詠懷詩(영회시)
완적(阮籍)
완적(阮籍 210~263), 자(字)는 사종(嗣宗),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 사람이다.
성격은 오만(傲慢)하지만 마음이 넓고 술과 풍류(風流)를 즐긴 낭만주의자였다.
유가(儒家)의 명교(名敎)인 인의(仁義)를 반대하고 노장(老莊)의 무위(無爲)와
소요(逍遙)를 추구(追求)했다. 완적(阮籍)이 살았던 시대는 한나라가 망하고
조(曹)씨들의 위(魏)나라가 서고 다시 사마(司馬)씨의 진(晉)나로 교체되는 와중에,
혼란이 그치지 않아 많은 문인들이 비명횡사(非命橫死)했다.
그래서 완적(阮籍)과 같은 문인들은 변화무쌍한 현실에 도피하여,
허무주의에 입각한 노장사상의 길로 치닫는 기풍이 지배하게 되었다.
다음의 일화는 완적(阮籍)의 성격(性格)을 잘 표현(表現)해 주고 있다.
위나라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사마소(司馬昭)가 완적(阮籍)의 딸을
그의 아들 사마염(司馬炎-뒤에 진(晉)의 무제(武帝))의 아내로 삼으려고 했다.
완적(阮籍)은 응락하기도 싫고 거절하기도 난처해서, 매일 술을 퍼 마셔 60일 동안이나
곤드레 취해, 사마소(司馬昭)로 하여금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또한 사람을 대할 때 겉치레만 하는 속인(俗人)을 만나면 백안으로
그 사람을 흘겨보았고 또,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청안(靑眼)으로 맞해
백안(白眼)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영회시(詠懷詩)는 모두 82수가 있는데 상당한 시일에 걸쳐 지은 것이다.
위(魏).진(晉)의 교체기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혼돈 상황에서의
이 연작시(連作詩)의 중심사상은 우주공간의 일체의 무상(無常)이라 할 수 있다.
우정의 무상, 생명의 무상, 부귀의 무상을 반복하여 읊었다.
一.
夜中不能寐(야중불능매)
밤중에 잠을 이룰 수 없어
起坐彈鳴琴(기좌탄명금)
일어나 앉아서 거문고를 탄다.
薄帷鑑明月(박유감명월)
얇다란 휘장엔 명월(明月)이 비치고
淸風吹我衿(정풍취아금)
청풍(淸風)은 옷깃에 스친다.
孤鴻號外野(고흥호외야)
외로운 기러기 들판에서 소리치고
朔鳥鳴北林(삭조명북림)
삭조(朔鳥)➀는 북림(北林)에서 울어댄다.
徘徊將何見(배회장하견)
어쩌려고 배회(徘徊)하며 보는가?
憂思獨傷心(우사독상심)
시름에 겨우니 마음만이 홀로 탄다.
➀삭조(朔鳥) : 겨울 철새.
二.
二妃遊江濱(이비유강빈)
두 선녀가➀ 강가에서 노닐다가
逍遙順風翔(소요순풍상)
살랑이는 바람타고 날아서 올라가네.
交甫懷還珮(교보회환패)
교보(交甫)➁는 동그란 패옥(珮玉)을 품었는데
婉孌有芬芬(완연유분분)
아름다운 이 소녀는 향기를 풍긴다오.
猗靡情歡愛(의미정환해)
쪼르라니 따르며 사랑이 빠졌으니
千載不相忘(천재불상망)
천년(千年)이 가더라도 잊지 못하리.
傾城迷下蔡(경성미하채)
하채(下蔡)➂ 사람 미혹(迷惑)하고
容好結中腸(용호결중장)
마음에 새겨질 아름다운 얼굴이라
感激生憂思(감격생우사)
감격에 겨워서 시름에 잠긴다.
諼草樹蘭房(훤초수란방)
원추리풀➃이나 난방(蘭房)을 심을까?
膏沐爲誰施(고목위수시)
기름 뜬 뜨물➄은 누굴 위해 쓸까나
其雨怨朝陽(기우원조양)
비가 올까 했더니 아침 햇살 미워라.
