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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는 詩, 말하는 詩 : 唐詩와 宋詩 [1]

작성자새벽(艮齋)|작성시간09.03.28|조회수65 목록 댓글 0

보여주는 詩, 말하는 詩 : 唐詩와 宋詩 [1]

   꿈에 세운 詩의 나라

 
조선 전기의 문인 심의가 지은 〈記夢〉은 〈大觀齋夢遊錄〉이란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은이가 얼풋 잠이 들었다가 홀연 한 곳에 이르렀는데, 금빛으로 번쩍이는 화려한 궁궐에는 천성전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그곳은 천상 선계에 자리잡은 시의 왕국이었다. 이 나라의 왕은 최치원이고 수상은 을지문덕이며, 이제현과 이규보가 좌우상을 맡고 있다. 그밖에 내로라 하는 역대의 쟁쟁한 시인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지위의 고하는 단지 시를 쓰는 능력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당대에 쟁쟁하던 선배인 서거정 성현 어숙권 등은 지방의 미관말직을 전전하고 있는데 반해, 현세에서 불우를 곰씹던 그는 자신이 꿈 속에 세운 가공의 시 왕국에서 천자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승승장구 한다.  다른 대신들이 손 못대는 문제도 척척 해결한다. 대개 현세의 불우에 대한 보상심리의 반영인 셈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문천군수 김시습의 반란 사건이 우리의 흥미를 끈다. 지은이가 시 왕국에서의 일상에 익숙해 갈 무렵 난데 없이 김시습의 반란 소식이 전해진다. 천자 최치원이 당시풍만을 좋아하여 자기와 같이 송시풍을 즐겨 쓰는 사람들은 박대하여 등용치 않으므로 참을 수 없다는 사연이니, 참으로 시 왕국다운 반란의 이유다. 이에 이식의 천거로 토벌의 임무를 맡게 된 심의는 몇 만의 군대를 주겠다는 천자의 제의를 거절하고, 소영비술만으로 대적하겠다 하며 첨두노 몇을 데리고 일기로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 소영비술이란 천지의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피리부는 비술이니 다름 아닌 시를 말함이요, 첨두노란 머리가 뾰족한 하인이니 붓의 형용이다.
 
적진에 다다른 심의가 한 곡조 피리를 불자 반란군은 그만 간담이 서늘해지고 기운이 꺾이며, 두번 불자 그만 몇 겹의 포위를 풀고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적장 김시습은 손을 뒤로 묶고는, "사단의 노장이신 심령공께서 이를 줄은 뜻하지 못했습니다" 하며 투항하고 만다. 반란군의 토벌치고는 싱겁기 짝이 없다.
 
이 작품은 소설적 구성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심의의 시관과 역대 시인에 대한 평가가 잘 드러나 있고, 또 두보를 천자로 하는 중국의 시 왕국에 천자 최치원이 초청되어 두 나라의 시인들이 시로써 재주를 겨루는 내용 등 적잖은 흥미소가 가미되어 있다. 여기서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김시습의 반란 사건이다. 최치원은 당나라, 특히 화려하고 유미한 시풍으로 대표되는 만당 시기의 인물이니 그가 추구한 것이 당시풍일 것은 당연하다. 그가 천자가 된 이상, 그 밑에 신하들도 당시를 추구했을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반면 김시습은 송시풍을 추구하여 여기에서 소외된 것이 불만스러웠고 아예 반란을 꿈꾸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당시풍과 송시풍은 도대체 어떤 시풍을 말하며 둘의 차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반란을 일으켜 바로 잡으려 한 것으로 보아 두 시풍은 타협이나 공존이 어려울 듯 하다. 예전 시비평서를 읽다 보면 도처에서 당시에 핍진하다거나, 송시에 가깝다는 식의 평어와 만나게 된다. 또 이 두 가지가 함께 거론될 때면 대부분 으례 당시풍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 일반이다. 비평의 현장에서 당시니 송시니 하는 개념은 왕조 개념을 떠나 시의 취향 혹은 성향을 말하는 풍격 용어로 사용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당나라 시인의 시에서도 송시풍을 찾아볼 수 있고, 청나라 시인의 시에서도 당시풍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당시와 송시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왜 한시사에서 끊임 없는 논란을 빚어 왔던가? 이 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
  
