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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調百選-14-梅竹軒성삼문 충의가(忠義歌)와 글씨,한시 모음

작성자无耳朶(무이타)|작성시간20.09.23|조회수1,630 목록 댓글 0

【시조】- 성삼문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 것인들 긔 뉘 따헤 났다니.

【어휘풀이】

<수양산(首陽山)> : 은(殷) 나라 신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는 중국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산.

     우리나라 북부지방에도 이런 산 이름이 있다.

<이제夷齊)> : 백이와 숙제를 아울러 이른 말.

<한(恨)하노라> : 한탄한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주려> : 굶주려

<죽을진들> : 즉을지언정.

<채미(採薇)도> : 고사리를 캐는 일조차도.

<하난 것가> : 하는 것인가? 한단 말인가?

<비록애> : 비록. ‘애’는 강세 접미사.

<푸새엣> : 푸새의. ‘푸새’는 산과 들에 저절로 나서 자란 풀들.

               ‘에’는 처소격 조사. ‘ㅅ’은 관형격 촉음.

<긔> : 그것이. 그+ㅣ의 축약형. ‘ㅣ’는 주격 조사.

<뉘> : 누구의. 누+ㅣ의 축약형. ‘ㅣ’는 관형격 조사.

<따헤> : 땅에. ‘ㅎ’ 종성체언(終聲體言).

<났다니> : 났더냐? ‘다’는 회상시제 보조어간. ‘니’는 의문형.

 

【전문 풀이】

백이ㆍ숙제가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죽었다는 수양산을 바라보며

그들의 행위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차라리 굶주려 죽을지언정 왜 고사리를 캐 먹었는가?

그 고사리가 비록 푸성귀일만정,

그것이 누구의 땅에서 났더냐? (나 같으면 그것도 먹지 않겠다)

 

【해설】

조선 왕조사 5백년을 통하여 가장 큰 비극은 1452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 단종이

재위 3년만에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폐위당한 일이었다.

그것은 비극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참혹한 사실(史實)로, 그 상징적 인물들이 사육신(死六臣)이다.

성삼문이 세조 치하에서 산 연대는 1455년부터 이듬해 한강(漢江) 군기창(軍器廠) 앞에서

처형될 때까지 1년이다. 여기에서 이 시조의 큰 뜻이 잡힌다.

즉 이 시조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이 수양대군이 나이 어린 단종(端宗)을 내쫓고

왕이 되어 반대파를 무참히 학살(虐殺)한 정변(政變)을 보고, 단종에게 죽어도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작품으로,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의지를 솔직히 토로한 시조이다.

 

【개관】

▶지은이 : 성삼문(上三問: 1418∼1456)

▶갈래 : 단형시조, 평시조, 서정시, 절개가(節槪歌), 충의가(忠義歌)

▶성격 : 풍자시(諷刺詩)

▶소재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제재 : 백이ㆍ숙제의 고사(故事)

▶정조(情調) : 충의(忠義)의 정

▶핵심어 : 죽을진들.

▶주제: 굳은 지조(志操)와 절의(節義)

 

【구성】

▶초장 : 기(起) - 수양산(중의법)

▶중장 : 결(結) - 주제행 - 절개의 표현.

▶종장 : 중장에 대한 강조, 이유.

 

【감상】

이 시조는 절의가(絶義歌) 또는 충의가(忠義歌)라고도 일컫는데,

절개를 지킨 것으로 유명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보다도

더 굳은 절개를 지키겠다는 자신의 충의심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초장에서, 이제(夷齊)가 은거했던 수양산을 바라보며, 이제(夷齊)의 지조가 없음을 한탄한다.

이제(夷齊)가 주(周) 나라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했으면, 주나라에서 난 고사리도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수양(首陽)’은 산 이름임과 동시에 세조(世祖를 뜻하기도 하여

중의법(重義法)인 표현이며, 우리나라에도 수양산이 있다 한다.

중장에서는 지은이가 이제(夷齊)를 한탄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제(夷齊)의 철저하지 못한 항거에 실망한 것이다. 주(周) 나라 무왕(武王)의 불의에 항거한

백이ㆍ숙제를 노래한 듯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의미삼장하게 노래한 것이다.

이제의 절행(節行)이 철저하지 못함을 비탄(悲嘆)한 것이다.

종장은 권위 위ㅡ이 권위라는 느낌을 주는 구절이다.

절개의 권화(權化)인 이제(夷齊)를 나무랄 정도이니까.

 

이 시조는 중국에서 천하에 충절담(忠節談)으로 숭상되는

백이와 숙제에 대한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제(夷齊)의 묘를 지나가다가 지은 것이라고도 하며,

백이와 숙제가 주(周) 무왕(武王)이 은(殷) 나라 주왕(紂王)을 치러 가는 것을 말리다

듣지 않으므로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먹음을 개탄한 것으로,

지은이 성삼문은 후에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 폐위시킨 일이 잇을 때

그는 단종의 보구이를 꾀하여 세조 치하에서 사육신으로 처형될 때까지 1년을 살며,

위 시조와 부합되는 일로, 그 동안 세조의 녹(祿)은 조금도 쓰지 않고 따로 버려두었다고 한다.