如何金石交(여하금석교)
어찌하여 금석(金石)같은 사이가
一旦更離傷(일단갱리상)
하루 아침에 이별의 슬픔이 되었을까?
➀ 이비(二妃) : 강비(江妃-양자강의 신녀(神女). <列仙傳> 에,「두 여자가
양자강(揚子江) 가에 나와 노닐다가, 정교보(鄭交甫)를 만나 패옥(珮玉)을 풀어 선사했다.
정교보(鄭交甫)가 패옥을 받아 가지고 수십 걸음을 갔는데 품속에 넣은 패옥(珮玉)이
없어지고 여자도 보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➁교보(交甫) : 정교보(鄭交甫). <漢詩外傳(한시외전)>에,「정교보가 남방의
초(楚)나라로 가는 도중에 한고(漢臯-호북성 회양현의 서북쪽에 있는 산)의
돈대를 지날 즈음, 두 여자를 만났는데 형계(荊雞-닭의 일종)의 알 만한
구술 두 개를 차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➂하채(下蔡) : 안휘성(安徽省) 수현(壽縣) 북쪽에 있던 고을 이름.
송옥(宋玉)의 <登徒子好色賦>에,「천하의 미인이라 해도 초(楚)나라 사람만한 이가 없고,
초(楚)나라의 미인은 신(臣)의 마을 사람만한 이가 없고, 신(臣)의 마을의 미인은
신(臣)의 동쪽집 사람만한 이가 없습니다.. 곱게 웃으면
양성(陽城-하남성 登封縣에 있는 縣)을 혹하게 하고, 하채(下蔡)를 미혹(迷惑) 합니다.」
라는 기록이 있다.
➃ 훤초(諼草) : 원추리풀 혹은 망우초(亡憂草)라고 한다. 멀리나간 남편이
걱정스러운 부인들이 계단 아래 심어 그리움을 달랬다.
➄ 고목(膏沐) : 기름뜨물. 기름은 머릿기름, 뜨물은 머리감는 쌀뜨물.
三.
嘉樹下成蹊(가수하성혜)
보기 좋은 나무아랜 좁은 길이 생기는데➀
東園桃與李(동원도여리)
동원(東園)의 복숭아와 오얏나무라.
秋風吹飛藿(추풍취비곽)
가을바람 불어와 콩잎을 날리니
零落從此始(영락종차시)
이것을 따라서 시들어서 져버린다.
繁華有憔悴(번화유초췌)
무성했던 꽃들도 초췌하니 시들고
堂上生荊杞(당상생형기)
당상(堂上)에는 가시나무 자라고 있네.
驅馬舍之去(구마사지거)
이들을 버리고 말을 몰아서
去上西山趾(거상산서지)
서산(西山)➁ 발치에나 들어가 숨어 버릴까?
一身不自保(일신불자보)
제몸 하나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데
何況戀妻子(하황연처자)
처자식들을 어찌 돌보겠다 하랴.
凝霜被野草(응상피야초)
서리가 들판을 뒤 엉겨서 덮었으니
歲暮亦雲已(세모역운이)
이 해도 역시 저물어 가는구나.
➀ 가수하성혜(嘉樹下成蹊) : 꽃이 피는 좋은 나무 아래로는 구경하는 사람이
다니므로 길이 생긴다. 한(漢)나라 때의 속담으로 좋은 나무는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를 말한다.
➁서산(西山) :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 남쪽에 있는 수양산(首陽山)을 말한다.
주무왕(周武王)이 상(商)나라를 멸하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는
주(周)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 먹다가 굶어 죽었다.
四
天馬出西北(천마출서북)
천마①는 서북에서 태어났으나
由來從東道(유래종동도)
지금은 동쪽 길을 따라 달리고 있듯이
春秋非有托(춘추비유탁)
세월이란 멈추는 법 없으니
富貴焉常保(부귀언상보)
부귀라고 어찌 늘 지킬 수 있으리
清露被皋蘭(청로피고란)
맑은 이슬 고란을 덮더니
凝霜沾野草(응상첨야초)
서리는 들풀에 얼어붙었다.
