慈香李芳遠하여가(何如歌)
단수로 된 시조
원가는 〈청구영언〉에 전하며
한역시가 〈포은집〉·〈해동악부〉에 전한다
이방원은 조선 건국에 공이 큰 태종으로,
이 작품은 반대당인 정몽주(鄭夢周)의 진심을 떠보고 회유하기 위하여
마련된 자리에서 지어 부른 작품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런들 엇더
며 져런들 엇더
료
만수산(萬壽山)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
리
우리도 이
치 얼거져 백년(百年)
지 누리리라.
『해동악부(海東樂府)』와 『포은집(圃隱集)』에는 한역되어 전한다
此亦何如 彼亦何如
城隍堂後垣 頹落亦何如
我輩若此爲 不死亦何如
이에 대하여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를 지어 응수하였다.
이 두 작품은 「하여가」가 직설적인 말을 피하고
우회적 기교로 여유롭고 느긋함에 비하여
「단심가」는 직설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으로 굳은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즉 이방원은 얽힘의 논리로 화해와 조화를 희구하고 있는데,
정몽주는 죽음의 논리로 의지와 단절을 노래하고 있어,
당시 두 사람이 처한 입장,
곧 지략적인 정치가와 비타협적인 학자의 면모가 잘 나타나 있다.
이런들 어떠하며 / 이방원 (1367~ 1433)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럼칡이 얽어진 들 긔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
태종 때 창덕궁을 지어 태종5년부터 머물다 李成桂의 다섯째 아들 이조 3대왕 太宗으로서 이조 易姓革命에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다. 開國 후로는 욍위를 차지하고자 두번이나 피비린내 나는 <王子의 亂>을 일으커 骨肉을 나눈 형제를 무참히 죽이며 생사를 같이 해 온 開國功臣들을 마구 誅殺하였다. 王位를 차지한 18년 동안에는 정치에 크게 마음을 기울여 많은 업적을 올리는 한편 中央集權制를 확립하는데 더 부심하였다 위 시조는 何如歌라고 부르며 정몽주의 丹心歌와 함께 우리 국민의 애송시조인데 최후로 정몽주를 만나서 그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읊은 시조이다 王氏를 섬기다 李氏를 섬긴들 어떠하리오 저 만수산에 마구 벋어난 칡덩굴처럼 뒤엉킨채로 새삼스레 왕씨다 이씨다 를 가릴 것 없이 그렁저렁 어울려 사는 것이 어떠하리오 우리들도 그와같이 어울려서 오래도록 영화롭게 살아봄이 좋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