이것은 이 시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으며, 이 시구(詩句)에 든 깊은 뜻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시조의 내용은 중국에서 천하 충절담으로 숭상되는 고사,

즉 은(殷) 나라의 신하이던 무왕(武王)이 이신살군(以臣殺君)하고

주(周) 나라를 세운 모역(謀逆)에 항의하여 백이ㆍ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 죽은 고사를 깔고 번진다.

지은이의 시조상(時調想)은 이제(夷齊)가 주 무왕의 일부분은 부정하였으되,

전부를 부정하지 못했음을 탓하고 있다. 이것은 불의의 왕 세조(世祖) 치하의 일체를 부정하는,

당대적 개념으로 말하면, 단종(端宗)에 대한 완전 충성의 의지를 보인다.

여기서 중장ㆍ종장에 내포된 의미는 자명(自明)해진다.

자신의 목숨마저도 이것을 불의(不義)의 왕 세조 치하에 놓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시조에서 우리는 군신유의(君臣有義)의 대도(大道)를 의연히 걸어간 모범을 본다.

- 이상보 : <명시조 감상>(1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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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採薇)의 고사>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중국 은(殷) 나라의 고죽군(孤竹君)의 아들로서

대표적인 은사(隱士)이다. 주(周) 무왕(武王)이 은(殷) 나라 주왕(紂王)을 치러 가는 것을 말리다

듣지 않으므로 주(周) 나라의 녹을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죽은 청렴결백(淸廉潔白)의 상징적 존재이다.

 

☞<이 시조와 비슷한 다른 한시(漢詩)>

성삼문이 일찍이 중국의 북경(北京)으로 가는 길에

이제묘(夷齊廟)를 지나다

읊은 다음과 같은 한시가 있는데,

‘수양산 바라보며’와 그 내용이 비슷하다.

 

제이제묘(題夷齊廟)

 

當年叩馬敢言非 당년고마감언비

大義堂堂日月輝 대의당당일월휘

草木亦霑周雨露 초목역점주우로

愧君猶食首陽薇 괴군유식수양미

 

당시 주무왕의 말고삐 잡고 은 나라 침을 말렸으니,

그 대의는 당당하여 해와 달로 빛나지만,

초목 또한 주 임금 은혜에 젖었으니,

그대들 수양산 고사리 캐어 먹은 일 부끄러워해야 하리.

                                            몽유도원도 성삼문의 찬문

 

절명시(絶命詩)

 

擊鼓催人命 격고최인명

回頭日欲斜 회두일욕사

黃泉無一店 황천무일점

今夜宿誰家 금야숙수가

 

북소리가 목숨을 재촉하는데,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가 지려하네.

황천길에는 주막집도 하나 없다 하니,

오늘밤은 뉘네 집에서 묵으려나.

 

絶命 : 목숨이 끊어져 죽음

擊鼓 : 북을 두드림

回頭 : 고개를 돌림

一店 : 주막집이나 객주집

(네이버 지식백과, 절명시 성삼문 《한시작가작품사전》)

                                                              성삼문 영정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노은리에 있는 성삼문(成三問)의 유허,

성삼문이 태어난 곳으로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노은단(魯恩壇)과 단소(壇所:제단이 있는 곳)가 있다.

 

성삼문(成三問) (1418년, 태종18 ~ 1456년, 세조2)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 충청남도 홍성 출생. 출생시 그의 모친이 꿈에

'낳았느냐?'라는 질문을 세 번 받았다고 이름을 삼문(三問)이라 하였다.

1438년 식년 문과 정과에 급제, 1447년에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다시 급제하였다.

집현전학사로 뽑혀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성삼문의 필체(내용=아래 참조)

청평조사(淸平調詞)-이백(李白)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 구름 같은 치맛자락, 꽃 같은 얼굴
春風拂檻露華濃(춘풍불함노화농) : 살랑이는 봄바람, 영롱한 이슬일레라
若非群玉山頭見(야비군옥산두견) : 군옥산 마루서 못 볼 양이면
會向瑤臺月下逢(회향요대월하봉) : 요대의 달 아래서 만날 선녀여!!

 

신숙주와 함께 당시 요동에 유배 중인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을

13번이나 찾아가 음운에 관한 지식을 얻었고, 명나라에 건너가

음운과 교육제도를 연구했다.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1455년 세조가 어린 조카인 단종을 위협, 선위(禪位)를 강요할 때,

예방승지 성삼문이 국새를 끌어안고 통곡하였다.

1456년(세조 2) 6월 1일에 창덕궁 명나라 사신을 위한 잔치에

세조가 상왕인 단종과 함께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날 성삼문의 아버지인 성승과 유응부가 칼을 차고 임금 곁에서 호위하는 별운검에 내정되었다.