朝爲媚少年(조위미소년)
아침에는 앳된 소년이더니
夕暮成醜老(석모성추노)
저녁되니 늙은 노인이 되었다.
自非王子晉(자비왕자진)
자기가 왕자진②이 아닌 이상
誰能常美好(수능상미호)
스스로 항시 아름다운 모습을 지닐 수 있는가?
①천마(天馬)/ 서한의 한무제가 대원을 정벌하여 얻은 말로 한혈마(汗血馬)를 말한다.
한혈마는 달릴 때 흘리는 땀이 붉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중국의 서북 쪽에서 태어나
천하를 마음껏 달리다가 동쪽의 중국으로 끌려와서 일반 말처럼 사역을 당하며
곤궁한 처지의 천마가 가슴속에 웅대한 뜻을 품고 있으나 주위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유했다.
②왕자진(王子晉)/ 주영왕(周靈王 : 재위 전 571-545년)의 태자로 이름은 교(喬)다.
생황(笙篁)을 즐겨 불며 이수(伊水)와 락수(洛水) 지간을 놀러 다니다가
도사 부구공(浮丘公)을 만나 숭산(嵩山)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
30년 후에 그를 찾아 산에 오른 환량(桓良)이라는 사람에게 “7월 7일
구지산(緱氏山) 등성이에서 나를 기다리라고 왕실에 알려라!”라고 말했다.
이윽고 때가 되자 과연 왕자진이 백학을 타고 날아와 산꼭대기에서 머물며
밑의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며칠 후에 사라졌다고 했다.
전고는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이다.
五
平生少年時(평생소년시)
옛날 어린 시절
輕薄好弦歌(경박호현가)
경박한 생각으로 가무에 탐닉하여
西遊鹹陽中(서유함양중)
서쪽의 함양에서 놀면서
趙李相經過(조이상경과)
조(趙)와 이(李)가 성의 가기와 시간을 보냈네
娛樂未終極(오락미종극)
즐거움이 미처 가기도 전에
白日忽蹉跎(백일홀차타)
좋은 시절 홀쩍 지나가고
驅馬複來歸(구마복래귀)
말을 몰아 고향으로 돌아오다
反顧望三河(반고망삼하)
멀리 삼하(三河)를 바라봤다.
黃金百鎰盡(황금백일진)
황금 백일을 모두 소진하고
資用常苦多(자용상고다)
쓸 일 많아 늘 고생만 했다.
北臨太行道(북림태행도
북쪽의 태항산 길에 이름에
失路將如何(실로장여하)
길 잃었으니 이를 장차 어이할까?
六.
昔聞東陵瓜(석문동릉과)
옛날에는 동릉(東陵)의 참외였는데①
近在靑門外(근재청문외)
요새에는 청문(靑門)② 밖에 나가야 있다.
連畛踞阡陌(연진거천맥)
밭두렁과 밭두렁을 넘나들면서
子母相鉤帶(자모상구대)
참외와 덩굴이 서로 엉키었구나.
五色曜朝日(오색요조일)
아침 햇살에 오색(五色)으로 찬란히 빛나고
嘉賓四面會(가빈사면회)
사방의 참외 장수들 모여들 온다.
膏火自煎熬(고화자전오)
기름과 불은 스스로 타버리고③
多財爲患害(다재위환해)
재물도 많으면 재앙이 된다네.
布衣可終身(포의가종신)
포의(布衣)로도 일생을 잘 살수가 있거늘
寵祿豈足賴(총록기족뢰)
총록(寵祿)④일랑은 어이해 바랄까?
①동릉과(東陵瓜) : 한초 소평(召平)이라는 사람이 장안성(長安城) 교외의 밭에서
키운 참외를 말한다.
「여후(呂後)가 소하의 계책을 이용하여 회음후를 잡아 죽였다.
한단에 있던 고조가 회음후 한신(韓信)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를 파견하여
승상 소하(簫何)를 다시 상국에 임명하고, 그 공로를 치하하여 5천 호의 식읍을 더하여 주고,
이와 함께 명을 전하여 500명의 사졸과 1명의 도위를 정해 소하의 경호를 맡게 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소하에게 축하의 말을 올렸다.