송대의 유명한 화가 곽희는 그의 《林泉高致》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짜 山水의 안개와 이내는 네 계절이 같지 않다. 봄 산은 담박하고 아름다와 마치 웃는듯 하고, 여름 산은 자욱이 푸르러 마치 물방울이 듣는듯 하며, 가을 산은 맑고 깨끗하여 단장한 듯 하고, 겨울 산은 어두침침하고 엷어 마치 잠자는 듯 하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서 있지만,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날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 봄 산이 좋기는 하지만 여름 산의 짙푸름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가을 산의 조촐함과 겨울 산의 담박함은 또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사람마다 기호가 같지 않으므로, 꼬집어 어느 산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시 또한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당시를 두고 흔히 중국 고전시가의 꽃이라고 말하여 계절로 치면 봄에 해당한다고들 하고, 이에 반해 송시는 가을에 견주기도 한다. 또 백화난만한 고궁의 봄 뜰을 친구와 어울려 산책하는 정취를 당시의 세계에 견주고, 들국화 가득히 핀 가을 들판을 홀로 걸으면서 사색에 잠겨 보는 것으로 송시의 세계를 비유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당시는 호탕한 기개를 지닌 장부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 같고, 송시는 달밤에 호수에 배 띄우고 선비가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당시와 송시의 차이는 보여주기와 말하기의 차이로도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시인은 시 속에서 자꾸 무엇인가를 말 하고 싶어 하고, 또 어떤 시인은 가급 말하는 것을 절제하는 대신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이때 말한다는 것의 의미는 도덕적이거나 교훈적인 메세지의 전달을 뜻한다. 시인이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시는 이해가 쉬운 반면 자칫 식상감을 주거나 거부감을 일으키기 쉽다. 반면 보여주기만 하는 시는 추상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거나, 자칫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또 이 경우 시인의 의도는 단지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므로 독자의 적극적인 독시가 요청된다. 말하는 시가 좋은지, 보여주는 시가 좋은지는 순전히 기호에 달린 것이므로 둘 사이의 우열을 갈라 말하기란 난처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가을 산이 가장 좋다는 사람에게 겨울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타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월(繆鉞)은 〈논송시(論宋詩)〉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시는 작약이나 해당처럼 짙은 꽃과 화려한 색채가 있다. 송시는 한매(寒梅)나 추국(秋菊)처럼 그윽한 운치와 서늘한 향기가 있다. 당시는 여지를 씹는 것처럼 한 알을 입 안에 넣으면 단맛과 향기가 양 볼에 가득 찬다. 송시는 감람을 먹는 것처럼 처음엔 떠름한 맛을 느끼지만 뒷맛이 빼어나고 오래 간다. 이것을 산수에 노는 것에 비유하면 당시는 곧 높은 봉우리에서 멀리 바라보아 의기가 호연한 것과 같고, 송시는 곧 그윽한 골찌기 냇물을 찾아 정경이 냉초한 것과 같다.
 