이 기회에 세조일파를 척결하고 단종복위 거사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당일 한명회의 건의로 별운검의 시립이 폐지되었다.

거사에 차질이 생기자 불안해진 김질이 장인인 집현전 대제학 정창손을 통해

세조에게 밀고하여 성삼문을 비롯해서 박팽년, 유응부, 이개, 하위지 등 모의자 모두가 체포되었다.

 

세조의 친국 때, 성삼문은 세조를 가리켜 ‘나으리’라 호칭하며 떳떳하게 모의 사실을 시인했다.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세조의 불의를 나무라고 신숙주에게는

세종과 문종의 당부를 배신한 불충을 꾸짖었다.

격노한 세조가 불에 달군 쇠로 살을 지지고 뼈를 뚫게 했으나 안색도 변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나으리의 형벌은 독하기도 하구려."

박팽년은 형장에 가기도 전 옥중에서 죽었고,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응부는 능지처사를 당하였다.

후세에 역사가들은 가족과 함께 자결한 유성원을 포함한 이들을

'사육신'이라 부르며 충절의 표본으로 삼았다.

그 때 성삼문은 아버지 성승과 세 명의 동생들, 갓난아이를 포함한 네 아들이

모두 죽음을 당해 혈손이 끊겼고, 여자들은 모두 노비가 되었다.

형을 당한 뒤 성삼문의 집에는 세조에게 받은 녹미(祿米)가 고스란히 쌓여 있었을 뿐

가재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방바닥에 거적자리만 깔려 있을 뿐이었다.

 

1691년(숙종 17) 신원(伸寃)되었고, 1758년(영조 34)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791년(정조 15) 단종충신어정배식록(端宗忠臣御定配食錄)에 올랐다.

묘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사육신 묘역에 있으나,

성삼문의 일지(一肢)를 묻었다는 묘가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성삼문의 묘(성삼문이 극형을 당하여 찢긴 육신이

팔도에 조리돌려질 때 한 지체가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운반하던 사람이 귀찮은 생각에

독설을 하자 "아무데나 묻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 지금의 자리에 묻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저서로는 《매죽헌집》이 있으며 그의 문집 《근보집》에는

한글에 대한 소감이 적혀 전하며, 충성된 마음을 읊은 시조 2수가 전한다.

한시에도 훌륭한 작품들이 전해 오고 있다. 시조인 《봉래산가(蓬萊山歌)》는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하여 세조에 잡히어 처형될 때 지었다는 절명시(絶命詩)와 더불어 충렬가(忠烈歌)로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삼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등을 참고)


성삼문의 어린 딸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수레를 따라가며 울었다.

“사내자식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딸이기에 반드시 살 것이다.”

라고 딸을 위로해 주었다. 이번에는 종이 울면서 성삼문에게 이승에서 마지막 술을 올렸다.

성삼문이 허리를 굽혀 술을 마신 다음 절명시를 한 수 더 지었다.

 

절명시(絶命詩) 2

 

食人之食衣人衣 식인지식의인의

素志平生願幕違 소지평생원막위

一死固知忠義在 일사고지충의재

顯陵松栢夢依依 현릉송백몽의의

 

임금께서 주신 밥을 먹고, 주신 옷을 입으니

처음 뜻을 평생토록 어기지 말라

한번 죽음으로 충과 의가 있음을 아니

현릉의 송백이 꿈속에 아련하구나

현릉(顯陵) : 문종대왕릉


제이제묘(題夷齊廟)

 

當年叩馬敢言非 당년고마감언비

大義堂堂日月輝 대의당당일월휘

草木亦霑周雨露 초목역점주우로

愧君猶食首陽薇 괴군유식수양미

 

당시 주무왕의 말고삐 잡고 은 나라 침을 말렸으니,

그 대의는 당당하여 해와 달로 빛나지만,

초목 또한 주 임금 은혜에 젖었으니,

그대들 수양산 고사리 캐어 먹은 일 부끄러워해야 하리.

 

夷齊 : 伯夷叔齊(백이숙제). 周武王(주무왕)이 殷紂王(은주왕)을 치려는 것을 말리다가

무왕이 듣지 않으니, 首陽山(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숨어 살다가 굶어 죽었음.

叩馬 : 말머리나 말고삐를 끌어 잡아당김

敢言非 : (은 나라를 치는 것이) 잘못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함

雨露 : 비와 이슬. 임금이 내리는 큰 은혜

首陽 : 수양산

 

 

☞<성삼문의 절의를 나타낸 다른 시조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首陽山 바라보며 夷劑를 恨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採薇도 하는 것가

비록애 푸새엣 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

 

봉래산가 (蓬萊山歌)

 

이 몸이 주거 가서 무어시 될꼬하니

蓬萊山 第一峰에 落落長松 되야 이셔

白雪이 滿乾坤할 제 獨也靑靑 하리라

 

《청구영언》 표기법을 따랐으나 부득이한 것은 현대어로 바꾸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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