그러나 유독 소평(召平)만은 찾아와 애도를 표했다. 소평이라는 사람은
원래 진나라 때 동릉후(東陵侯)에 봉해졌었다. 그러다가 진나라가 망하자 윤락하여
평민으로 떨어짐으로 해서 가난하게 살며 장안성 동쪽의 교외에 참외를 길러
생활하고 있었다. 그가 키운 참외는 맛이 좋아 사람들은 그 참외를
‘동릉과(東陵瓜)’라고 칭했다. 소평이 소하에게 말했다.
“ 화가 이윽고 승상의 몸에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황제는 햇볕에 그을리며 황야에서
노숙하며 밖에서 힘든 전쟁을 하고 있는데, 조정에 남아 전쟁으로 인한 험난한 고생도
하지 않음에도, 오히려 승상의 봉지를 늘려줄 뿐만 아니라 경호부대까지 붙여주니,
이것은 회음후의 반란으로 인하여 승상을 의심하게 된 결과입니다. 경호대를 설치하여
승상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승상을 믿고 은총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원컨대 식읍과 호위대의 설치를 사양하시고 가산을 모두 들어 황제에게 보내
그 군비로 사용하게 한다면 황제는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
소하가 동릉후의 말을 따르자 고조가 과연 크게 기뻐했다.」(사기 소상국 세가)
②청문(靑門) : 장안성에 있는 성문(城門) 이름이다. 원래의 이름은 패성문(霸城門),
푸른 색칠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청문(靑門) 또는 청성문(靑城門)이라 했다.
③고화자전오(膏火自煎熬) : 기름과 불은 스스로 타버린다.
장자(莊子)의 <人間世>에 이 말이 있는데, 스스로 사서하는 고생을 말한다.
④총록(寵祿) : 봉록 즉 부귀(富貴)를 말한다.
七
炎暑惟茲夏(염서유자하)
여름 더위 유독 심한데
三旬將欲移(삼순장욕이)
유월도 곧 끝나려고 하는구나
芳樹垂綠葉(방수수록엽)
향기로운 나무 푸른 잎 드리우고
青雲自逶迤(청운자위리)
푸른 구름 줄지어 떠다닌다.
四時更代謝(사시경대사)
사계절이 또다시 순환하니
日月遞參差(일월체참차)
해와 달도 더불어 분주하다.
徘徊空堂上(배회공당상)
텅빈 대청마루를 배회하며
忉怛莫我知(도달막아지)
나를 알아주는 사람 없어 마음 아프지만
願覩卒歡好(원도졸환호)
죽은 날까지 좋은 일만 보고 싶을 뿐
不見悲別離(불견비별리)
슬픈 이별만은 보고 싶지 않구나!
八
灼灼西隤日(작작서퇴일)
눈부신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餘光照我衣(여광조아의)
남은 빛이 내 옷을 비춘다.
回風吹四壁(회풍취사벽)
사방에서 불어오는 휘오리 바람에
寒鳥相因依(한조상인의)
겨울 철새는 서로를 의지한다.
周周尚銜羽(주주상함우)
주주(周周)①는 여전히 날개 서로 물고
蛩蛩亦念饑(공공역염기)
공공(蛩蛩)② 역시 굶주림을 생각하는데
如何當路子(여하당로자)
어찌하여 벼슬길에 나간 사람들은
磬折忘所歸(경절망소귀)
굽은 경쇠가 되어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은가?
豈爲誇譽名(기위과예명)
어찌하여 헛된 명예 위해
憔悴使心悲(초췌사심비)
초췌한 모습으로 마음을 슬프게 하는가?
寧與燕雀翔(영여연작상)
제비 참새와 함께 날지언정
不隨黃鵠飛(불수황곡비)
고니 따라 날지는 말아야지
黃鵠遊四海(황곡유사해)
고니는 사해에서 노는 새라
中路將安歸(중로장안귀)
중도에서 돌아올 수 없음이라!
