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幇甚 / 방심 - - - 李詹/이첨 게으름 平生志願已蹉跎 / 평생지원이차타 爭奈衰慂十倍多 / 쟁내쇠용십배다 평생에 뜻하던 일 이미 글렀고 어쩌랴 게으름만 부쩍 느는 걸 午枕覺來花影轉 / 오침각래화영전 暫携稚子看新荷 / 잠휴치자간신하 낮잠에서 깨보니 꽃 그늘은 옮겨가 아이의 손잡고 갓 핀 연꽃 구경하네.
=봄 나들이=
梅花暖日柳輕風(매화난일유경풍)
매화는 따뜻한 해 빛에, 버들은 산들바람에
春意潛藏浩蕩中(춘의잠장호탕중)
봄기운이 호탕한 가운데 스며 있도다.
欲識東君眞面目(욕식동군진면목)
봄날의 참모습 알려거든
遍尋山北又溪東(편심산북우계동)
북산(北山)이나 개울 동편을 두루 찾아보게나.
觀音窟(관음굴)
=지난 날 태평시대(泰平時代)의 돌 기둥 남았네.=
禪房十肘土牀溫(선방십주토상온)
자그마한 선방(禪房) 온돌 자리는 따뜻한데
當日淸平石柱存(당일청평석주존)
지난 날 태평시대(泰平時代)의 돌기둥 남았네.
岩竇不因雷雨壓(암두불인뇌우압)
바위 구멍 우래 비에도 까딱없음은
定應賴有白衣尊(정응뢰유백의존)
응당 백의(白衣)존자(尊者) 모셔 있기 때문이라.
* 註(주)
觀音窟(관음굴)=개성부(開城府)박연폭포(朴淵瀑布)상류(上流)에 있는 암자(庵子).
이첨의 글씨
春遊(춘유).李詹(이첨).本貫:新平(신평).字:中叔(중숙).號:雙梅堂(쌍매당).
諡號(文安(문안). 高麗末(고려말),朝鮮初(조선초)文臣(문신).
<檀紀弘益人間3678年高麗第29代忠穆王(王昕)1年乙酉=1345~~1405=檀
紀弘益人間3738年朝鮮第3代太宗(李芳遠.字:遺德)5年乙酉>
본관은 신평. 자는 중숙(中叔), 호는 쌍매당(雙梅堂). 고향 집에 소나무 2그루가 있었는데
벼슬에 전념하다 몇 년 만에 돌아와보니 소나무는 없고 매화나무 2그루가 있어
호를 '쌍매당'이라 했다. 이색(李穡)의 문인이며, 1365년(공민왕 14) 감시(監試)에 합격한 뒤
1368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이 되었다. 그뒤 우정언을 거쳐 우헌납으로 있을 때인
1375년(우왕 1) 이인임·지윤을 탄핵한 죄로 10년 동안 귀양살이했다. 1
388년(창왕 1)에 풀려나 내부부령·예문응교·우상시(右常侍)가 되었으며,
1391년(공양왕 3) 좌대언이 되었다. 지신사(知申事)에 올랐으나 장류(杖流)된
김진양(金震陽)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유배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인
1398년(태조 7) 이조전서에 기용되어 1400년(정종 2) 첨서삼군부사(簽書三軍府事)로
전위사(傳位事)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2년 뒤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에 올라
하륜과 함께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3년(태종 3) 예문관대제학이 되었다.
종이를 의인화한 가전 〈저생전 楮生傳〉과 〈동문선 東文選〉에 시문 130여 편이 전한다.
저서로 〈쌍매당집〉이 있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贈彭城監務李君(증팽성감무이군)
팽성감무 이군에게 줌.
李詹(이첨)
三月彭城布穀啼(삼월팽성포곡제)
삼월달 팽성에 뻐꾸기 울면(울 때면)
千畦麥浪與雲齊(천휴맥랑여운제)
많은 이랑의 보리 물결이
구름과 더불어 한가지겠다.(구름 같겠다.)
畦는 50이랑,
使君日用非他事(사군일용비타사)
자네는 하루를 다른 일에 쓰지 말고,
使君 : 나라의 명을 받은 사람,
(여기서는 감무)을 친근하게 일컫는 말,
點檢春耕東復西(점검춘불동부서)
(농부들의)봄 농사를 점검 하면서 동서로 돌아다녀라,
東復書 : 동쪽으로 다시 서쪽으로 라는 뜻.
彭城 : 경기도 소재 고을 이름
監務 : 작은 고을의 감독관(원님 이라 생각 하자)
[평설]
작은 고을인 팽성에 후배 한 사람이
그 고을의 감무(원님)가 되어 갔다.
어느덧 뻐꾸기 우는 춘삼월이 되었다.
넒은 들의 보리밭 이랑 마다
푸른 보리가 구름 같은 물결 일렁인다.
시인이 그 후배에게 시 한수를 써 보낸다.
그 시는 딴짓 하지 말고
농부들의 봄 농사를 도우라는 것이다.
그럼 딴짓은 무엇일까?
무고한 백성들 잡아다 족치는 짓,
두 눈 부릅뜨고 알게 모르게 거두어 들이는 짓,
풍월 읊는다며 거드름 피우는 짓,....
우리는 고을을 맡은 원님이 아니다.
그러나 한 작은 집단의 리더 일 수는 있다.
그때 이 시를 생각하자.
그러면 이 시는 가르켜 줄 것이다.
리더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