831,순조31∼1915)은 조선 말기의 시인이며 서예가다.
자는 희보(姬保)이고 호는 소당(小棠) 또는 효리재(孝里齋) 혹은 연백당(硏白堂)이며
본관은 선산으로 중인출신 역관이다.
현기(玄錡)와 이상적(李尙迪)으로부터 시를 배워,
청나라의 문인과 교유하고 일본 풍물을 노래한 <화국죽지사(和國竹枝詞)>를 지었다.
1892년(고종29)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글씨에 능하여 예서 및 지두서(指頭書)에 뛰어났다.
저서로 <홍약루시초집(紅藥樓詩初集)>, <회인시록(懷人詩錄)>등이 있다.
해명과 화능 스님에게 주다 (贈海明華楞僧)
한 종 만한 빈 산 속에서 해질 녘 손 흔들며 헤어질 때
본디 사물과 내가 없는데 하물며 다시 이별을 슬퍼하랴.
一鍾空山裏。落日分手時。
本無物與我。况復傷別離。
(大東詩選 卷10)
이 시는 두 스님과 이별하면서 지어 준 오언절구로 지(支)운이다. 스님과 이별하는 정을 감추고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애써 무심해 지려는 심정을 보여준다. 기구는 조그만 산이다. 종(鍾)은 수량 단위로 여섯 말 넉 되인데 일종(一鍾)은 작다는 뜻이다. 작은 산 속의 절에서 두 스님을 만났다가 헤어지는 참이다. 승구는 이별 장면이다. 해질 녘에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만났다가 헤어지는데 서운한 감정이 없을 턱이 없다. 그렇지만 스님과의 헤어짐이므로 무심한 척해 본다. 전구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이 모두 공이라고(五蘊皆空) <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말하고 있으므로 사물이나 사람이나 나 자신도 모두 공인 것이다. 따라서 사물과 나 사이에 구별이 없다. 결구는 슬픔의 억제다. 인간의 정으로는 만났다가 헤어지는 게 당연히 섭섭하지마는 불교적 가르침에 비쳐보면 만남도 없고 이별도 없으므로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과 적멸을 스님에게 도로 주었다.
청관 가는 길에 (靑冠道中)
쓸쓸한 동풍에 사흘간 비도 오니
청관산 아래에 인적이 드물다.
대 사립문 비스듬히 닫혀 있고 띠집은 작은데
한 그루 복사꽃이 눈에 밝게 비친다.
惻惻東風三日雨。靑冠山下少人行。
竹扉欹掩茅齋小。一樹桃花照眼明。
(大東詩選 卷10)
이 시는 봄날의 풍경을 산수화 같이 그려낸 칠언절구로 경(庚)운이다.
청관산은 어디에 있는 산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기구는 쓸쓸한 봄날이다.
봄날에 흔한 샛바람이 불고 사흘 동안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려서 좀 을씨년스러운 날이다.
승구는 인적이 드문 풍경이다. 청관산이 솟아 있고 이제 봄이 오고 있는데
아직 사람들은 쌀쌀한 기온 탓인지 나다니지 않고 있다. 고요하고 약간은 쓸쓸한 풍경이다.
전구는 초가집이다. 띠풀로 지붕을 인 작은 초가집인데 대로 만든 사립문이 비스듬히 닫혀 있다고 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사립문이 닫힌 채 있다는 말이다.
작고 고적한 초가집에 가난한 선비가 숨어사는 듯하다.
농부가 사는 집이라면 봄 농사를 시작하려고 부산히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구는 한 그루 복사꽃이다. 한 그루 복숭아나무에 연분홍 꽃이 발갛게 피어있다.
쓸쓸한 분위기에 단연 돋보이는 밝고 화사한 빛을 뿜어내는 듯 보는 이의 눈을 환하게 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