①주주(周周)/ 머리가 무겁고 꼬리가 짧아 물을 마실 때는 물에 빠지기 때문에
다른 새가 꽁지를 물어 잡아준다는 전설상의 새다.
②공공(蛩蛩)/ 말과 비슷한 모습의 전설상의 짐승으로 원래 공공거허(蛩蛩岠虛)라고 부른다.
일명 비견수(比肩獸)라고 부르는 궐(蹷)와 함께 의지하며 사는데 궐은 평소에
감초를 씹어 공공거허에게 먹이다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공공거하거 궐을 등에
태우고 도망친다.
九
步出上東門(보출상동문)
걸어서 동문을 나서니
北望首陽岑(북망수양잠)
북쪽으로 수양산 봉오리 보인다.
下有采薇士(하유채미사)
산 아래는 고비 캐는 두 은사가 살고
上有嘉樹林(상유가수림)
위에는 좋은 숲이 우거져있다.
良辰在何許(양신재하허)
좋은 시절 언제일까?
凝霜沾衣襟(응상첨의금)
된서리가 옷깃에 달라붙는다.
寒風振山岡(한풍진산강)
세찬 바람 언덕을 들썩이고
玄雲起重陰(현운기중음)
검은 구름 짙은 그림자 드리운다.
鳴鴈飛南征(명안비남정)
기러기는 울며 남쪽으로 날아가고
鶗鴂發哀音(제결발애음)
두견새는 슬픈 소리로 울어댄다..
素質遊商聲(소질유상성)
평소에 즐겨 듣는 상성(商聲)① 소리
淒愴傷我心(처창상아심)
처량하여 내마음 저미는구나!
①商音(상음)은 신하를 위한 음이다. 상음이 어지러워지면 세상의 일이
공정하지 않게 되어 그 신하들은 부패하게 된다. 상음은 폐(肺)를 움직여
조화스럽고 의로운 마음을 깃들게 한다. 상음을 듣게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방정하고 의를 쫓도록 한다
( 商為臣,商亂則搥其臣壞, 商動肺而和正義,聞商音 使人方正而好義)-사기 악서
十
北里多奇舞(북리다기무)
북리에는 기이한 춤 많고
濮上有微音(복상유미음)
복수(濮水)의 강변에는 망국의 음악 들린다.①②
輕薄閑遊子(경박한유자)
경박하게 노니는 귀족자제들
俯仰乍浮沉(부앙사부침)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몸을 세웠다 굽혔다 한다.
方式從狹路(방식종협로)
지름길 좁은 길 들어서서는
僶俛趨荒淫(민면추황음)
애써 황음한 길 쫓는구나!
焉見王子喬(언견왕자교)
어찌 왕자교를 볼 수 있겠는가?
乘雲翔鄧林(승운상등림)
구름타고 등림(橙林) 위를 나는 모습을
獨有延年術(독유연년술)
혼자서라도 장생술을 익힌다면
可以慰我心(가이위아심)
내 마음 위로 받을 수 있을까?
①濮上微音(복상미음)
위영공(衛靈公 : 재위 전534-493년)이 진(晉)나라에 조현을 위해 들어가던 중
복수(濮水)의 나루터에 이르러 여사에 묵게 되었다. 이윽고 한밤중이 되자
복수의 강심에서 거문고 타는 소리가 들려와 좌우의 시자들에게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태사 사연(師涓)을 불러 말했다.
“내가 밤중에 들은 거문고 소리를 듣고 좌우의 시자들에게 물었으나 모두가
알지 못하는 곡이라고 했소. 그래서 그 소리가 마치 귀신이 내는 소리와 같으니
나를 위해 그 소리를 듣고 기록하시오!”
사연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연이 단정한 자세로 앉아서 거문고를 끌어당기더니 그 소리를 듣고 기록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사연이 말했다.
“ 신이 그 소리를 듣고 악보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익숙치 않아,
청하오니 하룻밤을 더 묵으면서 익히게끔 해주시기 바랍니다. ”
영공이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그래서 하룻밤을 더 머무른 후에 다음 날이 되자
사연이 영공에게 고했다.