 
작약이나 해당화의 화려한 색채는 화려하게 성장한 미인의 우아한 자태를 연상시킨다. 이것이 당시이다. 반면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나 서리를 이겨내는 국화의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는 화장도 하지 않고 소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의 얼음같은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이것은 송시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申景濬은 〈詩則〉이란 글에서 역대로 많은 시가 있어 왔지만, 시의 작법은 `影描`와 `鋪陳`, 두 가지를 벗어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唐人은 광경을 즐겨 서술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影描가 많다. 宋人은 의론 세움을 즐겨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鋪陳이 많다. 대저 광경을 서술함은 國風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이니 자못 참되고 두터운 맛이 적다. 의론을 세움은 兩雅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의 자취가 완전히 드러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당인은 詩를 가지고 詩를 지었고, 송인은 文을 가지고 詩를 지었다고 생각하여 唐詩가 宋詩보다 훨씬 뛰어나 宋詩는 唐詩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는 唐詩에는 影描가 많고, 宋詩에는 鋪陳이 많은 까닭이다. 그러나 宋詩가 唐詩만 못한 것은 바로 氣格이 모두 밑도는 까닭이지 鋪陳이 影描만 못하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대개 당시의 묘사적이고 서정적 경향과 송시의 사변적이고 說理的 경향을 갈라 대비한 것이다. 여기서 唐詩의 특징으로 거론한 影描란 글자 그대로 그림자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말 그대로 그림자일뿐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는 것을 어떻게 묘사해낸다는 말인가. 대상과 마주하여 일어나는 시인의 感情은 실로 그림자와 같아서, 무어라고 꼭 꼬집어서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시는 그 무어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느낌을 언어로 옮겨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반면 鋪陳이라 함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진술한다는 의미이다. 시인은 어느 때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가. 議論을 세워 자신의 주의 주장을 전달하려 할 때 鋪陳의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唐詩가 낭만적 감성적 취향이라면, 宋詩는 고전적 이성적 취향이다. 대개 감성의 욕구는 자칫 무절제로 흐르기 쉽고, 이성의 욕구는 흔히 논리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漢詩史의 전개에 있어서 唐詩風과 宋詩風의 변화 교체가 쟁점이 되어 온 것은 그 시대 문학의 풍격과 성향의 자연스런 변화와 관계된다. 錢鍾書는 《談藝錄》에서 "사람의 일생에서 소년시절에는 재기가 발랄하여 마침내 唐詩의 기풍을 띠게 되기 마련이고, 노년시절에 이르면 사려가 깊어져서 宋詩의 기풍을 띠게 되기 마련이다" 라고 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도 이럴진대, 문학 환경의 변화에 따른 시풍의 변모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점은 현대의 시인도 비슷하다. 젊은 시절 격동하는 감정의 분출과 화려한 비유로 독자를 사로잡던 시인도 만년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담한 언어에 담아 노래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이로 보면 唐詩와 宋詩의 구분은 실제로는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연관되는 것이기도 함을 알 수 있다.
 
다음 이수광의 언급은 당시와 송시를 구분하는 한 실례를 제시하고 있다. 《芝峯類說》에 보인다.
 
당나라 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꽃 피자 나비들 가지에 가득터니, 꽃 시드니 나비는 다시금 안 보이네. 다만 저 옛 둥지의 제비만이 주인이 가난해도 돌아왔구나. 花開蝶滿枝, 花謝蝶還稀. 惟有舊巢燕, 主人貧亦歸"라 하였다. 또 송나라 사람이 길 가의 나무를 읊어 이르기를, "미친 바람 뽑아서 거꾸러 뜨리니, 나무는 거꾸러져 뿌리까지 드러났네. 그 위의 몇 가지 등나무 줄기, 푸릇푸릇 여태도 모르고 있네. 狂風拔倒樹, 樹倒根已露. 上有數枝藤, 靑靑猶未悟."라 하였다. 이 두 시는 句法이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당시와 송시의 구분 또한 뚜렷하다.
 
 
예로 든 두 시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알겠는가? 이것이 당시와 송시의 차이다.
洪萬宗은 그의 〈詩話叢林證正〉에서
 
당을 존중하는 사람은 송을 배척하여 비루하여 배울 바 못된다 하고, 송을 배우는 사람은 당을 배척하여 나약하여 배울 것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모두 편벽된 언론이다. 당이 쇠퇴하였을 때에는 어찌 속된 작품이 없었겠으며, 송이 성할 때에는 또 어찌 고아한 작품이 없었겠는가. 우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라고 하여 당시나 송시 어느 일방에만 흐르는 편벽된 경향을 경계하고 있다.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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