“ 그 노래 소리를 모두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 출발하여 진나라로 들어가 진평공(晉平公)에게 조현을 드렸다.
진평공이 위영공을 위해 호화롭게 축조한 사기궁(虒祁宮)의 시혜지대(施惠之臺)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주흥이 무르익자 영공이 말했다.
“ 제가 이곳에 오다가 새로운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청컨대 연주를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
평공이 좋다고 말했다. 영공이 즉시 사연에게 명하여 진나라의 태사인 사광 옆에 앉아
연주하도록 했다. 사연이 거문고를 추스르더니 연주했다. 곡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사광(師曠)이 거문고를 잡고 연주를 멈추게 하더니 진평공에게 말했다.
“ 이것은 망국의 노래입니다. 끝까지 연주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
평공이 물었다.
“ 무슨 이유에서인가?”
“ 이 노래는 사연(師涓)이라는 사람이 만든 곡입니다. 주왕(紂王)과 함께 만든
미미지악(靡靡之樂)으로 무왕이 주왕을 토벌하자 사연은 동쪽으로 달아나다가 스스로
복수의 물에 뛰어들어 죽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곡은 필시 복수에서 들었을 것이며
이 노래를 먼저 듣게 되는 사람의 나라는 쇠락하게 될 것입니다. ”
평공이 말했다.
“ 과인이 평소에 음을 좋아하는 지라 원컨대 그 소리를 마저 듣고 싶소.”
그래서 사연이 마저 연주하여 노래를 마쳤다. 평공이 사광을 보고 물었다.
“ 이 보다 더 슬픈 곡조의 노래는 없는가? ”
사광이 대답했다.
“ 있습니다. ”
“ 들어볼 수 있소?”
“ 주군께서 덕과 의가 돈독하지 않으니 들으실 수 없습니다.
“ 그래도 한 번 듣고 싶소!”
사광이 어쩔 수 없이 거문고를 추슬러 연주하기 시작했다.
한 번 연주하자 검은 학 16마리가 낭문에 모이기 시작했다.
다시 연주하니 목을 길게 빼고 울기 시작하여 날개를 펴서 춤을 추었다.
평공이 대단히 기뻐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사광을 위해 축수했다.
다시 자리에 앉은 평공이 사광을 향해 물었다.
“ 이것보다 더 슬픈 곡조의 노래는 없소? ”
“ 있습니다. 옛날 황제가 온 세상의 귀신들을 모아놓고 연주한 노래입니다.
그러나 주군께서는 덕과 의가 돈독하지 않으니들으실 수 없습니다.
그것을 듣게 되시면 크게 낭패를 당하실 것입니다.”
“ 과인은 이미 늙었고 평소에 음악을 좋아하니 원컨대 끝까지 들었으면 하오. ”
사광이 어쩔 수 없이 거문고를 추슬러 연주하기 시작했다. 한번 연주하니 흰구름이
서북쪽에서 일어나 가로질러 오고 다시 연주하니 큰바람이 불고 비가 따라 내리렸다.
이윽고 행랑의 기와장이 날리기 시작하자 좌우의 시종들이 모두 일어나 몸을 피했다.
평공이 두려운 마음이 들어 복도 사이의 방에 엎드려 숨었다.
이윽고 진나라에 큰가뭄이 들어 적지(赤地) 상태가 3년이나 계속되어 땅에
풀도 나지 않았다. 그 노래를 들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길했고 어떤 사람은 흉했다.
그래서 대저 음악이라는 것은 망령되이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사기 악서)
② 복수(濮水) : 춘추시대 때 중원을 동서로 흐르던 제수(濟水)의 지류.
하남성 형양시(滎陽市) 부근에서 발원한 제수는 동쪽으로 흐르다가 하남성
봉구현(封丘縣)에서 남쪽 방향의 제수(濟水)와 북쪽 방향의 복수(濮水)로 갈라져
흐르다가 산동성 평음현(平陰縣)에서 다시 합류하여 제남을 경유하여 래주만을
통해 황해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